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악착동자

장백산-1 2020. 10. 8. 14:13

 

 

 

 

악착동자   - -  김희자

인기척이 없는 법당 안은 고요하다. 목에 건 카메라를 내려놓고 삼배(三排)를 올린다. 느닷없이 찾아든 불청객의 몸놀림을 부처님은 실눈으로 내려다본다. 빈 곳을 꼭 무언가로 채워야만 성미가 풀리는 것인가? 궁금증이 발동하면 악착같이 캐고야 마는 본성 때문에 속잠까지 물리치고 달려왔다. 어설프게 절을 마친 내 시선이 대웅보전 천장 아래로 가서 착 달라붙는다. 

천장 대들보 아래에 반야용선이라는 매달려 있다. 용 모양의 긴 나무 배는 중생을 태워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는 배라고 전한다. 반야용선에 동자가 악착같이 매달려 있다. 외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동자인형의 모습이 위태롭기 그지없다. 배 아래에는 허공의 고요를 깨며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듯하다. 요동치는 배를 보니 내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거친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에 오르려는 동자의 모습이 눈물겹다. 악착스런 그 모습은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사투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여명이 물결치는 새벽 강을 건너 이곳까지 달려온 나 역시 악착동자와 무엇이 다르랴.

반야용선에 매달려있는 악착동자를 보며 번뇌의 강을 건너려는 나를 발견한다. 피안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동자처럼 나 역시 파도 치는 세상에서 헤어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채워지지 않는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나를 괴롭히며 안달을 낸다. 무언가가 명치에 걸려 삭여지지 않을 때면 한곳만을 바라보며 집착한다. 

내가 갈구하는 세계에 도달하려면 새벽길을 달려오는 수고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스로 반야지혜, 공의 지혜, 깨달음을 얻어 피안에 이를 수 있다면 금상첨화련만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런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이곳은 생전에 덕을 쌓으면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반야용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매달린 동자처럼 나 또한 세상이라는 외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나아간다.

무릎을 꿇고 악착동장에 도취해 있으니 삐걱! 하고 법당 문 여는 소리가 난다. 회색 옷을 차려입은 노(老)보살이 법당 안으로 살포시 발을 들여놓는다.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보살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한 후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시작한다. 내 마음이 활짝 열렸음인가. 보살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부처님의 얼굴에서 따스한 미소가 느껴진다. 삼배를 올리나 싶었더니 절은 끝이 없이 이어진다. 정성을 다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나는 미동도 않고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한 발 한 발 나아가려는 노(老) 보살의 모습이 악착같다. 두 손과 두 다리는 굽고 허리 또한 휘었다. 머리에는 하얀 눈이 수북이 내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인다. 슬며시 눈을 감고 귀를 여니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보살의 숨소리가 깊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또 무릎을 꿇는 소리가 난다. 몸을 최대한 낮추는 모습을 보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무엇을 얻고자 저렇게 쉬지 않고 절을 올리는 것일까? 마음을 모으는 모습이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더디기는 하지만 쉼 없이 절을 올리는 노(老) 보살의 얼굴에 급기야 땀방울이 맺힌다. 여름날의 훈기까지 더해져서 얼굴 위로 삐질삐질 땀이 흐른다. 하지만 보살은 육체의 고통이  영혼의 해방을 가져온다고 믿는 어느 수행승처럼 묵묵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움푹 파인 눈에는 물기가 살짝 고인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도달한 것 같은 희열에 차 있기도 하다. 그러다 오그라진 두 손을 다시 모으며 울듯이 입을 연다.

 "좋은 날 좋은 시에 자는 잠에 데려가 주이소!"

순간 죽비가 내 등짝을 후려치듯 무언가가 내 가슴을 세차게 때리고 지나간다. 더 오래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일진대 삶의 끈을 스스로 내려놓고자 하는 저 모습을 어찌 헤아려야 하는가. 지금 이 자리 현재의 삶이 행복하다면 저렇게 간절하게 자신을 '자는 잠에' 데려가 달라고 빌 수 있을까? 자는 잠에 데려가라는 저 모습은 어쩌면 삼십 년 후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진다. 더디게 절을 마친 노(老) 보살의 숨소리가 법당 안과 밖의 고요을 깬다. 가뿐 호흡을 고르며 눈을 지굿하게 감고 앉았다. 평안하게 앉아 있는 노(老) 보살의 모습 뒤로 피안의 세계가 보인다.

사방 천지가 집착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자신만의 번뇌의 강이 제각각 존재한다. 나는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이곳을 찾았는데 노(老) 보살은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친다. 종교를 불문하고 피안은 결코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다른 세상이 아니라 우리 가까이, 자신 내면에 있다고 일러준다. 악착동자와 노(老) 보살은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사람에 집착하는 우리 자신을 한번 쯤 돌아보라고 경종을 울리는 것 같다.

몸을 추스른 노(老) 보살이 법당을 나간다. 노(老) 보살의 발자국을 따라 나도 법당 문지방을 넘는다. 무릎을 쓰다듬으며 비칠비칠 걷는 뒷모습이 쓸쓸하기보다는 오히려 평안하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욕망을 자연스레 내려놓은 저 보살처럼 나도 잠시 집착의 끈을 놓아볼까.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외줄을 놓아 버리면 왠지 허전할 것 같지만 이곳 산중에서만이라도 놓고 싶다. 절집 마당을 걸어가는 노(老) 보살의 뒷모습이 점점 작아진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보니 쪽빛 하늘에 반야용선 같은 구름 한 점이 둥둥 떠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