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天符經)을 이해하기 前에.......
천부경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지식과 지성의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지식과 지성이 할 수 있는 일과
지식과 지성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지식과 지성을 넘어선 곳에 존재하는
본체를 알지 못하고서는 천부경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식과 지성으로 천부경을 풀려고 할 때 전혀 빗나간 해석이 되어 버립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천부경을 번역하고 해석하고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펴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부경을 세계 최대 최고의 경전이라고 높이 받드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단순한 부적이나 숫자 풀이로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천부경은 절대 지식과 지성만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식과 지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를 지식과 지성의 역사로 기록해 왔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깨달은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져 나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전세계 인류의 역사는 지식인과 정치인과 전쟁 미치광이들과
땅 따먹기의 역사로 기록되어져 왔습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 역사책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인류가 이 세상에 생겨난 본래의 목적을 완전히 무시한 짓입니다.
인간이 이 세상에 생겨났을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목적을 달성한 사람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기록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인류의 역사를 기록해 왔는가?
오히려 그 목적을 망각하고 자기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역사가 기록되어져 왔습니다.
지식과 지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역사,
소위 깨달음의 역사가 바로 우리의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입니다.
한인, 한웅, 단군의 역사는 인간의 본래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
깨달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기록된 전무 후무한 역사입니다.
한인과 한웅과 단군은 어느 개인이 이름이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상징하는 보통 명사입니다.
따라서 한인과 한웅과 단군은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한인은 7명, 한웅은 18명, 단군은 47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숫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많은 사람들은 단순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한 통치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바로 깨달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깨달은 사람을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 그것이 바로 우리의 상고사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인간이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역사를 기록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록해 나간 것입니다.
지성과 지식은 전달이 가능합니다.
책과 언어를 통해 남에게 전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갖고 있는 수학 지식과 과학 지식은 설명을 통해 내 아들에게 전달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체험한 것,
그 체험을 통해 터득하고 깨달은 것은
전달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것이 전달이 가능하다면 전쟁이나 싸움은 단 한번만으로 충분했을 것입니다.
내가 겪은 전쟁의 체험,
그 체험을 통해 내가 깨달은 이치,
즉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전쟁을 하면 둘 다 망한다는 이치를
내 아들에게 고스란히 말로써 전달할 수 있다면
전쟁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 전쟁이 끝나면
그 다음 전쟁이 시작되고 끝없이 전쟁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무기를 만드는 법은 지식이기 때문에 전달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해를 거듭할수록 더 강하고 성능 좋은 무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악한 것이라는 깨달음은 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무기를 쓰든 전쟁은 계속됩니다.
지식과 지성은 전달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지식과 지성은 전달 가능한 것만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전달 불가능한 것이 앞에 나타나면 지식과 지성은 쓸모가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식과 지성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 불가능한 것이 앞에 나타났을 때
지식과 지성을 뛰어넘은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계속해서 지식과 지성만으로 해석하려고 덤벼들 때
문제는 매우 심각해집니다.
지식과 지성도 굉장히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이 전혀 못 미치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세상에는 수많은 지식인과 지성인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들은 수만권의 책을 통해 수만 마디의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한계는 명백합니다.
지식인이 아무리 두꺼운 책을 써서 아무리 많은 좋은 말을 해도
예수가 한 단 한마디,
'너희는 빛과 소금이 되어라'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단 한마디처럼 사람들 가슴 깊숙한 곳으로 파고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수천 명이 나와 수천 권의 책을 썼지만
노자가 한 말, 무위자연을 따라갈 재간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나라뿐 아니라 일본과 독일과 미국인과 인도등지에서
우리의 상고사를 컴퓨터까지 동원해 연구를 하고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를 해석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한웅 천황이 한 말,
'너의 머리 속에는 한얼이 내려와 있고
너의 몸과 팔다리에는 천지의 신령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와
같은 힘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과 깨달음의 차이입니다.
학자도 학자나름대로 자기 할 일을 다합니다.
그러나 지식의 차원을 넘어 서서 존재하는 세계가
엄연히 이 세상에는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부경을 해석하고 번역하고 전달하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식의 차원에서, 학자의 차원에서 천부경에 접근했습니다.
천부경은 절대 학문을 많이 안다고 해서,
주역과 음양오행사상을 많이 안다고 해서 풀리는 게 아닙니다.
천부경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서
주역과 한문과 오행사상부터 공부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완전한 착각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물론 공부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착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입니다.
지식인이 지식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지식과 지성만으로 밀고 나갈 때 그는 보따리 안에 싸두는 것이지만
깨달음은 그 보따리를 다 풀어헤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따리 장사에 만족하는 사람은 그 보따리 바깥의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지식으로 천부경에 접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많은 지식 때문에 천부경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천부경을 읽는 사람들이나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붕 꼭대기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가 있지만
천부경은 절대 지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는
그 정수를 붙잡을 수가 없습니다.
[관련 site에서 인용함.]
출처 : 金烏김홍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글쓴이 : 해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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