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세상은, 인생은, 삶은 순수한 사랑의 춤 그 자체가 되리라

장백산-1 2020. 2. 18. 20:24

세상은, 인생은, 삶은 순수한 사랑의 춤 그 자체가 되리라


어느 집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다. 저녁무렵 나는 그집 정원에 앉아 있었다. 그집 작은 아이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아니?”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맑고, 감수성이 더 예민하다. 반대로 어른들은 이미 온갖 고정관념과 종교, 사상, 지식으로 오염되어, 마음이 맑지 못하다. 


내 질문에 그 집의 작은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하시네요.”


나는 다시 물었다. “그 질문이 뭐가 그렇게 굉장히 어렵니?”


아이는 대답했다. “저는 이 집 외아들입니다. 손님들이 집에 오실 때마다, 어떤 분은 제 눈이 아버지 눈을 닮았다 하고, 어떤 분은 제 코가 어머니 코를 닮았다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제 얼굴이 삼촌 얼굴을 닮았다 합니다. 그래서 제가 혼란스러워져서 저는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제가 저를 닮았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경우는 모든 아이들에게 일어난다. 누구도 아이들이 아이들 혼자 아이들 자신을 경험하도록 놔두지 않는다.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부모가 성취하지 못한 욕망을 짐으로 지워준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이 부모들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식들에게는 자식들만의 운명이 있다. 자식들이 부모의 모습을 따라간다면 절대로 자식들 자신이 되지 못한다. 자식들이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면, 그런 자식들은 삶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없고 결코 편안함을 맛보지 못한다. 자기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자식들은 언제나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같은 기분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부모는 자식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자식들 역시 부모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머니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런 말에서 이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단지 어머니이고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이 부모를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를 사랑할 만해야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는 자식들로부터 사랑 받기가 불충분하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부모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르는 부모들은 사랑받는 것을 자식들에게 기대한다. 


부모들이 이 지경까지 되면 가엾은 자식들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단지 부모를 사랑하는 척하기 시작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척 하는 방법 그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자식들은 가슴속에서는 웃고 싶지 않은 데 얼굴에 미소를 짓기 시작한다. 부모에게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표하지만 그런 사랑, 존경, 감사는 모두 가짜이다. 자식들은 어려서 처음부터 연극을 하는 배우가 되고, 위선을 저지르는 정치가가 되는 법을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부모, 선생, 성직자들은 사람들을 오염시켜 부패하게 하고, 사람들의 원래자리에서 밀어내 사람들의 진정한 자신과 멀리 떨어지게 만든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원래자리, 원래중심, 즉 사람들의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이러한 일을 ‘명상(冥想, meditation)’이라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 원래자리, 원래중심으로 존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자긍심을 갖고 존재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신, 즉 원래자리, 원래중심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시작한다. 우선 원래중심, 원래자리,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오라. 그리고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한 자신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라.


자신의 본래얼굴, 원래중심, 원래자리,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사랑의 삶, 축연(祝宴)의 삶이 시작된다. 그런 사람들은 많은 사랑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게 된다. 사랑은 마르지 않는 것이기에 사랑은 측량할 수도 없고 다하는 법이 없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사랑은 더 많이 줄 능력이 생긴다.


삶, 세상, 인생에서 가장 큰 경험은 내가 베푸는 사랑에 대한 반대급부, 즉 내가 사랑을 준 사람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것에 대한 기대조차 없이 어떤 조건도 없이 그저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오히려 주는 사랑을 순수히 받아준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사랑을 받는 그 사람은 사랑을 받는 것을 거절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아주는 모든 사람에게 사람들이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사랑을 줄 수 있을 때, 그대는 놀라게 된다. 그대는 이집저집 문을 두드리며 사랑을 구걸하는 걸인이 아니라 이미 황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놀라는 것이다. 그대가 이집저집 문을 두드렸던 집의 주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 그들은 걸인이기 때문이다. 걸인들은 사랑을 구걸하면서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사랑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을 주는 일은 황제에게 속한 것이지 걸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사랑으로 가득 차서 아무 조건 없이 사랑을 줄 수 있으면, 그가 바로 황제이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누구에게나 심지어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주기 시작하면, 누구에게 사랑을 주느냐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을 주는 기쁨이 엄청난데 누가 사랑을 받느냐에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런 상황이 그대에게 일어날 때, 그대는 단지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나무, 먼 곳에 있는 별들에까지 계속 사랑을 나누어준다. 아주 먼 곳에 있는 별을 다정한 눈길로 한번 바라보는 것으로 그 별에게 그대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나무를 그냥 한번 쓰다듬는 것으로 나무에게 그대의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필요 없다. 침묵만으로 사랑을 전할 수 있다. 사랑이란 말을 할 필요없이 사랑은 그 자체로 표현된다. 사랑은 존재 깊숙한 곳까지 도달하는 길을 잘 안다.


누구나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한다. 그 다음에 사랑을 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사랑을 주는 그대는 주는 사랑만큼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잘알지 못하는 미지의 근원으로부터,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나무,강, 산으로부터, 존재의 모든 구석과 후미진 곳으로부터 그대에게 보내지는 사랑이 그대의 머리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그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리라. 그렇게 되면 세상은, 인생은, 삶은 순수한 사랑의 춤 그 자체가 되리라. 


- 오쇼의 <사랑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정리 by 오아시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