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의 실상(진면목), 진영(眞影)
고승 진면목 담긴 불교회화 이제라도 제대로 평가돼야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에는 성월(城月)이라는 스님의 진영(眞影)이 있다. 문경 김룡사에 있다가 근래 직지사로 모셔왔다는 성월 스님의 진영은 19세기 후반에 조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월 스님의 진영(眞影)을 자세하 보면 10폭짜리 병풍을 배경으로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은 스님이 앉아있다. 오른손에는 굵직한 염주를, 왼손에는 주장자를 쥐고 있다. 스님의 뒤편으로 책 더미와 그 위에 한문으로 쓰인 경전이 펼쳐져 있고, 안경도 놓여있다. 오른 쪽에는 필통이 있고 그 안에는 여러 자루의 붓과 봉투, 두루마리가 촘촘히 꽂혀있다. 성월 스님의 이 진영(眞影)에서 유일한 글은 왼쪽 위의 ‘摠持諸方大法師城月堂眞影(총지제방대법사성월당진영)’이라는 12자의 제목만 있을 뿐이다. 교학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고는 생각되지만 성월 스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진영(眞影) 연구의 기본은 그곳에 담긴 찬문(讚文: 찬탄하는 말)과 상징성에 있다”는 신대현 능인대학원대학 교수는 진영(眞影)에 자세한 설명이 없더라도 상징성을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영(眞影)은 해당 스님의 실제 모습을 그대로 묘사하기보다 내면세계(內面世界)를 드러내 보이는 데에 더 역점을 두기에 여러 상징적인 요소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신대현 교수는 ‘불교 고고학’ 제5호(위덕대박물관, 2005)의 ‘고승 진영(眞影)의 이해와 감상을 위한 시론’에서 성월 스님의 진영(眞影)에 대해 해석했다.
신대현 교수에 따르면 책 더미 위에 펼쳐진 경전과 안경에서 스님이 평소 책을 가까이 했으며, 조금 전까지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경전에 펼쳐진 글자를 확대해 살펴보니 ‘법화경’ 중 ‘수기품’이었다. ‘수기’란 부처님이 보살 등에게 다음 세상에 성불할 것이라는 예언이라는 점에서 이는 성월 스님이 생전에 쌓은 공덕이 그만큼 컸다는 의도를 담겼다고 파악했다. 경전 위에 놓인 안경도 허투루 넘길 수 없다. 19세기 후반 고관대작이 안경을 썼다는 묘사가 종종 나타나는 것으로 볼 때 진영에 안경이 등장하는 것에서 성월 스님이 교단 내에서 높은 지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밖에 신 교수는 몇몇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진영의 특징과 그것을 읽는 구체적인 독법을 소개하고 있다.
진영(眞影)은 연원이 오래되고 지금도 조성되는 불교미술의 영역이다. 관련 연구자들에 따르면 중국에서 5세기 이전 시작돼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된 진영(眞影)은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만들어졌음을 여러 기록으로 알 수 있다. 특히 고승을 추모하는 의례가 정착되면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도 진영이 활성화 됐고, 여말선초에는 삼화상으로 불리는 지공, 나옹, 무학 스님의 진영(眞影)을 모신 사찰들이 크게 늘었다. 우리나라 진영(眞影)의 전성기는 17세기 이후다. 진영(眞影)이 출가자의 정체성과 법의 정통성, 문중의 위상과 직결되면서 많은 사찰에서 진영(眞影)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진영(眞影)은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다른 불교적인 특성이 정착되고 후대에 지속적으로 계승됐다.
진영(眞影)은 고승의 삶과 사상, 불교문화와 의례, 문중 관계들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다. 그럼에도 진영(眞影)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일반 초상화의 범주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많은 진영(眞影)들이 보존의 사각지대에서 방치·훼손돼 왔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불교문화재연구소가 내년 1월부터 ‘전국 사찰소장 불교문화재 일제조사(2002~2013)’ 자료를 토대로 815점의 진영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진영을 본격적인 연구와 보존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재형 국장
진영(眞影)은 참된 것(眞)과 허상(影)의 합성어로 고려시대부터 스님의 초상화로 일컫는 말로 사용됐다. 꿈과 같고 허깨비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세상에서 진리의 삶을 추구했던 구도자의 면모를 지칭하는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있다. 이번 ‘한국의 고승 진영(眞影) 정밀 학술조사’가 진영(眞影)에 담긴 가치를 밝혀내고, 복원·보존으로 진영(眞影)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았을 고승의 실상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mitra@beopbo.com
[1564호 / 2020년 12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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