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진실(眞實)한 사랑 ⑥

장백산-1 2021. 3. 24. 00:59

진실(眞實)한 사랑 ⑥

 

강요 없이 상대 진작(振作)시키는 게 진실(眞實)한 사랑

 

진실(眞實)한 사랑은 ‘향광장엄’ 같아서 서로의 향기가 배이는 것

진실(眞實)한 사랑은 어떠한 강요나 구속 없이 서로의 정신적 성장 진작(振作)시킨다

 

 

법정 스님의 ‘말과 침묵’ (1982)에는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라는 경구가 절실하게 다가와서 처음 독송한 이래 늘 잊혀 지지 않고 울림을 준다. 원출처가 ‘능엄경’으로 표시된 말씀을 스님의 번역문 그대로 옮겨 본다.

 

“한 사람은 일념(一念)으로 상대방만을 생각하는데 그 상대방은 일념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요 보아도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를 생각하여 생각하는 두 마음이 간절하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능엄경’ 제5권 끄트머리에 나오는 말씀으로, 대세지법왕자(大勢至法王子)가 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로부터 염불삼매( 念佛三昧)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들은 비유이다. 인도 승려 반랄밀제가 한역하였는데,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는 “동어형영(同於形影)”으로,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는 “불상괴리(不相乖異)”로 표현되고 있다. 초일월광불(超日月光佛)의 비유는 이어진다.

 

“시방의 여래가 중생을 연민함은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같은데(시방여래인념중생여모억자/'十方如來憐念衆生如母憶子), 만약 자식이 달아나 버린다면 비록 어머니가 생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약자조거수억하위/ 若子逃逝雖憶何爲). 자식이 어머니를 생각함이 어미가 자식을 생각함과 같을 때(자약억모여모억시/子若憶母如母憶時), 어머니와 자식은 여러 생을 지나더라도 서로 어긋나거나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모자역생불상위원/母子歴生不相違遠).”

 

이가틍 말씀은 염불삼매( 念佛三昧)에 들기 위한 비유로 설해진 말씀이지만, 부처님과 중생 간의 사랑, 어머니와 자식 간의 사랑을 ‘상응(相應)’의 관점에서 설하고 있다. ‘능엄경’에서는 향(香)을 물들이는 사람의 몸에 향이 배이는 것과 같다(여염향인신유향기/如染香人身有香氣)고 하여 향광장엄(香光莊嚴)이라 표현하고 있다.

 

진실한 사랑은 향광장엄(香光莊嚴)의 상응관계이며, 여기에는 두 가지 초점이 내재해 있다. 하나는 동반(同伴)이다.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 서로 떨어지지 않고 동반(同伴)하는 것이 '사랑'이다. 다른 하나는 서로 떨어지지 않되 향기가 자연스레 배이듯이 어떤 강요나 구속 없이 상대를 진작(振作)시키는 것이 '사랑'이다.

 

동반(同伴)은 주(主)와 반(伴)이 고정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장엄하는 화엄의 주반변증(主伴辨證)이 이상적이다. 이 땅 주요 산들의 주봉(主峰)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받아 비로봉(毘盧峰)이 많은데, 금강산(金剛山)이 비로봉(毘盧峰)의 대표적인 예가 된다. 금강산 비로봉(毘盧峰)이 우뚝한 것은 그 나머지 일만 이천이나 되는 반봉(伴峰)이 함께하여서 더 우뚝서 보이는 것이다. 이 반봉(伴峰)들 또한 비로봉(毘盧峰)이 있기에 제 자리를 찾고 있다.

 

동반(同伴)에는 남성이 주가 되고 여성이 반이 되어야 한다든지, 또는 그 역이 좋다든지 하는 고정관념이 없다. 다만 사안에 따라 상호의논하고 상호반영하고 상호협동하여 완전한 화엄만다라를 이룬다. 상응하여 동반(同伴)하는 사랑이야말로 화엄만다라처럼 장엄하고 아름답다.

 

진작(振作)은 사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소유나 집착을 넘어 서로를 평안하게 하고 상대의 향상을 위해 배려함을 일컫는다. 자녀에게 의대 진학을 9년간에 걸쳐 강요하다가 참극을 맞은 일본 시가현 한 어머니와 그 가족의 참담한 사연을 이 시간에도 듣는다. 이는 자녀에 대한 부보의 잘못된 '사랑'이 빗은 비극이다.

 

세계인들이 성경과 나란히 간직한다는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1978)에는 '사랑'을 “자기 자신이나 혹은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도와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사랑의 정의'가 진작(振作)과 연결될 수 있다. 스캇 펙은 상대를 강요하거나 구속함 없이 자신을 확대해 나가는 의지를 '사랑의 본질(本質)'로 삼는다. 이같은 의지는 타인의 정신적 성장을 진작(振作)시킨다.

 

동반(同伴)과 진작(振作)이 어우러진 '진실한 사랑'은 쌩떽쥐페리가 ‘인간의 대지’(1939)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둘이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한 유명한 말과 부합된다. 둘이 동반(同伴)하되 마주보고 있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함께 진작(振作)해 나가는 것이 '진실(眞實)한 사랑'이다.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78호 / 2021년 3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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