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사회

장백산-1 2019. 1. 19. 15:52

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사회


김장현 입력 2019.01.19. 04:43


‘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는 학벌이라는 대외용 간판을 위해 자녀 본인 뿐만 아니라, 부모, 조부모까지 모든 것을 다 던져 넣는 세태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다. 극중에서 모두가 남이 선망한다고 믿는 길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세태는 비록 다소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자신의 삶이 아닌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극중 영재는 자신이 아닌 부모가 원하는 특정 의대에 합격하자마자 등록을 포기하고 집을 나가는 방식으로 부모에게 저항한다. 자신에게 강요된 부모의 삶을 거부하고,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내고야 말겠다는 격렬한 저항.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꿈꾸어 본 모습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격렬한 저항보다는 대학에 와서도 진로를 못찾고 절망하는 등 소극적인 우회와 방황이 훨씬 흔한 경우다.


남의 삶을 사는 2류들의 모습은 진학에서만 찾을 수 있는게 아니다. 해외여행이 귀했던 시대에 앞다투어 외국으로 몰려가 국제교류를 했다는 자랑거리로 활용했던, 단체 해외연수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지의 관련 기관 방문 등은 양념에 불과하고, 주로 관광지를 ‘눈팅’하는 데 그치는 해외연수는 30,40년 전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변했다. 


2018년 해외여행을 떠난 한국인은 무려 2,400만명이다. 전 국민의 절반이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드는 이 시대에, 굳이 일정을 맞추고 혈세를 들여가며 지방의회 의원 전원이 단체유람을 떠나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팀워크과 유대는 꼭 바다를 건너야 만들어지는가. 꼭 국제교류가 필요하다면 충분한 사전 조율을 통해 실질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의 수립과 수행을 위해 필요한 인원만 해당국을 방문하면 될 일이다. 단체로 우루루 보여주기식 여행을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방의회 의원 그들이 바로 2류다.


스티브 잡스는 남의 삶을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걸어간 길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타래처럼 잘 감아서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신화를 이뤄 냈다. 그는 이민자 자녀로 주류는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관철할 수 있는 고집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결국 IT세계의 중심축이 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대흥행을 기록한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루는 프레디 머큐리 역시 자신의 삶을 산 이야기이다. ‘파로크 불사라’라는 본명을 가지고 영국령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보내져 외로운 유학생활을 해야 했던 그 사람.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한 명의 선생님 덕분에 음악을 하면 행복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고, 고전음악과 전통적 록음악을 두루 아우르면서도 누구나 들으면 흥분이 되는 음악을 그는 탄생시켰다. 수십 만 관객을 지배하는 카리스마와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세계 역시 남의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사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닐까. 자신의 삶을 사는 인생이 1류의 특질이다.


대한민국의 수준은 여전히 다른 나라와 주변 사람들을 곁눈질하는데 많은 에너지와 시간과 돈을 들인다는 의미에서 2류다. 인프라와 겉껍데기는 이미 1류와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추격자로서의 아이덴티티는 더 이상 추격할 나라가 많지 않다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제 선도자로서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만들어 가야 한다. 거기에 필요한건 바로 용기다. 도전이다. 선도자의 특질은 충분히 주변을 둘러보되, 자신의 길을 찾았을 때는 주저 없이 다 던지는 용기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이 그래왔듯이. 미세먼지와 추위로 움츠러든 우리의 일상에 용기라는 불을 지펴보자. 자신의 열정을 따라 좌고우면 하지 않고 매진할 때 겪게 되는 실패와 주변의 조롱은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신호등이다. 나는 강단에서 그런 도전적인 인재를 기르고 싶다. 남의 삶이 아닌 자신의 삶을 사는 인재를.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