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냥 순수한 환희와 기쁨만 존재한다.
사람들이 갖고있는 두려움이라는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남보다 특별해지도록 노력하게 만들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대의 에너지를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는 데 쏟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도록 모든 에너지를 쏟는 데 있다.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그대는 진정한 자기 자신, 본래의 나, 진짜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같은 사실을 분명히 자각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리 달아날수록,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이 불멸(不滅)의 존재이며 죽음은 결코 없다는 진리를 알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그대가 진정한 자신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을 자각하게 되면, 죽음은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다. 왜냐하면 죽음은 생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은 생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과 함께 사람들의 모든 두려움도 사라져버린다. 이것은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는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두려움과 정신분열, 자신의 죽음을 없애줄 수 있는 뭔가를 찾으면 찾을 수록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부터 더 멀리 달아날수록, 그대의 두려움과 정신분열과 죽음은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오히려 내면으로 들어가서 진정한 자기 자신의을 발견하는 게 더 낫다. 이것은 아주 단순한 논리이자 간단한 산수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떠나 다른 곳을 헤매기 전에 자신의 내면부터 탐색해보라. 세상은 광활하기에 사람들은 세상을 탐색하는 도중에 길을 잃을 것이다. 그러니 광활한 세상보다 우선 자기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라. 아마 사람들이 외부에서 찾고 있는 것이 이미 자신의 내면에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위대하다는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 어떠한 예외도 없이 자신이 외부에서 찾고있는 것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 이미 본래부터 존재한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같은 진실은 예외가 전혀 없는 유일한 진실이다. 아주 오래된 과거로 돌아가 봐도 전혀 바뀌지 않는 진실이다. 진정한 자기 자신을 자각하게 된 깨달은 사람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영원불멸(永遠不滅)의 존재이다.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란 것은 없다. 삶은 끝을 모른다.”
그러니 우선 먼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라. 자신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을 단 한 번이라도 힐끗 보라. 그리고 자신의 영원불멸성(永遠不滅性)을 단 한 번이라도 힐끗 보게 되면 그것은 마치 사람이 악몽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모든 두려움, 죽음, 공포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그저 그냥 순수한 환희와 기쁨만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꽃들이 영원히 향기를 내뿜는 것과 같다.
- 오쇼의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