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용산 호프집 부자의 죽음 !!!

장백산-1 2009. 1. 21. 15:12

호프집 부자의 죽음   IP 69.120.166.x    작성일 2009년1월21일 13시04분      
호프집 운영 아들은 화상, 아버지는 사망 ...
이웃들 “보상금 보다 장사만 하길 원했는데…”

경찰의 강경 진압은 행복하게 살던 아버지와 아들의 꿈을 조각냈다.

이충연씨(36)는 20일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서 화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왔다. 현장에 함께 있던 아버지 이상림씨(71)는 이날 오후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며느리 정모씨는 “제발 아버님을 찾아달라”며 오열했다. 아버지 이씨를 찾기 위해 근처 병원과 경찰서를 다 돌아다녔던 가족과 친지들은 아버지 이씨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씨 가족은 사고가 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 4구역에서 17년 동안 ㅎ갈비집을 운영했다. 지난해 3월 인테리어 비용 3억원을 들여 ㄹ호프로 업종을 바꿨고, 막내아들인 이씨는 8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은 채 아버지와 함께 호프집을 운영했다. 힘을 모아 함께 운영하던 호프집은 이들 가족의 꿈이었다.

꿈이 깨진 것은 아들 이씨가 결혼한 직후인 지난 5월이었다. ‘재개발’이 문제였다. 재개발 조합으로부터 ‘규정 이주비만 받고 나가달라’는 통보가 왔다. 업종을 바꾼 지 겨우 두 달. 이씨의 누나는 “규정 이주비와 보상비는 인테리어 비용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곳을 20년 가까이 지켜온 이들에게는 가혹한 결정이었다. 단지 자신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이씨 부자는 적극적으로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나섰고 세입자들을 대표해 가장 열심히 활동했다. 갈등이 불거지던 초기에는 아버지 이씨가 임시 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아들도 철거 항의 활동에 앞장섰다. 이들 부자는 19일부터 시작된 철거 항의 시위 때 자진해서 건물로 들어가 농성에 동참했다가 결국 화를 당했다.

아들 이씨는 이날 오후 들어 의식을 되찾으며 산소호흡기를 뗐고 자신의 상태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 화상 정도는 심하지 않지만 연기를 많이 마셔 호흡을 하는 데 불편을 느끼는 상태다.

이들 부자뿐만 아니라 근처 상가 세입자들에게 지난 8개월은 악몽의 시간이었다. 20년 동안 백반집을 운영한 박모 할머니(75)는 “빨리 안 나가면 피눈물 나는 일 있을 거라고 겁주더라”면서 “이 할머니가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겠냐. 그냥 밥집하게 해달라는 거였다”라고 말했다. ㅇ백반집은 지난해 12월1일 강제철거됐다.

사철탕집을 운영 중인 박덕환 할아버지(62)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할아버지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 장사만 할 수 있으면 된다”면서 “생존권만 보장해달라는 얘기”라며 가슴을 쳤다.

중국집을 운영하다 강제철거당한 이진경씨(37·여)는 “지난해 5월부터 불안한 시절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용역직원들이 아예 가게 앞에 펜스를 둘러치고 식사하러 오는 손님들을 못 들어오게 막기도 했다”며 “죽어라고 일해서 상권을 만들었는데 상가 주인들만 떼부자가 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요즘에는 서울 시내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죄다 재개발이고 뉴타운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하다보니 막막하다”며 “우리 같은 서민 자영업자들은 갈 데가 없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바로 앞에서 삼겹살집을 운영하는 유영진씨(49)는 “용역직원들이 지난해 5월 들어와서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는데 검찰로 송치됐다는 사건이 석달 동안 답이 없다가 각하됐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 직원들이 지난해 12월에도 집기를 부쉈다. 동네 돌아다니면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며 “정말 이 나라에서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