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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일기 11] 조기숙 교수의 자원봉사기

장백산-1 2008. 6. 18. 11:20

[봉하일기 11] 조기숙 교수의 봉하마을 자원봉사기

유월의 첫날, 참언론지지모임(참언모) 회원들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았습니다. 퇴임 날, 대통령을 모시고 참모들과 처음 봉하마을을 찾은 것을 시작으로 세 번째 방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봉하마을을 찾은 셈이지만 꽤 오랜 세월이 흐른 것만 같습니다.

하얗게 새치가 나오고 햇볕에 그을린 대통령의 모습에서, 사람들로 혼잡한 봉하마을 편의점에서, 깨끗하게 잘 정리된 시골 산길에서, 황토물이 찰랑거리는 넓은 논에서, 조금씩 자라가는 장군차 나무에서, 봉하마을의 변화가 느껴집니다.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여전히 대통령 사저 앞에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와 언덕 위에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대통령의 모습, 아방궁은 간데없이 주변 산세에 맞춰 단아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대통령의 사저는 첫 날 모습 그대로입니다.

오후 1시30분, 대통령이 손님을 맞기 위해 언덕에서 인사를 합니다. 저도 그 뒤에 서서 방문객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참모가 대통령과 함께 인사를 올릴 때마다 대통령은 부하 칭찬에 여념이 없으십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함께 고생하며 힘든 5년을 견뎌낸 참모들을 볼 때마다 대통령은 늘 짠한 마음이 드는가 봅니다.

“조기숙 교수 잘 아시지요? 조교수 글이 아주 좋습니다. 보배와 같습니다. 하지만 ‘노빠’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공정성을 훼손당해 독자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진실한 글을 써도 ‘노빠’니까 하며 외면당하는 것이지요.”

대통령은 제가 청와대를 떠나는 날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 오겠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다 놓고 미안해 죽겠어요. 나 때문에 상처만 많이 입은 것 같아요.”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청와대에서 대통령님과 함께 했던 시간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만일 안에 들어와 보지 않았더라면 저 또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대통령님을 오해하고 비판하는 칼럼을 썼을 것입니다.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정 안되면 역사적 기록으로라도 제가 청와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증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제게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대통령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지요. 그 후에도 대통령은 저를 만날 때마다 언제나 따뜻하게 맞아주십니다. 그에 비하면 저는 결코 좋은 참모가 아니었습니다. 오죽하면 늘 쓴 소리를 도맡아 해 오셨던 영부인께서 ‘조수석이 내가 할 악역을 다해주니 나는 인기관리만 해야겠다’고 농담을 하셨으니까요.

대통령이 한 번 싫다면 그만 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통령이 싫어하는 청을 하고 또 하고 지치지도 않고 했었습니다. 대통령은 그런 참모를 미워하거나 멀리 하지 않았습니다. 귀찮게 구는 저를 꾸중하신 뒤에는 주말에 따로 불러 여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위로하실 정도로 참모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셨습니다.

역사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 더 보람 있었던 것은 대통령의 진면목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따뜻한 인간미와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경험하면서 제 가슴은 늘 감동과 놀라움으로 꽉 차올랐습니다.

그날 자원봉사자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거대한 노란색 오리집을 2만5천평의 논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태풍에도 날아가지 않도록 튼튼하게 만든 오리집은 예닐곱 명의 장정이 걸머져도 무거워 보였습니다. 반바지에 긴 장화를 신은 자원봉사자들이 철갑 같은 오리집을 옮기는 모습을 보며 우리 일행은 작업복을 제대로 준비해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이처럼 노사모 회원들은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봉하에 내려와서 농사일을 거들고, 잡초를 뽑고, 나뭇가지를 쳐내 장군차 나무를 가꾸고 있습니다. 그 날은 세 지역(순천, 구리 남양주, 서울동작)에서 온 노사모와 우리 일행이 저녁에 함께 모여 대통령이 준비한 막걸리와 음식을 나눴습니다.

남녀노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노사모 가족은 참 정겨워 보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가 이곳에서 복원되는구나 하는 벅찬 느낌이 들었습니다. 회원들은 즉석에서 따끈따끈한 부침개를 만들어 돌리기도 하고, 집에서 준비해온 많은 음식을 우리에게도 나눠줬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그분들의 친절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막걸리를 두어 순배 돌렸을 때 대통령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인사와 함께 대통령이 봉하에 내려온 이유, 그리고 앞으로의 꿈과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함께 가지 않으면 성장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소득이 불평등해지면 소비시장이 죽습니다. 하지만 제 임기 중에도 이 문제의 해결이 별로 잘 된 것 같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 소득격차로 인한 문제로 임기 중에나, 후에나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은퇴 후 시골에 살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실천은 못하고 있습니다. 기반시설이 없어 엄두를 못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농촌에 와서 방학이나 휴가, 주말을 보낼 수 있도록 봉하마을을 그렇게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대통령이 친환경 농법에 관심을 갖고 직접 오리농법으로 논농사를 지으며,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데에는 지속가능한 성장,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습니다.

“인생의 존재의미, 가치를 고민하다보면 결국은 우주의 섭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의 규칙에도 그와 같은 원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의 이성과 의지를 강조한 사상은 결국은 한계에 부닥치고 맙니다. 자연의 섭리를 파악하게 되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즉 운명이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자연 속에서 생활하다보면 자연의 섭리 속에서 운명을 받아들일 줄 아는 정서를 배우지 않을까요. 금메달에만 환호하기보다는 정서적으로 부드럽고 따듯한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랬구나. 대통령은 자연을 닮은 삶을 실천하고 싶은 거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주말이나 방학 때라도 자연 속에서 자라면서 우주의 섭리를 배우게 하고 싶은 겁니다. 아이들이 여치와 반딧불과 친구할 수 있는 깨끗하고 친환경적인 농촌을 만들고 싶은 것이 대통령의 꿈인 것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속삭였습니다.
“대통령의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연을 닮았습니다. 청와대 근무 내내 제가 대통령을 괴롭힐 수밖에 없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마음을 사기 위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이벤트를 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셨지요. 저는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이 배우처럼 연기라도 해야 한다고 맞섰고요.”

할리우드는 잘 생긴 사람들이 쇼를 하는 곳이고, 워싱턴은 못생긴 사람들이 쇼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TV와 영상이 정치인과 유권자가 의사소통을 하는 가장 중요한 매체로 등장한 이후 정치인은 쇼맨십을 보여주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통령스러운’ 인위적인(권위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것을 거부하고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기에 임기 내 ‘대통령스럽지 않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사심 없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옳은 결정을 했지만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대통령이 저렇게 손해를 보는 결정을 하는 내막에는 분명히 계략이나 술수가 담겨 있을 것이라 해석을 했지요. 한국의 정치인이라고 보기엔 너무 순수했고, 희생적이었고, 신념에 차 있었기에 권모와 술수에 능한 구시대 정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정계에 몸담고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굴레였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통하기 마련이기에 임기 후 대통령이 국민들과 소통하는데 성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한 번도 져버린 적이 없습니다. 대통령의 삶 자체가 순도 99퍼센트 자연인이기에 자연 속으로 돌아옴으로써 그 빛을 발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개울에서 올챙이를 잡고, 산 속에서 반딧불을 좇습니다. 부모님들은 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친환경 농법을 배우고, 살기 좋은 마을을 가꾸기 위한 토론을 합니다. 이러한 실험이 봉하마을에서 끝나지 않고 도시와 농촌이 자매결연을 해서 상부상조하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수많은 도시 농사모(농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주말과 방학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친환경 농사일을 거들고, 열매를 함께 따고, 함께 소비하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봉하마을에서의 성공스토리가 전국으로 뻗어나갈 그 날을 기대하며 행복한 상상의 날개를 맘껏 펼쳐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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