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자연(自然)은 존재하는 것 외에 일체의 다른 목적이 없다.

장백산-1 2020. 12. 14. 15:55

성인들의 법문 - 존재의 목적


자연(自然)은 존재하는 것 외에 일체의 다른 목적이 없다.

임의적으로 인간들이 인위적으로 꽃이라고 이름을 지어붙인 꽃이라는 것을 예로 들어보자. 꽃은 그 꽃 이외의 다른 어떤 존재를 위해 피지 않는다. 꽃은 시장에서 팔려나가기 위해 피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해서 향기를 맡게 하려고 피는 것도 아니다. 또한 꽃은 금메달의 영광을 차지하려고 피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장식품이 되려고 피는 것도 아니다. 꽃은 그저 그냥 핀다. 꽃은 꽃이 핌 그 자체가 목적이며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꽃은 아무 목적 없이 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은 아무 목적이 없어야만 활짝 필수 있다. 꽃이 핌 이외의 다른 목적이 있으면 필연적으로 꽃이 피는데 장애가 생긴다. 에를 들어 꽃이 행인의 눈에 띄기 위한 목적으로 핀다고 하자. 그러면 지나가는 행인이 없으면 꽃은 어떻게 될 것인가? 꽃은 피지 않고 행인이 지나갈 때만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피기를 거부한 꽃은 막상 행인이 지나갈 때에도 피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꽃봉오리를 닫고 있는 상태가 습관처럼 굳어졌기 때문이다. 꽃이 활짝 피는 것은 아무 목적도 없기 때문에 활짝 피는 것이다. 꽃이 아무 목적도 없이 그냥 활짝 피는 것처럼 인간 또한 아무 목적 없이 피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꽃처럼 자연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했다. 이것이 인간이 어려움에 처한 원인이다. 인간은 완전히 자연에서 어긋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상태로 돌아감 또한 일종의 목적이다. 내가 말하는 목적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비유된다. 어떤 사람의 발에 가시가 박혔으면 다른 가시를 이용해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해보자. “내 발에는 박힌 가시가 없습니다. 그러니 왜 박히지도 않은 가시를 빼내야한다는 말을 합니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가시를 빼내야하는 문제가 없다면 왜 내게 어떻게 가시를 빼내야 하는지 자문을 구하는가?”라고.

발에 가시가 박혀있지 않다면 내게 질문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발에 가시가 박혀있다면 다른 가시를 이용해 발에 박힌 가시를 빼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발에 박혀있는 가시 하나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다른 가시로 또 발을 찔러야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발에 이미 박혀있는 첫 번째 가시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발에 박혀있는 그 가시는 다른 가시를 이용하지 않으면 빼낼 방법이 없다. 다른 두 번째 가시가 발에 박혀있는 첫 번째 가시를 빼주었다고 해서 발에서 빼어진 첫 번째 가시가 두 번째 가시에게 고마워하며 계속해서 그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일단 발에서 첫 번째 가시가 제거되고 나면 두 개의 가시 모두를 버려야 한다.

이 두 가시의 경우처럼 인간들의 비자연적인 삶이 일단 자연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나면 자연이냐 비자연이냐 라는 두 가지 분별하는 개념마저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완벽하게 자연상태의 삶인 것이다. 자연에 대한 분별하는 생각조차 사람들을 비자연적인 존재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목적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목적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그대가 이미 자신의 삶에 수많은 목적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대의 피부에는 수많은 가시들이 박혀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몸에 박혀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제거할 수 있는 다른 가시가 필요한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 오쇼의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 정리 by 오아시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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