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고 여기기에는 눈 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 질문 > 없다고 여기기에는 눈 앞에 있는 것들이 너무나 생생합니다.
< 답변 > 누군가가 길의 흙을 파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었소. 한참 후에 관원(官員) 한 사람이 그 길을 지나가다가 흘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발견하고는 다시 부수어 흙을 팠던 길을 메꿨소. 이럴 때 어리석은 사람은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 생겼다가 잠시 머물다 다시 사라졌다고 말할 것이오.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을 만들고 부숴버린 전 과정을 통해 흙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은 일찍이 생겼던 적도 없고 다시 사라지는 일도 없이 그저 길의 흙일 뿐,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말할 것이오.
여러분이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만 쫓아가다 보면 ‘아까’는 ‘생겼다가’ ‘지금’은 ‘사라지고’ 등등의 아까와 지금, 생기고 사라짐 등의 온갖 분별 차별 구별 구분이 생기지만 온갖 분별 차별 구별 구분 그 너머 근본 바탕인 흙을 볼 줄 아는 사람은 번잡하게 뭔가가 일어난 듯하지만 실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훤히 알 수 있는 거요.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소. 사람의 형상은 일찍이 생겨난 적도 없고 지금에 사라지는 일도 없는 게 진실이오. 세상일을 관조할 줄 아는 달관한 사람 눈엔 모든 일이 일어났을 때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와 똑 같은 거요. 모든 형상은 인연생 인연멸 하기 때문에 텅~빈 것이라는 사실을 한 순간도 잊지 않기 때문이요. 그래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일이 실제로 그렇게 벌어진다고 여기는 자는 제도 못한다는 말이 있는 거요.
지혜로운 사람은 뭔가 눈앞에 보이면 부끄러워하오. 오죽하면 그대 앞에 산이 있으면 삼라만상이 그대를 현혹하리라는 말을 했겠소. 그대의 눈 앞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소. 여기서 법을 설하는 사람도 없고 거기 앉아서 뭘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도 없는 거요. 그저 비출 뿐이오. 모두가 참된 하나이기 때문이오.
현정선원, 가산님이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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