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聖者)의 의미를 묻는 바라문 학인을 교화하다 ①
성자(聖者)란 욕망이 없으며 번뇌를 완전히 떠난 사람을 말한다.
성자(聖者)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고뇌 없고 욕망없는 사람이라고 대답
성자(聖者)란 성자로서 사는 사람, 삶의 모습 통해 절로 드러나
성자(聖者)를 뜻하는 말로 ‘무니(muni)’란 단어가 있다. 무니는 ‘현명한 자, 성자, 현인, 침묵의 성자’ 등으로 뜻이 설명되고 있다. 그래서 석가모니(Sākiyamuni)란 ‘석가족 출신의 성자’란 의미가 된다. 구루(Guru)란 단어도 있는데, 이는 보통 ‘스승, 선생’ 등의 의미로 많이 사용된다. 흔히 빤디뜨(Pandit)로 알려진 빤디따(Paṇḍita)의 경우는 ‘학식있는 자, 현인, 선생’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한편 불교 전통에서만 국한한다면 붓다, 아라한, 보살 등은 모두 성자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성자라고 하면 ‘무니’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숫따니빠따’ 제 5장에 16명의 바라문 학인들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대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8번째 대화는 난다(Nanda)라는 바라문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에서 난다는 어떠한 사람이 성자인지를 석가모니 부처님께 여쭙고 있다.
[난다] ‘세상에는 성자들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하는데, 어째서 그렇습니까? 사람들은 지혜를 갖춘 자를 성자라고 부릅니까? 혹은 생활을 갖춘 자를 성자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붓다] 난다여, 이 세상에 착하고 건전한 사람은 견해로나 학문적으로나 지혜를 가지고 성자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적이 없어서, 고뇌가 없고, 욕망이 없이 행동한다면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성자라고 나는 말합니다.
지혜를 갖춘 자(ñāṇ’ūpapanna)란 말 그대로 통찰, 지혜로운 자를 말한다. 보통 지혜로 알려진 단어는 빤냐(paññā, 반야)가 있는데, 냐나(ñāṇa)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불교는 지혜를 강조하는 종교이니 지혜로운 사람을 성자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한편 냐나(ñāṇa)는 특별한 지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라문 난다는 이러한 의미들을 담고 있는 폭넓은 의미에서 질문한 것이 아닐까? 한편 생활을 갖춘 자(jīviten’ūpapanna)는 주석의 설명에 따르면 ‘거친 생활’로 살아가는 수행자를 의미한다. 거친 생활이라고 하면 ‘고행’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고행이라고 하면 ‘출가’를 연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고행과 출가는 그 의미가 다르다. 출가(出家)는 말 그대로 ‘집을 떠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집은 공간적 의미에서 집이 아니다. 바로 ‘소유의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출가란 ‘소유하지 않는 삶’을 말한다. 고행도 출가의 한 유형이긴 하지만 고행주의가 추구하는 방식과 부처님이 말씀하신 출가의 삶은 그 의미가 다르다.
난다는 성자란 지혜를 갖춘 자나 일반적인 삶의 방식을 포기한 특별한 삶의 방식을 갖춘 자를 말하는 것인지를 여쭙고 있다. 이 질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성자(聖者)란 그러한 것과는 관련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착하고 건전한 사람은 꾸살라(kusala)를 번역한 말인데, 그 의미는 ‘도덕적으로 선하며, 건전한 상식을 지닌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 없는 자’란 의미이다. 이러한 사람은 어떤 견해나 지혜를 갖고 성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지혜란 궁극적 지혜로 사용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의 방식과 관련해서 ‘고행’과 같은 어떤 특별한 방식이 아닌 ‘적이 없음’ ‘고뇌가 없음’ ‘욕망이 없음’으로 규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이 없다(visenikatvā)는 것은 분별 망상 번뇌가 없음을 말한다. 혹은 실제적으로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성자(聖者)란 자신을 적대시하는 사람을 적대시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욕망이 없다는 것은 ‘갈망하는 바가 없다’는 것으로, 갈애(渴愛)의 부재를 의미한다.
결국 성자(聖者)란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으로서, 분별 망상 번뇌를 떠난 고요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그 사람의 삶의 모습을 통해 드러나는 바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스스로를 ‘행위론자’라고 말하듯이, 성자란 성자로서의 삶을 사는 사람임을 알 수 있고, 그의 삶은 구체적으로 분별 망상 번뇌를 떠난 삶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자(聖者)는 말을 떠난 존재이지, 성자(聖者)로 평가받는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난다는 이 가르침에 기뻐하며 ‘태어남과 늙음’에 대한 가르침을 청하게 된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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