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 서울 그리고 잔다리 [세상읽기]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입력 2018.10.11. 20:41
[경향신문]
지난 2018년 9월 9월20일부터 일주일 동안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쿠바 디스코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함께 쿠바의 음악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유니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쿠바에는 언제나 이미 음악과 춤이 있었다. 아바나에서 2시간 떨어진 휴양도시 바라데로의 한 레스토랑에서도 멋진 하우스밴드들의 음악과 춤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쿠바디스코 개막행사인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에는 그 특유의 살사 리듬에 맞춰 지휘자와 연주자와 관객들이 함께 몸을 흔들었다. 쿠바에서 가장 클래식하다는 이 오케스트라에는 베토벤이나 하이든이나 스트라빈스키가 없다. 그저 그들 조국의 작곡가가 만든 곡, 애타는 살사 리듬, 여유롭고 흥겨운 관객들이 있을 뿐이다. 아바나 사운드는 서양식 악보대로 분절되는 박자 대신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리듬이 극장을 지배했다.
짧은 관찰이지만, 지금 쿠바의 음악 신은 세 가지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쿠바음악의 낭만적 황금기를 대변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세대들이다. 물론 그들은 소수이지만, 여전히 생존해서 활동을 하고 있다. 9월23일 일요일 밤, 쿠바의 최대 음반 레이블사인 ‘에그램’이 운영하는 피아노 바에서 들은 ‘아센시로 로드리게스 밴드’의 리더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함께 활동했던 세대에 속한다. 두 번째로 여전히 살사 리듬과 아프로 쿠바 재즈를 기반으로 한 30~40대 밴드들이다. 이들의 역량은 엄청나다. 마지막으로 그들 부모 세대들의 음악에 식상함을 느끼고, 미국의 힙합과 유럽의 EDM, 그리고 한국의 K팝에 열광하는 10대들이다. 이 세 가지 음악적 경향들이 서로 공존하고, 경합하는 게 지금 쿠바의 음악 신의 형세같아 보였다.
산업으로서 쿠바의 음악은 여전히 정체되어 있다. 엄청난 실력을 지닌 수많은 기성 혹은 신예 밴드들은 새로운 음악산업 시장을 형성하지 못하고, 10대들의 음악적 열정과 에너지를 인프라가 없어 시장이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에 극장 개관 이래 가장 많은 10대 유료 관객들이 몰렸다는 것은 단지 K팝의 프리미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것은 시장으로서의 음악신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욕구를 확인케 해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산업이 음악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논리에 그들은 찬성하지는 않는다. 아바나의 음악적 잠재력과 자발성은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동력이다. 중요한 것은 산업 이전에 삶이다. 음악산업도 발전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고유한 삶의 리듬을 지킬 수는 없을까?
서울로 돌아온 일주일 후 홍대 인디신에서 자생적으로 만든 잔다리 페스타가 열렸다. 전 세계 음악과 축제를 좋아하는 50여명의 관계자들과 40여 해외 밴드들, 그리고 60여 국내 밴드들이 모여 4일간 환상적인 음악적 교류와 연대를 즐겼다. ‘음악 듣고, 맥주 마시며, 친구가 되자’는 잔다리의 슬로건은 마치 내가 아바나에서 음악을 통해 느꼈던 일상의 카니발 정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바나와 서울이 음악으로 서로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에는 물론 음악산업의 지원이라는 경제논리가 없는 게 아니다. 그리고 체 게바라로 상징되는 정치적 낭만과 살사로 대변되는 문화적 향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뮤콘’이 아닌 ‘잔다리 페스타’가 발산하는 음악적 공감과 문화적 우애는 분명 아바나와 서울이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의 근원을 보여준다. 비록 가난한 처지에 있지만, 잔다리 페스타는 어떤 점에서 아바나와 서울의 음악적 우정을 맺게 하는 어떤 멋진 근거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바나는 가난하지만 음악을 통한 삶이 풍요롭듯이 말이다. 음악을 통한 도시와 개인의 교류라는 것의 중심은 돈이 아니라 상호 우애와 우정이다. 이것이 지난 3주간의 잊지 못할 음악여정을 통해 내가 얻은 지혜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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