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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가 꿈에서도 몰랐던 대답, 평화경제

장백산-1 2019. 8. 9. 22:55

[사유와 성찰]

아베가 꿈에서도 몰랐던 대답, 평화경제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입력 2019.08.09. 20:39


[경향신문]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평화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일본 경제를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와 일본을 동일시하고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어 국민적 통합을 부추기는, 민족주의적인 선동의 말이 아니어서, 대국민 메시지로서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평화경제’라는 말이 썩 맘에 들었다. 상대에게 치명적 타격을 날림으로써, 복종관계를 강화하려는 정복주의적인 상상력이 아베에게 엿보인다면, 이웃이 아니었던 대상을 새로운 이웃으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경제동력을 통해 일본을 앞지르는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발상은 매우 신선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숙고할 만한 것도 있었지만, 일부 전문가라는 이들의 비판은 비평이라기엔 너무 조야했다. 아베는 급소를 정밀하게 조준하여 우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자 하는데, 대통령의 해법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평화경제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배척하고 허황된 정책을 드리이브할 것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게 비판으로서 적절한가. 대통령이 세밀한 대응 전술을 대국민 메시지로 말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는 발상은 너무 순진한 지적이다. 또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경제가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 허황된 도그마라는 예단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명한가. 평화경제를 과학과 대립된 것이라는 이분법을 미리 전제하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하지 않은 채 수행하는 비판은 차라리 비난에 가깝다.

여러 국제적 언론매체들은 아베 정권이 무리한 경제보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일부 언론이 ‘정밀타격’이라고 평한 그것이 자국의 피해를 우회하려는 노력이 빈약한 ‘우둔한 타격’이라는 얘기다. 강상중 교수에 의하면 그것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문제제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베 일파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회의의 정체>를 쓴 아오키 오사무 교수는 아베가 속한 일본 최대의 극우 로비단체인 ‘일본회의’의 핵심 의제가 쇼와 시대로의 원점회귀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 단체 멤버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다니구치 마사하루라는 극우적 소종파 교주는 황실이 이끄는 일본은 세계의 지도국이며, 일본인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신에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주장했는데, 한국 대법원 판결이 일본 극우의 이런 도그마적 교리에 시비를 건 사건이라는 얘기겠다.

이런 추론은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이 과연 정밀한 타격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한다. 도그마에 대한 집착이 강한 탓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무튼 아베 정권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탈냉전 기류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갖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런 이들은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아마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급성장하여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경제권을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아베나 한국의 극우 세력들은 ‘냉전적 동아시아’라는 국제적 규범체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믿음이 불가능한 상상의 산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엄청난 인적·물적 자본들이 국경을 넘나든다. 보수든 진보든 국경을 넘어 네트워크되기도 하고, 그렇게 복잡해진 지구사회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한때 견고한 듯 보였던 이데올로기들의 색깔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종교도 어느 종단 소속인지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여러 종교들이 혼합된 신심으로 살고 있다. 트랜스내셔널처럼 트랜스릴리지어시티(trans-religiocity)가 새로운 주류 현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종교적인 것은 너무 세속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너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한 연구자는 BTS 현상을 포스트근대적 종교성으로 읽었다.

냉적적 질서가 근대 동아시아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탈냉전적 포스트근대적 동아시아에 대한 상상은 더 이상 너무 앞서간 생각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고민거리다. 대통령의 평화경제라는 거대 어젠다는, ‘통일대박’ 운운하는 경박한 논점보다, 훨씬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베가 상상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꿈꾸고 달려갈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은 그것을 향한 상상의 열차에 시동을 걸었다. 단 그 열차 안에서 우리는 대통령이 말했던 경제적 성공 못지않게 더 빛나는 생명권의 신장에 관한 꿈을 꾼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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