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득지(轉識得智), 앎(식)이 아닌 지혜로 보라
사람들이 똑같은 거리를 걸었을지라도 사람에 따라 그 거리에서 본 것은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며, 같은 음식의 냄새를 맡으면서 좋다는 사람도 있고 싫다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마음은 이처럼 외부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대로 인식한다. 자기 마음에 끌리는 것만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허망한 착각, 즉 아상이 생겨나면 무엇이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해석하려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아집이고, 욕망이며 탐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저마다 자기가 아는대로, 자기 욕심대로 대상을 선별해서 차별적으로 분별해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대상을 분별해서 인식하는 의식을 육식(六識 : 6가지 의식, 즏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라고 한다고 한다. 육식, 즉 마음은 언제나 대상을 분별해서 인식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싫어하는 것들, 내가 관심가지는 것들과 관심 없는 것들, 나에게 도움 되는 것과 도움 되지 않는 것들을 분별해서 인식하기 때문에, 똑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사람들의 의식은 자기의 탐욕에 일치되는 것들만 받아들여 인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등산을 했는데, 건축업자는 나무의 쓰임새만 보며 걸을 것이고, 사진작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는 마음으로 산길을 볼 것이며, 꽃 연구가는 꽃에만 눈길이 갈 것이다. 또한 마음이 괴롭고 우울한 사람은 숲길 또한 음침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마음이 기쁨에 넘쳐 있는 사람은 생기로운 숲과 달콤한 공기, 맑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산행 후에 각자가 본 것을 말하라고 한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다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처럼 의식이라는 분별심으로써 세상을 인식하게 되면, 저마다 자기의 욕심과 탐욕이 원하는 것들을 기반으로 대상인 명색을 인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아는대로, 자기가 만들어 놓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육식에 의한 인식 또한 환영에 불과하며, 온전한 의식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경전이나 법문들에서는 ‘분별심을 버려라’는 무분별의 가르침을 설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왜곡해서 보는 것이다. 그로 인해 온갖 분별, 판단, 비교, 평가 등이 생겨나며, 그 결과 우리의 삶이 복잡해지고 괴롭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모든 괴로움은 사실 진짜 괴로움이 아니라 내가 괴로움이라고 분별, 왜곡하여 인식한 환영일 뿐이다. 즉, 내 스스로 외부의 대상을 왜곡하고 분별해서 인식한 뒤 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 인식을 대상으로 괴로움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내면에서 일어난 허망한 장난일 뿐이다. 진짜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괴로워 할 ‘나’도, 괴로움을 주는 ‘대상’도, 괴롭다는 ‘의식’도 모두가 알음알이(식)의 장난일 뿐이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허망한 식일 뿐이다. 그래서 뒤에 대승불교의 유식사상에서는 ‘오직 식일 뿐’이라고 역설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육식이라는 아상에 기초한 욕심으로 조작하고 분별하며 왜곡해서 보던 방식을 그저 단순히 ‘있는 그대로를 그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 분별심으로 보지 않고 무분별심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이를 유식에서는 전식득지라고 하여, 허망한 식을 지혜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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