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무대(明鏡亦無臺)

장백산-1 2021. 3. 24. 12:19

육조단경 : 보리본무수(菩提本無樹) 명경역무대(明鏡亦無臺)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보리(깨달음)에는 본래 나무가 없으며,
明鏡亦無臺(명경역무대) 밝은 거울 역시 받침대가 없다네.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본래부터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埃(하처야진애) 어디에 티끌 먼지가 낄 것인가. -육조 혜능-

방편상의 명칭인 보리(菩提)는 역시 방편상의 명칭인 여래(如來)/ 불성(佛性)/ 진여(眞如)/ 여래장(如萊藏)을 의미하고, 방편상의 명칭인 명경(明鏡)은 본래의 마음/ 마음의 본체를 의미합니다. 본래마음/ 명경(明鏡)에는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세상 모든 정신적 물리적인 現象(法)이 하나도 빠짐없이 비춰집니다. 마치 먼지나 때가 끼지 않은 깨끗한 거울에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빠짐없이 비춰지듯이 마음거울에 비춰집니다.

心是菩提樹(심시보리수)  마음은 보리수요,
身爲明鏡臺(신위명경대)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 된다네
明鏡本淸淨(명경본청정)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니,
何處染塵埃(하처염진애)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로 더러워지겠는가 -신수대사 -

마음은 깨달음/ 보리(菩提)를 이룰 수 있는 통로지요. 그래서 보리 나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음은 곧 거울이며, 몸은 거울의 받침대.. 결국은 몸도 이 마음거울에 비친 하나의 영상(影像), 그림자 입니다. 마음거울에 온갖 분별을 하는 마음을 투영(投影)한 그 마음도 그림자, 영상(影像)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거울'은 衆生心/ 투영심/ 생멸심/ 망상/ 분별심(分別心)이 아니고,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영원히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항상 머무는 청정(淸淨)한 상주진심(常住眞心), 청정(淸淨)한 법신(法身)을 뜻합니다.

상주불멸 불생불멸하는 진심, 본심, 본성, 불성, 청정한 법신, 진짜 나가 '마음거울' '우주거울'입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거울도 모든 사물을 예외 없이 있는 그대로 다 비춥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마음거울, 우주거울, 청정법신, 진심(眞心), 본심, 본성(근본성품), 불성, 진짜 나, 부처, 깨달음, 도(道), 본래면목, 주인공 등의 방편(方便)의 명칭도 모든 것을 항상 있는 그대로 다 비춥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게 다 마음거울, 청정법신에 비춰 보이는 것이지요. 마음거울, 우주거울, 청정법신, 진심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있는 그대로 비춰줄 뿐입니다. 

하지만, 마음거울, 청정法身에 비춰지는 건 전부 실체가 없는 꿈, 환상(幻像), 그림자(幻影), 허깨비입니다. 육신의 눈이 바깥에 있는 사물을 보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거울에 사물의 형상이 비춰지는 거지요. 육신의 눈을 뜨면, 바깥의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근데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눈을 감아도 사실 아무것도 안보이는 게 아니죠. 눈을 감아도 시꺼먼 것, 암흑세상이 보입니다. 그러니 육신의 눈을 뜨거나 감거나 상관 없이 항상 보이는 겁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영원히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청정법신, 진심, 본성(마음의 본래성품), 본래의 나, 진짜 나는 육신의 눈을 뜨고 보던 감고 보던 뭘보던 항상 보는 겁니다. 항상 동영상을 찍는 카메라가 쉼없이 계속해서 이 세상을 촬영하듯이 항상 보는 겁니다. 다만 보여지는 대상만 바뀔 뿐 입니다. 이게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本體의 作用입니다. 부동(不動)의 그 마음, 부동심, 마음거울, 본성, 본래면목, 진짜 나가 만물의 본체(本體), 우주의 근원(根源), 존재의 본질(本質) 입니다.

육신의 눈이 보는게 아니라, 마음이 보는거죠. 마음거울, 本體에 비춰진 마음의 그림자(幻影)을 마음이 보는 겁니다. 이 마음거울인 본체(본체)와 인간의 분별심(分別心)과 마음의 그림자(影)인 온 우주삼라만상만물 이 셋은 각각 따로따로 분리(分離)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 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착각(錯覺)을 하지요. 육신의 눈을 감으면 아무것도 안보인다고 착각(錯覺)을 합니다. 육신의 눈을 감아도 시꺼먼 암흑세상이 보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나, 진짜 나, 본성(마음의 본래성품), 마음거울, 우주거울, 청정법신,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진심은 항상 영원히 보는 겁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청정법신, 우주거울, 마음거울, 본성, 본체, 진짜 나가 항상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영원히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꼼짝달싿도 하지 못하고 평생 이 영원한 동영상 카메라에 인간의 모든 행위(行爲 ; 모든 생각, 모든 말, 모든 행동)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몽땅 녹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 짓고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청정법신, 진짜 나, 본래의 나, 우주거울, 마음거울, 본성, 본래면목, 본체(본래바탕)은 볼려고 해서 무엇이 보여지고, 안볼려고 해서 무엇이 안보여지는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항상 보여지는거죠.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본체, 마음거울이 영원히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그래서 육신의 눈을 감아도 시꺼먼 암흑세상이 보여지는 겁니다. 세상을 보는 놈 이놈이 바로 그놈,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본체, 마음거울, 본성, 청정법신, 본심, 진심, 법성, 진성, 도, 공, 진짜 나, 본래의 나, 근원의 나, 본래면목, 불성, 부처, 하나님입니다. 

근데 왜 육신에 달려있는 눈은 그 육신의 눈을 볼 수가 없는가? 육신의 눈에는 보는 놈, 즉 보는 본체(本體), 본바탕,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청정법신, 본성, 마음거울, 우주거울, 진짜 나, 본래면목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마음의 본성(本性)을 터득하고 나면, 인간의 오온(五蘊 ; 색, 수, 상, 행, 식 ; 육신, 느낌 감정, 생각 망상 번뇌 잡념 상상 환상 이미지, 욕망 욕구 충동 의지 의도, 분별심 분별의식 알음알이(識) 지식 지견 견해 이해)와 육근(六根 : 눈, 귀, 코, 혀, 피부, 생각) 조차도 모두 다 청정(淸淨)해져서 그것들 그대로 佛性, 본바탕, 본래마음, 본성, 진짜 나, 근원의 나, 본래면목, 부처, 道, 진리, 깨달음, 무시무종으로 영원히 상주불멸(常住不滅)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청정한 法身, 마음의 본체,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 이 자리 그 자체다 라고 합니다. 이같은 깨달음을 터득하기 전에는 인간의 투영(投映)하는 마음에 때가 껴서 때가 낀 그 중생의 마음으로 세상을 봤기 때문에 세상이 더럽게 보였던 것이겠지요.

마음은 공적(空寂)하고 적멸( 寂滅)하고 적적(寂寂)할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보고, 다 듣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공적영지/空寂靈知) 그 덕분에 인간이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고, 발명도 하고, 발견도 하고, 개발도 하고 해서 문명(文明)을 이뤄나갈 수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