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노벨경제학상]
'게으름이 가난 초래' 통념 뒤집어,
빈곤 완화 새 접근법 제시
나윤석 기자 입력 2019.10.14. 22:35
■ 뒤플로 · 바네르지 :
교육, 보건 등 분야별 지원방식 실험, 무상복지 둘러싼 좌우대립 모두 비판
가난한 자 위한 제도엔 배려 필요성 역설, 뒤플로는 사상 두번째 여성 수상자
■ 크레이머 :
인간 노동보다 생산성 최우선 삼는 자동화의 민낯에 통렬한 비판 가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지난 2012년 국내에도 출간된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의 공저자로 유명세를 탔다. MIT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이 저서를 통해 ‘게으름과 어리석음, 무능이 빈곤을 부른다’는 일반의 통념을 과감히 뒤엎는다.
15년 동안 40개가 넘는 나라들을 누비며 가난의 현장을 목격한 저자들은 “가진 것이 없는 후진국 국민들이야말로 한정된 재화 앞에서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허기에 쩔쩔매는 빈곤층이 자식을 열 손가락이 모자라도록 낳는 것은 ‘이들 중 한두 명은 부모의 노후를 보살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며 딸보다는 아들을 열렬히 소망하는 것 역시 ‘아들의 경제적 가치가 더 높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저자들은 ‘무상원조’를 주장하는 좌파 학자와 ‘퍼주기식 복지’를 배격하는 우파 학자의 관점 모두를 비판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현실적 조건과 그들의 요구를 깊이 들여다보는 공감이 필요하며 제도를 설계할 때도 배려심을 밑바탕에 깔고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이번에 노벨경제학상을 공동수상한 마이클 크레이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의학이나 자연과학 분야에서만 통용되던 ‘무작위통제실험(RCT·Randomized Controlled Trial)’ 기법을 사회과학에 대입해 큰 반향을 얻었다. 실험군과 대조군을 무작위로 나눠 ‘처치 효과’를 비교하는 기법을 개도국의 사회보장 프로그램 실험에 적용한 것이다.
바네르지·뒤플로 교수와 함께 상을 받은 크레이머 교수도 빈곤 이슈의 권위자다. 그를 세계적인 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업적은 ‘오링 이론(O-ring theory)’이다. 오링이라는 이름은 1986년 1월 발사 도중 폭발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에서 기원한다. 인류 최고의 기술이 집적된 우주선 폭발이 바로 고무로 만든 링 형태의 오링이라는 간단한 제품의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불량 오링 때문에 새어나온 기름에 불이 붙은 것이다.
크레이머 교수는 화려한 첨단기술에 바탕을 둔 제품일수록 작은 공정 하나의 결함으로 생산과정 전체가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생산성만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인간의 노동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드는 ‘자동화의 민낯’에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개도국이 경제발전을 이끌려면 무작정 선진국의 기술개발 현황만 추격하는 대신 냉철하고 똑똑한 인적자본을 길러내는 데 우선 집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구 증가가 식량 생산량의 증가보다 빨라 인류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예언을 내놓은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이론을 배격하면서 “충분한 인구는 오히려 경제적 생산량을 급격히 확대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주장한 것 역시 세계 경제학계에 신선한 화두를 던진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노벨경제학상은 1968년 스웨덴 국립은행 창설 3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듬해부터 시상했으며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했다. 수상자는 상금으로 900만스웨덴크로나(약 10억8,000만원)를 나눠 받는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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