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 강설]
31. “선남자야, 이 보살과 말세의 중생이 이 세상 모든 것이 허깨비임을 깨달으면
허깨비 그림자의 모양이 사라지므로, 그 때 문득 한량없는 맑고 깨끗한 자리를
터득할 것이니 가장자리가 없는 무한한 허공이 바로 깨달음이니라.”
善男子。此菩薩及末世眾生。證得諸幻滅影像故。爾時便得無方清淨。無邊虛空覺所顯發。
【강설】
조선 시대에 월봉(月峰)이라는 강백이 원각경을 강의하는데 때마침 그 법회에 환성 지안
(喚醒志安) 선사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참석해 있었다. 월봉 스님이원각경의 이 대목에
'무변허공 각소현발(無邊虛空 覺所顯發)'이라는 구절에 이르러을 ‘가없는 허공에서 깨달음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듣고 있던 환성 스님이 벽력 같이 ‘할!’을 하자 월봉 스님은
법상에서 굴러 아래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그 구절은 ‘무한한 허공이 바로 깨달음이다’ 라고 새겨야 한다. 허공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허공이 곧바로 깨달음이다. 조주의 무(無)자 화두가 있고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조주의 무 자 화두가 바로 깨달음이다. 마삼근(麻三斤)이 있고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마삼근이 바로 깨달음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 두두물물이 바로 무한한 허공 곧
깨달음이 드러난 것이다. 언제나 눈앞에 이렇게 분명하게 드러나 있어서 단 한 순간도 무한한
허공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무한한 허공을 찰나지간도 떠난 적이 없는 것이 깨달음이다.
부처의 몸 우주법계에 가득 충만해서 (불신충만어법계 佛身充滿於法界)
일체 중생 앞에 두루두루 드러나 있네 (보현일체중생전 普現一切衆生前)
부처의 몸은 인연 따라 두루 감응하여 (수연부감마부주 隨緣赴感靡不周)
언제 어디서나 이 깨달음의 자리에 계시네. (이항처차보리좌 而恒處此菩提座)
끝도 가장자리도 없는 이 허공이 바로 마음이고, 바로 부처이다. 끝도 가장자리도 없는 무한한
허공, 바로 눈앞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가 바로 깨달음이다. 언제나 바로 지금 여기 이 허공
같은 마음, 텅 비어 있지만 인연 따라 작용이 끊어지지 않는 지금 이 자리가 원만한 깨달음,
원각(圓覺)이다. 원각, 원만한 깨달음,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텅~빈 허공은 단 한 걸음도
더 가까이 간 적 없고, 단 한 걸음도 더 뒤로 물러난 적 없다. 한 물건도 없는 중에 온갖 현상들이
그림자처럼 모양이 있는 것처럼 일어나고 사라진다. 펼치면 밖이 없고, 거두어들이면 안이 없다.
가고 가도 본래 그 자리고, (행행본처 行行本處)
도착하고 도착해도 출발한 그 자리다. (지지발처 至至發處)
-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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