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왜 하필 춘추라고 했을까? - - 유안진
고향에서 왔다고 초면인사 통성명(通姓名)에
얼키설키 친인척간 촌수항렬 따지다가 묻는다
아지매는 올해 춘추(春秋) 얼마이껴?
나는 대답했다
매화 향기 매워서 재채기하며 잠 깼는데
돌아누우니 오동잎 지는 소리 들리더라고.
세월(歲月)을 왜 하필 춘추(春秋)라고 했을까?
역사는 불길보다 얼음보다 뜨겁고 냉혹한데
하동(夏冬)이라 하지 않고 왜 춘추라고 했을까?
춘추 같은 역사를 소망해서 춘추라고 그랬을까?
봄가을 같은 인생살이를 기원해서 춘추라 그랬을까?
문득 허공에 눈곱 낀 눈웃음이 빙긋이 지나간다.
나이만큼의 향기보다 나이만큼의 무게가 오래오래 지나간다.
짓눌려 쪼그라지고 휘어져 굽은 등허리가
등허리 위로 치솟은 지팡이가 길게 길게 허공에 지나간다.
한 백 년의 역사가 지루하게 허공에 지나간다.
세상살이라는 요양원 마당을 우리 모두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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