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말씀
인용문 "모든 속박을 끊어 버려 두려울 것이 없는 자,
매듭을 풀어 자유로운 자, 이러한 자를 나는 성자라 부른다.
<소부경집> 중에서
<해설> 선묵혜자 스님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닫고 나서 제자들을 45년이나 가르치고 난 후, 열반을 앞두었을 때였다. 제자 중 마하가섭은 부처님께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제발 영원히 우리들 곁에 있어 계속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 주옵소서.” 하고 간청을 했다.
“허허, 가야 할 때가 되었다. 난 45년 동안 너희들에게 설법을 하였지만 단 한 번도 너희들에게 가르친 것이 없다. 내가 한 설법은 본래부터 이미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이거늘,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설법을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설법을 더 해달라는 마하가섭을 꾸짖었다. 정말 파격적인 설법이었다. 본래부터 이미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것 그대로를 꺼내어서 다시 들려주었을 뿐, 그 이상의 설법도 하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부처님께서 가시면 이제 누구에게 설법을 들어야 하옵니까?”
“허허, 45년 동안 그렇게 설법을 하였는데도 아직 모르겠는가. 그렇게 집착을 버리라고 강조했건만.. 나는 너희들을 가르쳤지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다. 가르친 것이 있다 해도 마하반야바라밀이란 단지 그 이름뿐이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시면 이젠 누가 우리들을 가르칠 것입니까?”
부처님은 다시 대답했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하라.”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계율을 등불 삼아 살면 된다는 말이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참선이나 명상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유리잔이 하나 있다. 이 유리잔을 냉동실에 넣었다가 꺼내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유리잔은 순식간에 금이 가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는 서구가 일백년에 걸쳐 이룬 발전을 단 20~30년 만에 이루었다. 한마디로 위대한 변화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변화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그 변화에 따르는 엄청난 충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충격을 다스리는 데는 참선 같은 마음공부가 필요하다. 즉 몸이 아플때 병원이나 약방을 찾는 것처럼 종교적 삶의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마음이 행복해질 것이다. 우리 마음은 무엇이든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그러나 이 거울을 가려서 인간 스스로를 그 거울이라는 마음에 비춰볼 수 없도록 가로막는 게 바로 분별하는 허망한 생각, 분별심이다.
분별하는 허망한 생각을 걷어내면 누구나 자신을 자신의 거울에 비춰볼 수가 있게 된다. 순간 순간 밥 먹고, 물마시고, 걸어가고 하는 텅~빈 자리, 바로 그것이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그렇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마침내 연속해서 일어나는 생각 때문에 미치는 사람이 되기 쉽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미쳐가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시면서 말한 자등명과 법등명이 바로 그것이다. 자기 마음의 등불을 지켜 진리의 등불을 이어가라는 말이다. 즉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그대로를 실천하라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 살아가라는 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을 실천하기란 물론 어렵다. 있는 그대로 살라는 말은 자연의 법칙 그대로를 보라는 말과 같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열매가 맺듯이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종교생활이요 불교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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