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지도 않고(부증/不增) 줄어들지도 않는(불감/不減)) 법 - 법상스님
부증불감(不增不減)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현상계의 모든 물질적 존재(存在)와 모든 정신적 존재(存在)는 양(量)적으로 상대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무한(無限)한 존재(存在)로서 원만(圓滿) 구족(具足)한 성질(性質)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물질적, 정신적 존재(存在)는 그 자체로서 이미 원만 구족되어 있으나, 사람들의 분별심(分別心)이 늘어난다고 줄어든다고 잘못 생각해서 잘못된 차별을 일으킨다는 말입니다.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이치(理致)를 올바로 터득하면 참으로 부유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智慧)가 열립니다. 돈이 백만 원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백만 원의 돈은 많은 돈입니까 적은 돈입니까. 대답하자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돈일 것입니다. 즉, 어떤 사람에게는 백만 원이 많은 돈일 수 있으며, 어떤 이에게는 적은 돈일 수도 있습니다.
백만 원을 갖고 평범한 사람들은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벌 총수들에게 백만 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하는 적은 돈일 수 있습니다. 본래 백만 원이란 돈에 많다, 혹은 적다라는 고정된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백만 원은 매우 가난한 인도나 북한의 불쌍한 가정에서라면, 수억 원과도 맞먹는 값어치가 있으며, 대재벌에게 있어서라면 몇천 원, 몇만 원과도 같은 돈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같은 백만 원이지만 인연(因緣) 따라 누구에게 백만 원이 주어지는가에 따라 많은 양의 돈이 되어 늘어날 수도 있으며, 반면에 줄어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의 마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이지, 백만 원이라는 돈 자체에 어떤 증(增)이나 감(減)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연기(緣起)의 세계, 공성(空性)의 세계에서 백만 원을 본다면 부증불감(不增不減)입니다.
이렇듯, '내 것'이라는 소유도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에서 공(空)의 측면에서 보면 증감(增減)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좀 더 넓게 보아 내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것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쉬운 비유를 든다면, 내게 돈 만 원이 있을 때, 오천 원을 배우자에게 준다면 내 돈은 줄어들었지만 배우자의 입장에서는 돈이 늘어난 것입니다. 즉, 우리 가족 전체로 본다면 부증불감(不增不減)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나와 배우자를 분별하고 가르는 마음이 있다면 당연히 증감(增減)이 있게 마련이며 배우자에게 오천 원을 주었을 때 내 마음이 괴로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자와 나를 가르는 마음이 없으며 둘은 하나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이 '하나'라는 생각이 있다면 돈을 주고 받았을 때 부증불감(不增不減)이며, 내 것이 없어져도 괴로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내 것이 곧 배우자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이것을 좀 더 확대하여 우리 사회 전반에 관련지어 봅시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사회 전체를 가족처럼 '하나'라고 생각했을 때, 즉 사회와 '나'를 가르는 마음이 없고 '하나'라는 마음을 가질 때, 우리에게는 '내 것'이라는 소유욕(所有慾)이 사라지게 됩니다. 내 것이 사회의 것이고, 사회의 것이 내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와 너라는 분별심(分別心)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와 너를 가르는 마음, 즉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4가지 상(相)을 끊어버리는 것을 수행의 궁극으로 보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를 볼 것'이라고 한 부분을 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상(相)이란, 바로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의 네 가지 상(相)을 말합니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사상(四相)의 기본은 아상(我相)이며 아상(我相)이 있기에 인상(人相)이 있게 됩니다. 즉, '나다' 하는 상, 아상(我相)이 있기에 '너다' 하는 상, 인상(人相)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의 핵심은, 바로 '나'와 '너'를 가르지 않는 마음, 즉 우리 전체(全切)가 일체(一體)로서의 하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늘어난다 줄어든다는 개념(槪念)이 사라져버립니다. 이런 '하나'의 철학(哲學)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불교를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의 종교'라고 할 때, 지혜(智慧)는 '하나'라는 진리(眞理)를 통찰할 수 있는 지혜를 말하며, 자비(慈悲)는 너와 내가 진정 '하나'가 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실천행입니다. 타인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정신입니다.
아상을 깨고 보면 '내 것'이 사라집니다. '내 것'이 사라졌을 때 이 우주 법계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부증불감(不增不減)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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