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에나 나는 깨닫게 될까?
깨달음을 얻는 것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내가 과연 깨달을 수
있을까 없을까의 의문이 아닌 '언제' 깨달을 것인가 하는 시기(時期)의 문제에 있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세월 긴 시간동안 오랜 윤회가 필요할 지는 모를지라도
분명한 사실은 언젠가는 우린 모두 깨닫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을 한다면 우리들은 모두가 본래 이미 깨달아 있는 존재들인데
그같은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실 하나는, 바로 그 관건이 되는 언제쯤이라는
'시간(時間)'의 실체가 환상(幻想)이라는 사실이다.
즉 언제 깨닫게 될 것인가 하는 이 절체절명의 문제가 바로 '시간(時間)'의 실체가 환상(幻想)이라는 사실
이 지점에서 공(空)해지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깨닫고자 애태우고 애쓸 필요가 없으며,
깨닫겠다고 하는 모든 인위적 노력이 무력해지는 순간이다.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즉 지금 이 순간이 곧바로 무량한 시간 이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깨닫는 것과 미래의 어느 날 어느 때에 깨닫는 것이 다르지 않다.
지금 이 순간 속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람들은 깨닫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 온 것인가!
도대체 사람들은 어디를 향해 그리도 바쁘게 앞만보고 달려가고 있던 것인가?
그러면 이제 어찌하여야 하겠는가. 그렇다. 깨닫고자 하는 모든 인위적인 노력을 멈출 때이다.
어디로 더 이상 달려갈 곳이 없다. 깨닫고자 하는 그 모든 욕망과 허망한 생각을 깨버리고
그저 편안히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자리에 힘을 빼고 앉아 있으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이 자리에 그저 휴식하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이 자리에 다만 존재하라.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이 자리에 이제 그만 멈춰라.
그렇듯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이 자리에서 그동안 지금까지 해오던 모든 유위적 행과
노력을 멈추고 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그저 관객이 되어 편안히 쉬면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거룩한 여기 이 자리에 멈춰서 바라보는 것(지관,정혜) 말고 무엇을 더 하려는가.
2012.01.21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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