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봄꿈(춘몽)

장백산-1 2022. 3. 13. 23:01

봄꿈

 

허망 아닌 충일의 마침표 찍는 방법

뛰어난 문학성과 상징성 갖춰

가장 아름다운 마침표는 죽음

의천은 부처님 삶 비슷한 점 많아

‘수구’는 ‘물에 담근’ 번역 적절

 

봄꿈(춘몽)
부귀영화가 모두 다 봄꿈이요
모임과 흩어짐, 삶과 죽음 다 물에 담금이네.
극락에 정신 내려놓고 깃드는 것 외에
머리 굴려 어떤 일을 헤아려 쫓고 구할 것인가.

春夢(춘몽)
榮華富貴皆春夢(영화부귀개춘몽)
聚散存亡盡水漚(취산존망진수구)
除却栖神安養外(제각서신안양외)
算來何事可追求(산래하사가추구)

- 우세의천(祐世義天, 1055~1101)


우수(雨水)가 지났다. 곧 경칩(驚蟄)이다. 우수(雨水)와 경칩(驚蟄). 이십사절기가 돌아올 때마다 나는 우리 조상들의 탁월한 작명(作名) 솜씨에 놀라곤 한다.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하(立夏), 소만(小滿), 망종(芒種), 하지(夏至), 소서(小暑), 대서(大暑), 입추(立秋), 처서(處暑), 백로(白露), 추분(秋分), 한로(寒露), 상강(霜降), 입동(立冬), 소설(小雪), 대설(大雪), 동지(冬至), 소한(小寒), 대한(大寒), 이 얼마나 문학적이고 상징적인가. 이름만 들어도 작금이 무슨 계절인지 안다. 상징성 또한 참으로 명징하다.

이왕 나온 김에 문학성 높은 절기 몇 개만 알아보고 가자. 입춘-봄이 선다(시작된다). 우수-비가 와서 고인다(겨울 빗물이 얼어붙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세밀한 관찰이고 높은 문학성인가). 경칩-겨울잠을 자던 개구리 등이 꿈틀거리며 칩거에서 깨어난다. 청명-세상(날씨)이 맑고 밝아진다. 곡우-봄비가 내려 곡식이 윤택해진다. 소만-만물이 생장해 온 누리에 가득 찬다. 대서-더위가 몹시 심하다. 처서-남은 더위가 몹시 왕성하다. 백로-흰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 한로-추운 이슬이 내린다. 상강-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대설-눈이 매우 많이 온다. 대한-추위가 매우 심하다. 이 얼마나 높은 문학성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는가.

각설하고, 우세의천은 대각국사(大覺國師)다. 그런데 이상하다. 의천 스님의 이 시를 읽는데 왜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 먼저 오버랩 되는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까닭이 있었다. ‘부귀영화(富貴榮華)’, ‘춘몽(春夢, 봄꿈)’, ‘취산(聚散, 모임과 흩어짐), ’존망(存亡, 삶과 죽음), ‘수구(水漚, 물에 담금)’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스러지는’, ‘이슬’,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말하리라’라는 시구와 저절로 겹쳐졌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귀천’(하늘로 돌아가는 일, 죽음)은 삶의 최종 덕목이자 최고 덕목이다. 하늘로 돌아가는 일이 없다면 생(生)은 참으로 비루하고 비참할 것이다. 스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삶이 빛나고 위대한 것은 하늘로 돌아가는, 돌아가야 할 마침표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찍는 마침표 중에서 그보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마침표는 없다. 모든 죽음 앞에서 우리가 겸손해지고 평등해지는 까닭이다. 의천 스님과 천상병 시인은 지금 ‘봄꿈’과 ‘귀천’을 통해, 허망의 마침표가 아닌 충일의 마침표를 찍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춘몽’과 ‘이슬’, ‘취산’과 ‘존망’, ‘하늘’과 ‘소풍’에 걸려 삶의 마침표를 허망으로 읽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뜻이다.

사족 한 가지. 의천 스님의 삶은 붓다의 삶과 비슷한 점이 많다. 왕자의 몸으로 출가한 붓다처럼 의천 스님 역시 왕의 아들(고려 11대 문종의 아들)이었다. 부귀영화와 영락(榮樂)의 삶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본질과 본성을 찾아 출가한 것이다.(고려 12대 순종, 13대 선종, 15대 숙종이 그의 친형이었으며, 14대 헌종은 숙부였다. 의천 스님도 출가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문종)로부터 하사받은 ‘우세(祐世)’라는 호도 의천 스님의 꽉 찬 삶을 느끼게 한다. ‘세상[世]’을 (유익하게) ‘돕는[祐]’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사족 한 가지 더.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수구(水漚)’를 ‘물거품’으로 번역한다. 그러나 필자는 ‘물에 담근’으로 직역했다. ‘물거품’은 너무나 진부하고 따분하지 않은가. ‘물에 담근’으로 직역해야 질감과 문학성이 살아난다. 실제로 삶을 물에 담그면 형색(形色)조차 없이 녹아버린다.

승한 스님 빠리사선원장 omubuddha@hanmail.net

[1622호 / 2022년 3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