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내맡김과 받아들임

장백산-1 2018. 4. 28. 20:11

내맡김 그리고 받아들임


그때 예수께서 베드로와 세베데의 두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도록 하라.” 하시고예수께서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할 수 있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마태복음, 26:39~40)


사람들은 삶을 사는 어느 순간 불현듯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괴로움을 경험하는 순간 ‘나는 괴롭다’라고 하는 생각, 즉 분별 망상 번뇌가 일어납니다. 이번엔 우울함이 경험됩니다. 우울함을 경험하는 순간  ‘나는 우울하다’라고 하는 생각, 즉 분별 망상 번뇌 판단 해석이 일어납니다. 삶에서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본능적으로'나는 괴롭다, '나는 우울하다',  ‘나는 불안하다’, ‘나는 두렵다’라는 생각, 즉 분별 망상 번뇌 판단 해석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그러나 ‘나’는 ‘괴로움’이 아닙니다. ‘나’는 ‘우울함’이 아닙니다. ‘나’는 ‘불안함’이 아니며, ‘나는 두려움’ 또한 아닙니다. '진정한 나’, '본래의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자리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現前)은 괴로움, 우울함, 불안함, 두려움 등의 그러한 느낌, 감정, 생각들이 일어나는 바탕이자 그러한 느낌, 감정, 생각들에 대한 자각 그 자체입니다.


'진정한 나', 본래의 나', '참된 나’,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은 없는 채로 있는 것입니다. 없기 때문에 진실로 있는 것입니다.


‘괴로움’, ‘우울함’, ‘불안함’과 ‘두려움’이라는 느낌, 감정,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그 순간에도 언제나 늘 변함이 없이 그 느낌, 감정, 생각들의 배경으로 있는 것이 '진정한 나, 본래의 나, '참된 나’,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입니다.


‘본래의 나’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유일무이한 주시자이자 이 세상 모든 것의 근원이자 귀결점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본래의 나’에게서 발생하였다가 ‘본래의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본래의 나’는 무시무종으로 불생불멸로 상주불멸로 언제나 늘상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아득한 나락에 빠져 더 이상 헤어나올 수 없을 때도 '진정한 나’는 그 순간에도 홀로 스스로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본래의 나는 단 한 순간도 이렇게 드러나 있는 나를 떠나 있지 않습니다. 느낌과 감정, 생각과 동일시되어 그것들에게 매몰되어 있을 때도 진정한 나, 본래의 나는 그 모든 상황을 완전한 침묵 속에서 주시하고 있습니다.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없는 ‘나’ 대신에, 없는 듯하지만 분명 있는 '진정한 나’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십시오. 분리된 작은 ‘나’의 느낌 감정, 생각 상상 이미지, 의지 의도 충동 욕구 욕망, 분별 인식을 좇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스스로 분리시킨 작은 나를 유지, 보호하기 위한 수고와 갈등에서 벗어나 '진정한 나’ 자신의 평안 속에서 쉬십시오.


‘본래의 나’는 그냥 ‘나’인 ‘나’, 스스로 있는 자, ‘나’라고 하는 자입니다.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에 그어놓은 분별, 허상의 경계선을 지워버리십시오. ‘나’를 ‘나 아닌 것’에 활짝 여는 일, 그것이 내맡김이자 받아들임이며 진정한 의미의 합일(合一), 본래의 나와 하나 됨입니다. 그 때 비로소 본래부터 이미 완전하게 있는 존재, 텅~빈 바탕 순수한 의식, 텅~빈 바탕 진공의식, 텅~빈 바탕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의 현전, 본래의 나, 진정한 나, 영원한 생명, 근원적인 평화가 저절로 드러납니다.


-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