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내 안의 부처를 찾는 지름길이다
인터넷이나 신문에 실린 글을 읽고 나를 처음 찾아오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그럴때마다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꿎하게 수행하시는 분들을 뵈면서 숙연해지고, 경책이 되기도 한다. 마음공부하는 사람에게 좋은 도반을 얻는 것은 부처님 말씀처럼 ‘깨달음의 반이 아닌 깨달음의 전부’를 얻는 그런 밝은 성찰을 가져다 준다.
그런데 나를 찾아오는 분들 중에 때때로 대화를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상대도 있기 마련인데, 대화가 주로 자신의 수행이나 공부를 내세우고자 하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길 바라는 마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진실하게 드러내지 않고 덧씌워진 가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는 마음이 있는 이상 사람들은 부자유스럽고 이것 저것에 걸리는 것이 많아진다.
‘누구처럼’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내가 나 자신을 버리는 일이고, 지금 여기 있는 나 자신으로써 드러나는 부처를 무시하는 일이다. 의도적으로 나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타인에게 비춰지기를 바라지 말고, 다만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자연스럽고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부처로써의 내가 온전히 드러나는 것이다.
불자들은 대부분이 ‘부처님처럼’ 살려고 애를 쓰면서 부처님처럼 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한다. 그러나 부처님처럼 산다는 말의 본래 의미는 어떤 삶의 특정한 모습이나 양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고,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의 나로써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처님처럼 되려고 애쓸 때 그때 그 순간 우리들 마음의 평화는 깨진다. 되고자 하는 ‘부처’가 있고,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한 ‘나’가 있다는 분별이 있기 때문에 그 간격만큼의 부자유스러움과 분리가 우리를 괴롭게 한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솔직함’ ‘진실함’이다. 내면의 마음이나 느낌에 진실하고, 감추는 것이 아무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못난 속 뜰 까지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 좋지, 애써서 포장하고 감추지 않아야 한다.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내적으로 순일하지 못하고 순수하지 못하다. 어둡고 탁하며 두렵고 떳떳하지 못하다. 그래서 참회 중에도 가장 좋은 참회는 대중 앞에서 스스로 솔직하게 잘못을 드러내어 내면의 어두운 업장을 활짝 털어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여기 있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자.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잘 보여질까 애쓰지 말고, 솔직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랬을 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현존할 수 있고, 지금과 미래의 간격이 좁아지며 ‘지금 여기’를 사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 때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어떤 갈등이나 부자유스러움도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
‘변화’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순간 찾아온다. ‘어떻게’ 변하겠다고 바라는 것 보다, 어떻게 변하겠다고 하는 그러한 마음을 다 놓아버리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마음껏 드러내며 현존할 수 있을 때 가장 획기적이며 지혜로운 내적인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변화는 이렇듯 안에서부터 와야 한다.
법상 스님 <법보신문/2004-06-23/7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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