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분별함이 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장백산-1 2023. 12. 1. 14:47

분별함이 없이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하기...


몸이 나라고 여기는 '생각'만 없으면 몸과 눈 앞에 보이는 컵이 둘이 아닙니다.
몸은 '나'고, 눈 앞에 보이는 컵은 내가 아닌 대상이라는 것 자체가 생각'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생각, 아상, 에고, 아견이 없다면 어떨까요?
느껴지는 어떤 것에 '나'라고 이름 붙이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몸이라고 이름 붙인 이것에 '내 몸'이라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저 있는 그대로가 경험될 뿐입니다.
바람이 불어와 몸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냥 바람이라고 이름 붙인 어떤 현상이 경험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코라고 이름 붙인 곳에서 들숨과 날숨이라고 이름 붙인 바람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말은 전부가 다 생각이고, 해석이고, 언어이기 때문에 참된 진실이 아닙니다.
말에 사로잡히지 말고 말에 끌려다니지 말고 들어봐 주세요.

코를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바람과 외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우리는 나와 남이라고 둘로 나누어 놓았지만, 
사실 '나다' '너다'하는 둘로 나누는 분별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저 공기의 움직임이 감지될 뿐이지 않은가요?

컵이 만져지고, 책이 만져지고, 흙이 만져지듯이, 이 몸도 만져질 뿐입니다.
음식의 냄새가 알아지듯이, 몸에서 나는 땀냄새 또한 그저 알아질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음식 냄새는 내 밖의 대상 경계이고, 그것은 어떤 음식이라고 이름 붙여서 대상화시킨 뒤에 알아차립니다.
몸에서 나는 땀냄새에 대해서는 그저 알아질 뿐이지만, 거기에 해석을 붙여서, '내 몸에서 나는 땀냄새'라고 아상을 개입시키는 겁니다.

사람들의 그러한 습관적인 해석, 아상, 나다하는 생각을 멈추고 바라본다면 그저 보일 뿐이고, 들릴 뿐이지, 거기에 나와 너는 없습니다.
그저 경험될 뿐입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 느껴질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중도이고, 팔정도의 정견이며, 명상이고, 위빠사나이며, 지관수행입니다.
그것이 곧 아상타파입니다.

이렇게 보는 연습을 해 보세요. 습관적으로 이 몸과 생각을 '나'라고 여기고, 바깥의 모든 것들을 대상이라고 여기던 생각을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자각해 보세요.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