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생명의 물음에 그대가 답하라

장백산-1 2019. 2. 20. 10:06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생명의 물음에 그대가 답하라

배연국 입력 2019.02.20. 09:07



후배가 사진을 보내왔다. 사람이 다니는 인도(人道) 위에 덩그러니 놓인 은행나무 토막이었다. 사람이 앉도록 만든 은행나무토막에서 싹이 난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찍었다고 했다. 거짓말처럼 은행잎이 파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무토막에게는 발을 뻗을 흙바닥도 없다. 나무토막은 뿌리로 물을 길어올릴 곳조차 없는 암담한 처지를 비관하지 않는다. 나무토막은 오로지 생명(生命)을 피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뿐이다. 자신의 몸뚱이에서 마지막 체액까지 뽑아 생명의 싹을 틔운다.

흙수저라고 자신의 처지를 폄하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손가락질하는 저 흙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라고 말하고 싶다. 흙 한 줌만 있어도 뭇 생명들이 싹을 틔우고 있지 않은가. 딱딱한 보도블록 위에 놓인 은행나무 토막에겐 그런 흙조차 없다.

내 삶이 바닥으로 추락한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삶이 힘들고 어려운 건 맞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삶을 비관할 이유는 못 된다. 떨어질 곳이 있다는 건 아직 바닥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설혹 끝까지 추락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절망해선 안 된다. “인간은 패배했을 때 끝나는 게 아니라 포기할 때 끝이 난다”는 닉슨 대통령의 어록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까. 나의 의지만 있다면 바닥도 얼마든지 디딤돌이 될 수 있다. 아래로 떨어지는 공이 그렇다. 공은 바닥에 닫는 순간, 그것을 반등의 디딤돌로 삼아 다시 틔어 오른다.

인도(印度)에 사는 27세 청년이 자신의 동의 없이 자기를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라파엘 사무엘이라는 청년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나의 동의 없는 결정이었다. 태어나면 평생 고통 받으며 살아야 하므로 아기를 낳는 것은 잘못이다”고 말했다. 생명을 오도하는 어리석음의 소치이다.

생명은 선택이 아니다. 그러니 생명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묻지 말고 생명의 물음에 그대가 답을 하라. 이제 태어났으니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저 人道의 은행나무가 印度의 청년에게 온몸으로 답하고 있지 않은가!

배연국 논설위원

연재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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