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지도 말고 찾지도 마라

장백산-1 2018. 12. 30. 16:50

적멸한 성품 가운데서 묻지도 말고 찾지도 마라  / 릴라


존재(현상, 것, 法)하는 것은는 곧 고통, 괴로움입니다. 내가 있다면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 고통

입니다. 나뿐만이 괴로운 것이 아니라 모든 대상(경계, 존재, 현상, 法, 것)들이 존재한다면 존재함 그 

자체가 고통을 일으킵니다.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와는 

달리 쉬지않고 항상 끊임없이 변화해갑니다.


시간과 공간과 상황에 따라서 나는 상처를 입을 수 있고, 내가 애착하는 것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과 내가 집착하는 것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겁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사람들의 괴로움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착각 때문에 일어나는 마음

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이 마주하는 이 세상이라는 것을 진실하게 보지 못한 데서 오는 괴로움입니다.  이 

세상으로 드러나는 모양을 고정된 실체가 있는 객관적인 존재로 착각하여 일어나는 미혹한 생각이 괴로

움이라는 환상입니다.


사람들은 내 눈앞에 드러나 있는 대상(경계, 현상, 法, 것)이 고정불변하는 실체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나라고 하는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독립적으로 정체성(正體性)을 갖고 존재하고 있고, 내가 아닌 

타인도 나와 마찬가지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갖고 존재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인식하는 

모든 존재(대상, 경계, 현상, 法, 것)은 영원하지도 않고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있는 객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내 몸이 영원불변하는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진 존재라면, 내 몸은 시간 속에서 영원한 영속성

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어떠한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에도 한결같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내게는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흔히 내가 아는 나는 상황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것들입니다. 내 나이, 내 이름, 내 가족, 내 직업, 내 직장, 

내 성격, 내 성취, 내 재능 등은 나를 둘싸고 있는 조건들이거나 장식들이지 그것들 중에서 나라고 할 만한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이도 순간순간 변하며, 이름도 바꿀 수 있고, 가족도 분별할 때만 있으며, 

직업도 일정한 것이 아니며, 성격도 시기에 따라 변하며, 재능도 시간 속에서 일정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정체성(正體性)이라는 단어를 의미 있게 여깁니다. 나의 정체성, 민족의 정체성 등 그것만의 고유

성, 변함없는 설질을 찾고 확립하려고 애씀니다. 그러나 정체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단지 이름이 정체성일 

뿐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 본래부터 이미 정해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외국에서 나고 자란 어느 

한국인이 영상매체에서 자신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아르헨티나에서 한국

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 때문에 곧바로 스페인으로 가서 유년기를 보냈고, 사

춘기에는 미국에서, 대학은 프랑스에서 다녔습니다. 다행히 가정에서는 한국말을 썼고, 어머니가 한국 음

식을 자주 만들어 주어서 한국말도 어렵지 않고, 한국의 음식 맛이 어떤 것인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는 고국이라는 생각이 없고, 

어느 나라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 무소속감이 성장기에 커다란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문제를 다른 식으로 바라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어느 나라의 민족성과 일치할 수 

없듯이 인간이라면 이런 분리감은 누구나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즉 같은 나라에서 동일한 민족으로 태어난 남녀가 결혼하여 평생 함께 살더라도 둘이 일치될 수 없는 것

처럼 자신의 이런 민족적 분리감, 무소속감도 더 넓은 차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

상들 사이에서 동질성(同質性)을 찾아내어 범주화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체성이란 그것만의 

영원불변의 특징을 만들려는 사람들 생각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경험하는 모든 것은 그 어느 것도 동일한 것이 없고, 경험의 주체조차 정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자성(自性)이 없어서(諸法無我=諸法皆空=萬法無自性), 정체성이라고 할만한 

게 없는 것이 실상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동질성을 추구하고, 무리 지으며, 

무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것을 배타적으로 봅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민족성, 정체성은 익숙함일 것입니다. 특정한 자연이나 문화에 오래 노출되어 그것에 

익숙해진 업(業)을 정체성(正體性)이라고 말합니다. 앞에 예를 든 외국에 태어나고 성장한 한국인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인간성장의 결정적인 시기에 특정한 환경이나 교육에 장기간 노출되지 않

아 정체성을 형성하지 못한 것입니다. 정체성은 특정한 문화에 습관성이자, 익숙한 업이지 정해진 어떤 것

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正體性)도 외국 태생 한국인의 정체성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어나 성장하고 살아오면

서 경험한 것들이 축적되어 형성된 업, 익숙함, 의미 부여, 집착의 결과물이지 정해진 나가 아닙니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가 인정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분별작용(분별하는 마음

의 작용)이 어우러져 지금 여기서 이렇게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똑같은 것이 없고, 똑같은 경험이 없는

데 사람들의 생각만이 이런 경험을 범주화하여 하나로 묶고 똑같은 어떤 것이라고 고정시켜버립니다. 무상

함의 당연한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고통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상에 대한 미혹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지혜가 열리는 것

입니다. 무상(無常, 고정되지 않고 항상 변함)한 것이 지금 여기 눈앞에서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실.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로 텅~비어 고전불변하는 실체의 존재라고 할 게 없다는 사실에 눈뜨는 것입니다. 

적멸(寂滅)이란 이 세상 모든 것이 본래 이미 정해진 어떤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온갖 것이 찬란하게 

드러나 있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은 마치 꿈, 허깨비, 신기루, 물거품, 그림자, 환상 같은 묘유(妙有)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존재를 인정하여 그것 밖으로 벗어나는 일이 아니라, 존재라고 여겼던 것들이 존재가 아니

라는 사실에 밝아 벗어날 필요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