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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만물은 원자-원자로 구성된 나

장백산-1 2010. 4. 12. 12:23
핵전쟁이나 소행성 충돌 등에 의해 인류가 멸망할 위기에 처했다고 상상해 보자. 인류는 혹시라도 살아남을 우리 후손을 위해 가장 중요한 과학 사실 하나를 특수 합금에 새겨 지구 곳곳에 남기기로 했다. 과연 거기에는 어떤 내용을 새겨 넣어야 할까?

 

 

 

 “세상 만물은 원자로 되어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물리학자 파인만의 답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겨우 원자라고? 웬만한 초등학생도 아는 시시한 내용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 하지만 과연 우리는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사람이나 강아지, 풀, 나무, 혹은 아메바나 독감 바이러스, 바위, 쇠, 물, 공기, 달, 태양, 그리고 우주 저 멀리 있는 은하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이런 다양한 것들이 사실은 모두 같은 기본 물질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기본 물질들이 끊임없이 교환되고 있음을 뜻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우리 몸을 생각해 보자. 우리의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개수를 세어 보면 1028(억의 억의 조) 개에 달하는 원자들의 집합이 바로 몸인 것이다. 이 많은 원자는 수소, 산소, 탄소 등등 얼마 안 되는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예를 들어 수소로 분류된 그 많은 원자는 (소위 동위원소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서로 조금도 다르지 않고 완전히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또 아무리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상품이라 해도 완전히 같진 않다. 하지만 원자들은 그 많은 수소가, 혹은 산소가 서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생각해 보면 막상 쉬운 답변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에 대해 답하려면 양자역학이 필요하다.

 

 

우리 몸의 수많은 원자들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가 자라면서 저절로 우리 몸에서 원자가 불어난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아마 대부분은 우리가 먹은 쌀알이 소화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이 된 것일 것이다. 즉, 쌀알을 구성하고 있던 원자가 우리 몸의 일부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쌀알의 원자는 빗물, 흙, 비료 혹은 미생물에서 왔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따져보면 조금 기분 나쁜 상상이긴 하지만 우리 몸의 원자는 바퀴벌레나 아메바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 물론 더 오래 전에는 아인슈타인이나 뉴턴의 몸을 이루고 있었을 수도 있고 더 이전에는 우주를 배회하다가 혜성이 되어 지구로 떨어졌을 수도 있다. 이처럼 원자는 완벽한 동일성으로 인해 그 이전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지 관계없이 수많은 곳을 돌고 돌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일단 어떤 원자가 우리 몸의 일부가 되면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남아 있는 것일까? 물론 일부는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대소변, 땀, 눈물 등으로 밖으로 배출될 것이다. 하지만 뼈나 근육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어떨까? 피나 신경, 심장이나 뇌는 어떨까? 대부분의 원자는 일단 우리 몸의 일부가 되면 죽을 때까지 계속 우리 몸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의 대부분은 계속 ‘나’로 남아 있어야 '나'의 정체성이 유지되지 않을까?

 

놀랍게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98%가 1년 안에 다른 원자에 의해 교체된다. 원자의 교체 주기는 신체 부위마다 다르다. 뇌세포의 일부와 심장 근육 일부, 눈 수정체의 일부분은 태어났을 때의 원자가 그대로 유지되지만 다른 부위는 모두 바뀐다. 세포 전체가 바뀌는 기간으로 보면 내장 표면의 상피세포는 5일, 피부는 2주, 피 속의 적혈구는 120일마다 바뀐다. 간은 1-2년 정도면 모두 교체되고 뼈는 10년, 근육이나 내장도 15~16년이면 모두 교체된다. 세포 전체가 교체되지 않더라도 세포 내의 원자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결국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도 실제 원자의 나이로 따지면 어린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우주는 지금부터 137억 년 전 대폭발로 시작되었다. 우주 탄생 순간에는 원자가 존재할 수 없었다. 우주가 너무 뜨거웠기 때문이다. 원자가 생겨나려면 우주가 탄생한 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야 했다. 그 동안 우주에는 빛과 전자, 양성자 그리고 가벼운 원자핵도 만들어졌지만 이들이 마구 뒤엉켜 플라즈마 상태에 있었다.

 

38만 년이 지나면 드디어 우주가 충분히 팽창하고 온도도 많이 떨어져 원자가 탄생한다. 플라즈마에서 빛이 분리되면서 원자핵이 전자와 결합하여 수소, 헬륨 등 가벼운 원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이들이 중력에 의해 이곳 저곳에 모여들어 태양과 같은 별을 만들기 시작한다. 별의 내부에서는 엄청나게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무거운 원자핵이 만들어진다. 우리 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소, 탄소 등의 원자핵은 모두 이렇게 우주 어딘가에 있는 뜨거운 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별은 보통 수억 년에서 수십억 년 동안 살다가 마지막에 크게 부풀어 오르며 원자핵들을 우주에 방출한다. 그리고 이 원자핵들은 우주 공간의 어딘가에서 전자와 만나 원자가 된다. 이 원자들은 다시 모여 별을 만들거나 지구와 같은 행성을 만든다. 지구의 일부가 된 원자들은 다시 수십 억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때로는 바위나 구름이 되고 때로는 미생물이나 공룡이 된다. 때로는 나무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흙 속에 있다가 현재 우리 몸에 잠깐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얼마 후 우리 몸을 빠져나가 내 친구의 몸에 들어가기도 하고 바다로 흘러가기도 할 것이다. 각각의 원자들은 영겁의 세월 동안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각자의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우리와 함께 있다가 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원자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몸은 잠깐 머물다 가는 찰나에 불과하다. 그럼 ‘나’는 무엇일까?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원자들의 집합을 ‘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 거울에 보이는 내 얼굴과 내 목소리, 그리고 나만 알고 있는 비밀스런 추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이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닌가?

출처 : 마인드스테이
글쓴이 : 행변(行變)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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