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바탕자리 25

해탈, 부처, 깨달음, 도(道)에 대한 나의 생각

해탈, 부처, 깨달음, 도(道)에 대한 나의 생각 '깨달음', '해탈', '부처'라고 하는 방편(方便)에 대한 당신의 견해(見解)는 깨달음, 해탈, 부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신의 생각에 깨달은 자(覺者), 부처(佛)는 '이럴거야'라는 모든 깨달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 상, 허상에 불과하다. 모든 깨달은 사람에 대한 이미지 그것은 내가 그림을 그려놓은 깨달음에 대한 환상(幻想)일 뿐, 깨달음 그것 자체는 아닌 것이다. 깨달음, 해탈, 부처에 대한 나의 허황되고 과장된 해석, 환상(幻想)들이 나의 깨달음을 방해하고 있다. 지금 시대의 불교나, 불자들, 혹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깨달음과 부처에 대해 과장되고 환상적인 어떤 것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道)라고..

목전(눈앞)을 잘 살펴라

목전(눈앞)을 잘 살펴라 - - 경봉스님 누구든지 한 생각 한 생각을 바르게 하면 부처님의 경계로 들어가고, 한 생각 한 생각을 바르게 하지 못해 어두우면 고통받고 힘든 육도(六道 : 지옥세계, 아귀세계, 축생세계, 아수라세계, 인간세계, 천상세계)를 윤회(輪廻)하는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이 일으키는 한 생각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한 생각을 내는 주인공은 언제나 '나'와 함께 하여 조금도 여윈 때가 없다. 만약 한 생각을 잘 다스려 탐 • 진 • 치 삼독심의 번뇌 망상을 잘 극복하면, 얼마든지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살 수가 있다. 잠시 한 생각을 돌이켜, 육신 이것 때문에 탐• 진• 치 삼독심이 일어나 인생을 망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몸뚱이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일체의 분별을 떠나 세상과 하나가 되라.

일체의 분별을 떠나 세상과 하나가 되라. 부처를 높게 보지도 않고 중생을 낮게 보지도 않는다. 내 밖에 산하대지가 있음을 보지도 않고 내 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인식하지도 않는다. 마치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은 사람이 고요하듯이 좋다 싫다 등의 일체의 분별을 전부 다 버리고서 세상만사 모든 것에 분별이 없어진 다음에야 세상만사와 하나되어도 어긋남이 없게 된다. -벽암록(碧巖錄)에서 부처라는 것과 중생이라는 것, 창조주라는 것과 피조물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지어낸 관념(觀念)상의 어리석은 분별(分別)일 뿐이다. 내 밖의 산하대지도 내 안의 마음도 다 궁국에는 분별없는 ‘한마음’의 나툼일 뿐이다. 나누는 것, 분별되는 것, 구분되는 것은 진리(眞理), 한마음에서 멀어지게 된다. 좋다 삻다, 선 악, ..

시간(時間)이라는 환상(幻想)

시간(時間)이라는 환상(幻想) - - 慧觀 세상 사람들이 시간(時間)의 귀중함에 대해 하는 말이 있다. 멈춤이 없이 영원히 흐르는 시간(時間)을 누구도 붙잡아 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時間)이라는 개념(槪念)은 환상(幻想)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이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황금이고 황금보다 귀한 것이 소금이고 소금보다 귀한 것이 지금 이 순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公平)하게 주어진 하루 24시간이라는 물리량(物理量)이 사람마다 갖고 있는 24시간에 대한 가치(價値)와 24시간의 쓰임새가 사람에 따라 제각각 저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한 발 더 나가서 누구나 죽는 날까지의 일생을 살지만 각자의 일생이 길건 짧건 ..

동지(冬至)

동지(冬至) 동지(冬至)가 무엇입니까? 음의 기운(陰氣)과 양의 기운(陽氣)도 적당히 균형이 맞아야지, 양기가 음기보다 많거나 음기가 양기보다 많거나 하면 안 됩니다. 봄날에 양기(陽氣)가 적당해야 만물이 다시 소생할 수 있지, 봄날에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린다면 만물이 나오다가도 쑥 들어가고 다 죽습니다. 음양(陰陽)의 기운과 오행(金木水火土)의 기운이 만물에 깃들어 있는 여러 가지 에너지(energy)와 질량(質量)의 본질, 바탕인데, 그게 인연법(因緣法)입니다. 그 인연법으로 음양오행의 기운이 서로 잘 만나서 적당히 잘 타고난 사람은 이생에 사는데 아무 탈이 없습니다. 그런데, 전생부터 여러분이 잘못 지어놓은 것은 뭐냐? 만물이 마음일 뿐입니다. 일체가 인연법이라는 것이 근본은 아닙니다. 일체 인연..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눈앞의 일이 온 세상의 일이다 - - 몽지&릴라 지혜의 눈, 법신, 광명이라는 방편의 말은 모두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보는 듯하여 지혜의 눈이라는 방편을 쓰고, '이것'이 세상 모든 형상으로 드러나기에 법신(진리의 몸 이라는 방편을 사용하고, '이것'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는 듯하여 광명(빛)이라는 방편을 사용한다. 지혜의 눈, 진리의 몸(법신), 빛(광명)도 어디까지나 방편상의 비유적인 표현이다. 무언가를 비추는 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몸이라는 형태도 따로 없으며 빛도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이 아니지만 여기에서 모든 것이 드러나고 모든 것이 그것이 되며 모든 것이 비친다. '이것'은 우주만물, 이 세상 모든 것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소한 것에서 아주 복잡..

그냥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다

그냥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다 / 법륜스님 사람들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생아로 태어났다, 부모가 나를 고아원에 맡겼다, 태어나자마자 입양을 시켰다, 사업이 망했다, 연애에 실패했다, 결혼에 속았다 등등. . . 그러나 이런저런 일들을 당하고 어떤 경험을 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현재에 내가 살아있다면 나는 행복할 권리가 당연하게 있습니다. 괴로워야 한다고 미리 정해놓고 '나는 이러이러해서 괴롭다' 하니까 '너 안 괴로워해도 된다'고 말을 해주면 그러면 '아니에요. 저는 괴로워야 해요.' 이러면서 막 아우성을 칩니다. 자꾸 자신의 생각이라는 환상으로 만들어낸 자신의 허망한 괴로움을 합리화하지 마세요. 그 모든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 여기..

어디 어느 것에도 막힘이 없는 자유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여기에 있다.

어디 어느 것에도 막힘이 없는 자유가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 여기에 있다. - - 몽지 지금 경험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이 마음을 벗어나지 않았다. 현실세상이 그렇다. 그런데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나와 따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순식간에 분별심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밴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작동 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보다 보면 이전에 따로 있다고 여겼던 여러 가지 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텅~빈 마음의 빛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빛깔, 형태, 냄새, 맛, 감촉, 생각, 감정, 느낌, 욕구, 욕망,의지, 의도, 인식 과정 등이 어우러져 따로 있는 것처럼 드러나고 있다. ..

말하는 것이 그대로 무한한 도(道)다

언어즉시대도(言語卽是大道)이다. 말하는 것이 그대로 무한한 도(道)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순간도 도(道)에서 분리되어 살 수가 없습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도(道), 목전(目前)),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 텅~빈 바탕자리에서 벗어나 따로 있 수 없습니다. 도(道), 목전(目前), 텅~빈 바탕자리라는 방편의 말이 가리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말하고 듣는 이 사실입니다. 견문각지(見聞覺知) 보고, 듣고, 느끼고, 알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일체의 모든 작용을 말합니다. ​"수재목전(雖在目前)이나 난도(難覩)라, 비록 도(道), 목전(目前), 텅~빈 바탕자리,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는 영원히 언제나 사람들의 눈앞에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것은 쉽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