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비 받으려고 동대표? 아파트 악습 끊으려 재판을 걸다
남기업 기자 입력 2019.11.12. 10:42
[아파트 회장 분투기 16] 행동대장 '감사' 주저앉히기 작전 ②
[오마이뉴스 남기업 기자]
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동대표 전체와 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관리소장이 회장인 나를 괴롭히고 쫓아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법' 밖에 없었다. 아파트의 모든 일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추진할 수 있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관리규약이 정해 놓은 절차에 근거해서 저들을 징계할 수 없었다.
관리소장에 이어 법을 통한 징계의 두 번째 대상은 남기업 괴롭히기에 선봉에 섰던 '감사'였다. 나를 향한 불법적 표적 감사를 중지시키기 위해 '회장직무 방해금지 가처분' 재판을 신청하여 인용 받은 이후, 회의 시 핸드마이크에 대고 발언하고 사이렌을 울리는 만행을 중지하기 위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 결국 전과자가 된 이후, 그는 회의에서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동대표 전체와 선거관리위원회 그리고 관리소장이 회장인 나를 괴롭히고 쫓아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법' 밖에 없었다. 아파트의 모든 일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추진할 수 있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관리규약이 정해 놓은 절차에 근거해서 저들을 징계할 수 없었다.
관리소장에 이어 법을 통한 징계의 두 번째 대상은 남기업 괴롭히기에 선봉에 섰던 '감사'였다. 나를 향한 불법적 표적 감사를 중지시키기 위해 '회장직무 방해금지 가처분' 재판을 신청하여 인용 받은 이후, 회의 시 핸드마이크에 대고 발언하고 사이렌을 울리는 만행을 중지하기 위해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해 결국 전과자가 된 이후, 그는 회의에서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다급한 목소리로 걸려온 전화
▲ 나는 그가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을 기록하여 우리 가족 전체를 원고로 하고 그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
ⓒ 남기업 |
여기에 더하여 나는 그동안 그가 나를 괴롭혔던 모든 것을 기록하여 우리 가족 전체를 원고로 하고 그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한 데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입주자대표회의에 저질(低質) 동대표가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파트 공동체에 일절 관심이 없으면서 5만 원 회의비를 받기 위해 동대표가 되고, 뒷돈 챙기려고 파당을 지어 상식적인 동대표를 괴롭히는 우리 아파트의 오랜 관행과 악습을 끊어버리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복수'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고 싶었다.
손해배상소송 서류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자 행동대장 감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핸드폰에서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장박동수가 급증했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통화'를 눌렀다.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쏘아붙이듯 말하니 긴히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고 하는 게 아닌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며칠 후 집 근처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초췌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 그는 만나자마자 지난 1년 반 넘게 나를 괴롭혀서 정말 미안하다고 하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원에서 날아온 손해배상 서류를 받고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정신이 하도 없어서 어떤 때는 택시 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칠 뻔하기도 했다. 사실 회의 때마다 남 회장을 괴롭힌 자료들과 해임 관련 자료들은 관리사무소에서 다 작성해서 제공해준 것이다. 내가 무슨 실력이 있어서 감사보고서를 쓰고 해임요청서를 쓰겠냐. 정말 미안하다. 어떻게 무슨 말로 사과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택시운전이 직업이었던 그는 잠도 못 자고 걱정을 많이 해서인지 얼굴이 핼쑥하고 눈은 퀭해 보였다. 사실 그는 나를 괴롭힐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우리 아파트에서 4번이나 회장을 했던, 직업이 동대표인 '우두머리'야 나를 몰아낼 이유가 분명했지만 내가 보기에도 그는 이용만 당한 사람처럼 보였다. 적폐 세력의 '우두머리'와 관리소장이 행동대장 감사에게 잘한다고 부추기면서 비행기를 태워주니 완장 찬 그는 신나서 나를 짓밟았을 것이다. 물론 그 사람 내면 안에 있는 악마성도 작동했을 것이리라.
막상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분노의 감정은 누그러지고 어느새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 '과도한' 측은지심을 억누르면서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따졌다.
"당신이 회의 때마다 가한 언어적 폭력과 3번에 걸친 해임투표로 인해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는가? 회의 며칠 전부터 불면에 시달린 걸 당신은 아는가? 내게 가한 욕설과 야유와 비난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는 걸 당신은 아는가?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이렇게 정색하고 따졌더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계속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나보다 12살이나 많은 그는 잘못해서 야단맞는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꾸중하는 선생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나는 그에게 미리 준비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감사와 동대표직을 동시 사임한 후 만나서 법원에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자고. 사임하면 소송을 취하할 생각이 있지만, 만약 사임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소송과 그밖에 준비한 것을 진행하겠다고 은근히 협박(?)도 했다. 나의 제안을 들은 그는 바로 다음 날 관리사무소에 사임계를 제출할 테니 며칠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사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감사
이렇게 사임을 약속했지만 그는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기 일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 동대표 선거에 출마한 것이라고 내게 말하기까지 했음에도 그는 사임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내 계획은 만약 사임하면 내가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사과문을 써서 공고하라고 할 계획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전은 불발로 끝났다.
그가 사임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화술이 좋기로 소문난 우두머리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우두머리는 아마도 '당신이 동대표직과 감사직을 사임하면 남기업이 당신에게 손해배상소송 취하를 무기로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른다'는 말로 설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적폐 세력의 몸통 입장에서는 행동대장인 감사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오른팔이었던 관리소장도 전과자가 되어 결국 아파트에서 쫓겨났는데, 거기다가 왼팔인 감사마저 빠져나가면 조직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감사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감사님, 어제 관리소장에게 확인하니 사임을 안 하셨더군요. 사임 안 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니 좀 아쉽습니다. 아마도 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이 컸겠죠? 저는 나름대로 신뢰를 드린다고 했는데…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까지 준비하고 계획한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운전 조심하십시오."
나는 이 소송을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에게 맡겼다. 그는 내가 아파트 일로 고통을 당하는 처음부터 법률적 자문은 물론 직접 사건을 맡아 승리로 이끈 변호사였다.
재판 시작 후 회의에서 만난 감사는 나의 눈을 피했고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어두웠고 침울해 보였다.
재판 결과는 '원고 패소'
이렇게 정색하고 따졌더니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 계속 고개를 숙였다. 어느새 나보다 12살이나 많은 그는 잘못해서 야단맞는 고등학생이었고 나는 꾸중하는 선생이 되어있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 나는 그에게 미리 준비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감사와 동대표직을 동시 사임한 후 만나서 법원에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하자고. 사임하면 소송을 취하할 생각이 있지만, 만약 사임하지 않으면 손해배상소송과 그밖에 준비한 것을 진행하겠다고 은근히 협박(?)도 했다. 나의 제안을 들은 그는 바로 다음 날 관리사무소에 사임계를 제출할 테니 며칠 후에 다시 만나자고 했다.
사임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감사
이렇게 사임을 약속했지만 그는 정작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기 일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 동대표 선거에 출마한 것이라고 내게 말하기까지 했음에도 그는 사임 약속을 끝내 지키지 않았다. 내 계획은 만약 사임하면 내가 소송을 취하하는 대신 그동안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한 사과문을 써서 공고하라고 할 계획이었는데, 아쉽게도 이 작전은 불발로 끝났다.
그가 사임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화술이 좋기로 소문난 우두머리의 꼬임에 넘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우두머리는 아마도 '당신이 동대표직과 감사직을 사임하면 남기업이 당신에게 손해배상소송 취하를 무기로 무슨 요구를 할지 모른다'는 말로 설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적폐 세력의 몸통 입장에서는 행동대장인 감사가 꼭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오른팔이었던 관리소장도 전과자가 되어 결국 아파트에서 쫓겨났는데, 거기다가 왼팔인 감사마저 빠져나가면 조직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감사에게 나는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
"감사님, 어제 관리소장에게 확인하니 사임을 안 하셨더군요. 사임 안 할지도 모르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현실이 되니 좀 아쉽습니다. 아마도 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이 컸겠죠? 저는 나름대로 신뢰를 드린다고 했는데… 잘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금까지 준비하고 계획한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운전 조심하십시오."
나는 이 소송을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에게 맡겼다. 그는 내가 아파트 일로 고통을 당하는 처음부터 법률적 자문은 물론 직접 사건을 맡아 승리로 이끈 변호사였다.
재판 시작 후 회의에서 만난 감사는 나의 눈을 피했고 발언도 거의 하지 않았다. 얼굴은 어두웠고 침울해 보였다.
재판 결과는 '원고 패소'
▲ 주소변경신고를 법원에 제출하는 걸 깜빡하는 뼈아픈 실수를 저질렀다. 법원에서 재판 관련 서류가 한 장도 날라오지 않길래 기다리다 못해 확인해보니 '폐문부재 3회'로 재판은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 |
ⓒ 조정훈 |
민사재판의 특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게다가 중간에 재판부가 바뀌어서 손해배상소송의 재판 진행은 더 늦어졌다. 임기가 끝난 감사는 일반 입주민 자격으로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출석했다.
그런데 재판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소액재판이어서 주문 이유도 없었다. 억울했다. 더구나 재판비용도 내가 물어야 했다. 오재욱 변호사도 재판 결과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병원 진단서도 첨부해서 이런 경우에는 '원고 일부 승소'가 나오는 게 일반적인데, 아마도 주문 사유서를 쓰지 않는 걸 이용해서 판사가 제출서류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내린 판결로 보인다고 했다.
나는 바로 항소했다. 그런데 내가 항소장을 제출한 직후 같은 아파트에서 다른 동으로 이사했다는 주소변경 신고를 법원에 제출하는 걸 깜빡하는 뼈아픈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닌가. 법원에서 재판 관련 서류가 한 장도 날라오지 않길래 기다리다 못해 확인해보니 폐문부재 3회로 재판은 이미 종결되어 있었다. 너무나 아쉬웠다.
행동대장 감사는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민사재판과 형사재판과 고소로 1년 넘게 고생하고 시달린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아파트 관리사무소 쪽으로는 오줌 누기도 싫다고 말했다"고 한다. 잠도 못 자고 정신이 멍해서 운전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하니 맘고생이 상당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나의 실수로 그에 대한 보복 작전은 여기서 종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우리 아파트 적폐 세력의 우두머리는 대체 어떻게 활동하길래 '직업'이 동대표가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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