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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왜 괴로운 걸까?

장백산-1 2020. 9. 14. 11:07

현실은 왜 괴로운 걸까?   - - 법상스님

현실은 세상은 삶은 언제나 현실, 세상, 삶이 그대로 있어야만 하는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있는 것이 지금 여기에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일까요?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에 이렇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있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세상 현실 삶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고, 조금도 남는 것도 없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온전
하고도 완전하게 이렇게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전부 사람들의 생각일 뿐이며, 
세상, 현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일 뿐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 세상 삶에서 더 이상 해야할 무언가는 없습니다. 현실 세상 삶은 언제나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이어야 합니다. 현실이, 세상이, 삶이 어떤 식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사람들 제각각의 생각이며, 망상이고, 판단, 해석일 뿐입니다.

세상은, 현실은, 삶은, 진리는 늘 있어야 하는 온전한 그대로, 있는 그대로 늘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대문에 누구도 세상, 현실, 삶, 진리에 대해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어떤 규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세상, 현실, 삶, 진리에 대해서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해서 어떤 규정(規定)을 
내리는 순간 세상, 현실, 삶, 진리는 사람들의 허망한 분별 망상 환상일 뿐이고, 실체가 없는 그런 
허망한 분별 망상 환상이 바로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원인(原因)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곧장 이렇게 반박하고 싶을 것입니다. '이 엉망진창인 세상, 
현실, 삶 이대로가 진리(眞理)라고?', '지금 이렇게 괴로운데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여야 한다고? 아니야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상황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구!'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가 아닌, 내가 
원하는대로 삶이 변해야지만 행복해질거야!' '다른 사람들처럼 돈도 많이 더 벌고, 더 건강하고, 더 성공
하고 나면 그 때서야 행복해질거야'

어런 식으로 생각은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지금 여기 현재의 내 상태를 괴로움이라고 규정짓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라는 현실, 세상, 삶, 진리에 대한 나의 규정, 판단, 해석, 분별이 없으면,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는 그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일 뿐입니다. '아니야'라고 소리치고 있는 그 생각이 
없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현실, 세상, 삶이 나에게 정말 도움이 될지, 안 될지를 알 수 
없습니다. 과거를 생각해 보면, 그 때는 괴로움이라고 여겼지만, 훗날 되돌아보면 그 때의 괴로움이 
나를 살렸구나, 나를 성장시켰구나 라고 느끼곤 합니다. 현실, 세상, 삶에 대한 내 생각, 내 판단, 내 
해석만을 믿고, 현실, 세상, 삶에 대한 내 생각, 내 판단, 내 해석에 힘을 실어주면서, 내 현실, 내 세상, 
내 삶, 인생은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입니다.

이처럼 사실은 현실, 세상, 삶에 대한 내 생각, 내 판단, 내 해석이 나를 괴롭힐 뿐이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있는 그대로의 삶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근원
에서 보면 세상은 현실은 삶은 결코 나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엉망진창인 
현실 세상 삶조차 말이지요.

이 세상, 삶, 현실 그대로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세상, 현실, 삶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삶, 현실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에 세상, 삶, 현실은 결코 나를 괴롭힐 수가 없습니다. 세상,현실,
삶은 나를 늘 도울 뿐입니다. 무엇으로 도울까요? 세상, 현실, 삶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입니다.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 세상, 현실, 삶은 이처럼 장엄한,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자비입니다. 삶은, 세상은, 현실은 언제나 나를 
완벽하게 돕고 있습니다. 그러니 허망한 생각으로, 망상으로, 분별로 괜한 걱정을 만들어 괴로워하지 마
십시오. 오로지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나를 죽일 뿐입니다. 삶, 현실, 세상은 나를 괴롭히지 않고, 오
히려 늘 나를 돕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내가 현실, 세상, 삶의 도움을, 그 사랑을 도움이라고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할 뿐이지요.

무명, 어리석음, 원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별이라는 원죄, 생각이라는 어리석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바른 견해(정견/正見)의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없으니, 늘 세상, 현실, 삶을 내 식대로 시비 분별 비교 판단하고,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내 
생각으로 해석하기만 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善惡果)를 따먹자마자 그즉시 원죄(原罪)가 생겨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합니다.
선악과는 세상을 현실을 삶을 선 악, 옳고 그름, 좋고 싫음, 내 편 네 편 등으로 나누고 분별을 일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말하는 겁니다.

이분법적인 그같은 생각, 망상, 분별이 올라오자마자, 우리는 곧장 에덴동산, 천국, 장엄한 정토에서 
쫓겨나 이 현실, 세상, 삶이라는 괴로움의 바다, 고해(苦海)에 내던져지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라는 현실, 세상, 삶은 괴로움이야'라는 생각이 없다면, 지금 여기에 곧장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여법한 에덴동산, 천국, 불국토가 펼쳐집니다.

세상을, 현실을, 삶을, 진리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있도록 허용해 주세요. 내 생각으로 세상을, 현실을, 
삶을, 진리를 규정, 판단, 분별, 해석하려고 하지 마세요. 세상과, 현실과, 삶과, 진리와 싸우지 마세요.
삶, 세상, 현실 그대로가 진실 진리입니다. 그러니 현실을, 세상을, 삶을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허용해 주고, 사랑해 주고,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허락해 주세요.

이 아무것도 아닌, 할 일 없는 무위행이야말로 우리가 실천해야 할 단 하나의 실천 아닌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