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사 주시(注視; Watch)
나는 늦은 봄을 좋아한다.
연록의 푸릇푸릇한 보리 이파리들이 진한 초록빛으로 변해가는 그 때가 좋다.
어린 시절 그땐, 이즈음이 되면
종달새도 푸른 하늘 속에서 “종달종달” 지저귀며 날개 짓을 했었다.
화창한 아침이면 반짝거리는 아지랑이도 눈을 부시게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가을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은 여름을 좋아한다.
나는 비가 오려고 마파람이 훈훈하게 불어오는 구름 낀 흐린 날이 좋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푸른 물로 가득한 널따란 호수나
끝없는 수평선이 바라보이는 바다가 또한 좋다.
그런데 물만 봐도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사람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에 차이가 많다.
물리적 세계에서는 같은 자극이 주어지면 그에 대한 반응은 언제나 똑같다.
이러한 원리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것이 과학이다.
우리는 과학이 만능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에서는 왜 같은 자극이 주어지는데도
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른 것일까?
푸른 물이 시각을 통해 자극으로 들어오고, 훈훈한 바람이 촉각을 통해
자극을 해도 사람마다 좋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조건화되어 있는 기억 때문이다.
이런 조건화된 것들을 기억해 낼 수 없을 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체험의 모든 부분들이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다.
이것들을 의식세계로 끌어냈을 때 기억해 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해 낼 수 있는 것보다 기억해 낼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이런 체험의 조건화가 기억될 수 있던 없던 간에
어떤 자극에 대한 반응에는 관여하고 있는 것이다.
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전생이든 현생에서든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든가,
아니면 물에 대한 기분 나쁜 어떤 체험을 했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을 극히 싫어하는 사람은, 비가 오는 날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었다든가, 물난리로 고생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자극이 주어지면 무의식 속에 들어있던 체험들이 기억되어
그때의 상황이 회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비가 오면 왠지 모르지만 기분이 좋다고 한 것은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이전 체험의 조건화가 반응에는 관여하고 있지만
기억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를 유지시키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은 하나이다.
그 에너지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화된다.
열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빛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운동 에너지가 되기도, 위치에너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육체나 정신세계를 이루고 있는 에너지도 마찬가지이다.
그 근원 에너지는 우주의식(神) 에너지와 같은 것이며,
내면의 중심에 있어 그곳에서 우주의식과 교류하고
또한 우주의식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인간의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에너지도
이 중심에 있는 근원에너지에서 나온 것이다.
슬픔, 기쁨, 분노, 고통---등,
모든 감정들이 그 에너지 작용에 기인한다.
한 에너지의 작용인데도, 어떻게 해서 그 느낌은 가지각색일까?
근원 에너지는 슬픔, 분노, 시기, 질투 같은 성상은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깊은 잠을 자고 난 후 느끼게 되는 생기,
탈진한 상태에서 원기가 회복될 때 느껴지는 생동감,
정신적인 만족이나 영적 축복에 의한 충만감,
어떤 구속 상태에서 벗어날 때 느낄 수 있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느낌 같은 지복감(至福感)을 줄뿐이다.
원천에너지의 부족상태에서 그 에너지를 보충 받음으로써
얻게 되는 느낌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위와 같은 상태에서는 우주의식으로부터 그 에너지를
보충받기 때문에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근원에너지가 외부의 자극을 통해 작용할 때
마음이라는 에너지 층을 통과하는 동안 그 안에 쌓여있는
조건화된 요인들 때문에 그 성상이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분노로, 슬픔으로, 좌절감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 행복, 평온과 같이 그 조건화가
근원에너지의 성상(지복감)에 가까운 것일 때는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한편 근원에너지의 성상과 같은 에너지에 의해 일어나는 감정을
긍정적 감정변화라 하고 그렇지 않는 것을
부정적 감정 변화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슬픔, 분노, 질투, 원망 --- 등의 감정은 부정적인 것이다.
우리 인간이 우주의식(神, 하느님)과 가까이 있을 때는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고 멀리 떨어질수록
부정적인 감정 쪽으로 바뀐다. 그래서 행복감은
우주의식(神,하느님)과의 거리에 반비례한다고 표현함직도 하다.
이는 하느님에게 다가갈수록 행복해지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불행해 진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특히 그것이 분노와 같은
부정적 감정일 때 그것들을 없애려면 주시(注視)하면 된다.
여기서 주시(注視)하라는 말은
그 감정을 나의 일부가 아닌 나의 밖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면 그 감정은 가라앉고 없어진다.
한편 그 감정 에너지의 통로를 따라 거슬러 들어가면
그 에너지의 근원인 내면의 중심에 이르게 되어
참 자기(眞我)와의 순간적인 만남을 경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방법이 견성(見性)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반면 긍정적인 감정을 주시하면 그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더 강화된다. 기쁠 때 기쁨을 주시하면 더욱 기뻐지고,
행복할 때 그 행복을 주시하면 더욱 행복해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같은 주시를 하는데
부정적 감정은 사라지고, 긍정적 감정은 왜 강화되는 것일까?
여기서 주시하는 주체는 의식(consciousness)이다.
주시한다는 것은 의식에너지를 쏟아 붇는 것 이다.
의식은 근원에너지이다. 그래서 주시한다는 것은
각각의 감정에너지에 근원에너지를 더해주는 것과 같다.
그런데 긍정적 감정에너지는 근원에너지와 같은 성상이며
부정적 감정에너지는 근원에너지와 반대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주시를 하면
부정적 감정에너지는 근원에너지에 의해서 상쇄되어 없어지고
긍정적 감정에너지는 근원에너지가 더해져서
더욱 에너지양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 성상이 강화된 것이다.
이것을 식으로 표현해 보기로 하자.
① 긍정적 감정의 주시의 경우 : PFE+WE=PFE+PFE=2PFE
② 부정적 감정의 주시의 경우 : NFE+WE=NFE+PFE= -PFE+PFE=0
PFE : Positive Feeling Energy(긍정적 감정에너지)
NFE : Negative Feeling Energy(부정적 감정에너지)
WE : Watchfull Energy(주시에너지)
OE : Original Energy(근원에너지)
그런데 WE=OE≒PFE이다
NFE=-OE≒-PFE
위의 방식으로 미루어 본다면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주시를 강하게 오랜 시간동안 하게 되면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불행도 주시를 통해 행복으로 바꿀 수 있고
시기 질투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심한 통증이 있다고 해도 주시를 하게 되면
그 통증은 사라진다.
괴로움과 분노가 치밀어도 조용히 앉아 주시해 보라.
그것들은 눈이 녹듯이 녹아 없어진다.
이 모든 것들은 조건화된 마음을 통해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의 근원에너지를 쏟아 부으면 그것들의 에너지는 사라진다.
눈 위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눈이 녹아 버리듯 말이다.
주시는 마술사이다.
모든 것을 근원으로 돌리는 마술사이다.
마음을 주시하면 마음은 사라지고 의식만 남게 된다.
가짜 나(假我)는 사라지고 참나(眞我)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나를 나의 근원으로 돌려 보내준다.
내가 태어난 내 집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 석헌/허경용 -출처 : 마음공부와 자기계발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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