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같은 사람 속에 우주를 머금고 있다.
아미타부처(아미타불/阿彌陀佛)은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한량(限量)없는 수명(壽命), 즉 무량수(無量壽)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한량(限量)없는 광명(光明), 즉 무량광(無量光)으로 세상에 나투시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일컬어 방편으로 무량수불(無量壽佛) 혹은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미타불(阿彌陀佛)은 무량수(無量壽) 무량광(無量光)의 시공(時空)을 무량(無量)한 마음(心), 즉 무량심(無量心)으로 무한(無限)히 나투고 계십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찰나지간에 억겁(億劫)의 시간과 삼천대천세계라는 공간을 나투시며 어리석은 중생교화에 무량심(無量心)으로 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무한(無限)한 마음나툼은 이미 내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우리네 중생은 그 무량수 무량광으로 펼쳐진 무한법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무량법계를 무량심(無量心)으로 살아가지 못합니다.
그렇게 시공의 어느 한 귀퉁이로 좁혀진 유한(有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유한(有限)한 마음으로 사는 세상 속에서 괴로움, 답답함, 조급함, 두려움 등으로 안달복달하게 되는 겁니다. 마음을 확장하면 무한(無限)이지만 반대로 마음을 좁히려고 들면 한없이 좁아지는게 우리네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원래 무한(無限)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봅시다. 시야를 무한한 시공으로 무한히 확장시켜 봅시다. 무한한 시공에서 인간은 참으로 작은 한 점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티끌은 티끌이되 티끌 그 안에 무한한 우주를 머금고 있는 무한한 티끌입니다. 이같은 사실을 일컬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표현합니다. 한 티끌 속에 무한한 시방세계, 즉 우주를 머금고 있다.
시야를 무한의 관점으로 확장시키면 왠만한 경계(境界)는 너무도 작은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인생에서의 가장 큰 경계(境界)는 '죽음(死/滅)' 일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死/滅)'이라는 경계를 무한(無限)한 시공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란 존재의 나고 죽음 또한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일 뿐입니다.
무한한 관점에서 보면, 무량수 무량광 아미타부처님 시야에서 보면 사람들이 목숨걸고 싸우며 투쟁하는 또 괴로워하는 그 크나큰 경계들 또한 한바탕 웃음으로 웃어 넘길 수 있는 연극일 수 있습니다. 목숨걸고 싸우는 일, 목숨걸고 투쟁하는 일은 인간이 그 경계 대상에 얽매여 괴로워해야 일이 결코 아닙니다. 인간의 시야를 아미타불의 무한한 시야로 확장시켜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작은 경계들에 목숨걸고 괴로워하며 집착하여 얽매이고 그럽니다.
직장 상사에게 참기힘든 욕을 얻어 먹었다거나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인연 그 상황은 어떤 사람을 참기힘든, 걷잡을 수 없는 괴로움으로 내 몰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연 그 상황 또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세상살이의 작은 일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릴적 그렇게 힘겹고 괴롭던 기억이 이제와 새삼스레 즐거운 추억이 되기도 하며, 지금와서 넓게 보면 오히려 나를 더 클 수 있도록 성숙시켜 준 감사한 경계일 수도 있었음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괴로운 순간에 우리의 마음은 지옥을 오가며 극단적으로 자살을 꿈꾸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그 순간 괴로운 그 상황에만 머물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는 사람의 마음은 지금 자살하고 싶은 그 괴로운 마음이 평생 지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자살하고 싶은 그 괴로운 마음도 무량한 관점에서 본다면 한 순간 경계가 만들어낸 환영같은 비실체적인 순간적인 괴로움에 불과합니다.
무한히 확장해서 보는 관점은 지금의 괴로움을 "괴로운 마음"으로 보지 않고 그저 무량법계를 이어오는 하나의 "괴로운 인연"으로 볼 수 있는 정견(正見)의 시야를 길러줍니다. '괴로운 마음'은 나를 얽어매는 고통의 사슬이지만 '괴로운 인연'은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 새로운 밝은 인(因)을 지을 수 있도록 하는 수행을 하는데 감사한 재료일 뿐입니다.
시간적으로 보다 넓고 길게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무량수억겁의 시간 흐름 가운데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괴로움이 억겁의 찰나임을 아는 순간 얽매이는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보다 멀리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십시오. 나로부터 멀리, 더욱 더 멀리 떨어질수록 보다 명쾌하게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아상(我相)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됩니다. 무한한 우주 속에 나라는 존재가 한 티끌임을 아는 순간 나라고 하는 집착, 아집을 놓아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세상살이, 인생, 삶 그거 별것 아닙니다. 수행자에게 세상은 참 즐겁게 연극을 하는 무대일 뿐입니다. 연기를 하는 당사자는 괴로운 역을 하고 있지만 한 발 떨어져 보는 관객들은 여유롭듯, 연극은 하더라도 그 역할에 빠지지 말고 한발 떨어져서 연극을 보는 관객들처럼 무한히 확장된 관점은 수행자에게 여여함과 당당함 걸림없는 길을 열어보여 줄 것입니다.
2009.04.23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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