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죽음과 탄생은 동시에 함께 시작된다.

장백산-1 2018. 10. 3. 23:35

죽음과 탄생은 동시에 함께 시작된다.


죽음이 잉태와 동시에 함께 시작된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대가 태어났을 때 그대는 이미 9개월 동안 엄마 자궁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9개월 동안 그대는 자궁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잉태의 순간으로부터 시작된 그 9개월은 분명히 죽음의 여정에 포함된다. 그대가 태어났을 때 그대는 이미 9개월 동안 늙어있는 것이다. 9개월 간의 노쇠함이 그대를 장악했다. 사실 그대의 본질(本質)이 엄마 자궁에 들어간 순간 그대의 탄생이 시작한 것이다. 그대의 본질이 엄마 자궁에 들어간 그 순간이 바로 죽음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대는 순간순간 매일매일 쉬지않고 죽어가고 있다. 죽음은 그대의 목숨이 끝날 때 일어나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기적이 아니다. 죽음은 마술이 아니다. 죽음은 그저 탄생과 동시에 시작하는 긴 여정이다. 그대는 순간순간 매일매일 매우 느리게 죽어가고 있으며, 마침내 죽음의 과정이 멈추는 날이 올 것이다. 죽음은 이 죽음의 과정의 마지막 장면이다. 죽음은 시작의 끝이다. 죽음은 평균적으로 8~90년 동안 지속된다.


죽음의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죽음 후 그대의 본질이 다른 자궁에 들어가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도록 노력하라.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즉 다른 자궁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자기 내면으로 더욱 깊게 들어가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예술에 눈을 뜨고 삶과 죽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과 탄생의 속성을 알게 될 것이다. 다른 자궁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즉 탄생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자신의 모든 분별 망상 번뇌 욕망 욕구 욕심을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노인, 즉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지만 아직 숨이 붙어있는 노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에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못다 이룬 내 꿈들을 모두 이룰 수 있을 텐데. 나는 아직 내 집도 다 짓지 못했고, 내 자식들의 결혼식도 보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 너무 많다. 나는 이제야 그것들을 조금씩 이루기 시작했다. 내가 죽어 이 세상으로부터 끌려 나가는 것이 공정하고 적절한 일인가. 최근에서야 나는 세상일을 더 잘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휴가를 보낼 계획이었다. 아이들은 자라서 자기 삶을 일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고 나는 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며 신을 숭배하며 여생을 바칠 생각이었다.” 라고...


죽음이 코 앞에 다가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시간이 더 있다면 나는 신을 모시는 데 그 시간을 바쳤을 것이다. 신이 내 꿈을 모두 이루도록 배려하지 않은 채로 내 생명을 빼앗아가는 것은 너무나 부당해 보인다. 고 불평한다.


죽음의 문턱에 있는 순간에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바로 위에서 예를 든 것이다. 사람의 분별 망상 번뇌 욕망 욕심이 충족되지 않은 채로 육체가 죽어가면서 그 사람을 떠나가고 있다. 그런 충족되지 않은 욕망 욕구 욕심들은 곧 바로 다른 새로운 탄생을 찾아 또 다른 자궁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분별 망상 번뇌 욕망 욕구 욕심들은 충족되고 성취되었어야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착각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는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다. 오래 좀 더 살고 싶은 욕망 욕심이 또 다른 탄생과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얘기했듯이 사실 죽음은 자궁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자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시작된다는 점을 깊게 이해하라. 탄생과 죽음의 순환은 그대가 전생의 죽음의 순간에 오래 더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졌을 때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대가 이같은 현상을 더욱 깊게 들여다보면, 오래 더 살고자하는 욕망 욕심이 바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탄생과 죽음들을 연결시키는 고리라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누구나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좀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계속되는 탄생과 죽음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져라. 그러면 삼사르(samsar), 즉 속세의 고통, 즉 탄생과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그 어떤 욕망 욕구 욕심도 마음에 품지 말라.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라. 그러면 그대에게 또 다른 탄생과 죽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목표에 이미 도달하여 있다면 더 이상의 여정이 필요 없고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는 것처럼 그저 지금 여기의 삶에 만족하라. 무얼 성취하던지 성취하지 못하던지 간에 성취와 불성취는 본래 이미 그것을 넘어 본래 이미 충만하고 완전한 것이다. 지금 여기서 이미 갖고 있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성취하려는 욕망 욕구 욕심을 모두 버려라.


이런 일이 그대에게 일어난다면 과연 그대가 어떻게 다시 죽음과 삶이라는 순환, 즉 생사윤회에 들겠는가? 그대는 완전하게 만족한 상태로 행복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완전하게 만족한 상태로 행복한 죽음을 맞는 사람은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죽음과 탄생의 예술을 이미 안 것이다. 무욕(無欲)의 상태에서 죽는 사람은 죽음과 탄생의 예술을 깨달은 것이다.


-오쇼의 <초월의 명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