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일체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진리, 즉 무상(無常)의 진리입니다.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것을 변하는 대로 그대로 두십시오. 어떻게 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붙잡아 두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어떻게 바꿔보려고 다투지 마십시오.
그냥 변한다는 진리를 변하도록 그냥 놓아두십시오.그 흐름에 드십시오.
안팎의 분별이라는 게 참 공허한 것입니다.
이 법계에서 본다면 안이라는 것도 밖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육신의 기관도 실체가 없고,대상도 실체가 없으며, 오고 가는 것 또한 실체가 없습니다.
다만 변화할 뿐입니다.움직일 뿐입니다.
실체 없이 인연 따라 다만 변화해 갈 뿐입니다.
불교는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만 방편으로 비우기 위해 쌓는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다른 것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내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체 모든 생각이며 느낌을 있는 그래도 관하되,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그 어떤 분별도 일으키지 말고,
다만 관하면서 그것과 하나 되어 흐르기만 하십시오.이것이 바로 수행입니다.
지금 이 순간으로 보아야 합니다.지금 이 순간, 현재로 보아야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과거는 환상에 불과하고 신기루이며 꿈과 같은 것입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으로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한 현재를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내가 분명히 과거를 살아왔다고 억지를 쓸지 모르지만,
우리는 분명 현재를 살아왔지 과거를 살아오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마음공부, 수행 열심히 하면 행복해 질 수 있느냐고, 나도 깨달을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답변은'아니요'입니다. 언젠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것을 다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그렇게 찾고 있던 '바로 그 순간'입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습니다.
집착이란 항상 하지 않는 대상에 대해 항상 하기를 바라고,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변화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내 악업이 녹아내리느라고 그러는 것이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과거에 지은 복, 선업을 받느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쁜 일이라고 거부할 것도 없고, 좋은 일이라고 더 받고자 애쓸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저 꼭 필요한 일이 인연 따라 필요할 때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괴로움을 없애려고 애쓸 것 없습니다.괴로움의 대상을 제거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공연히 스스로 만들어 낸 괴롭다는 느낌만 놓아버리면 그 뿐.
'나'로 살아선 안 됩니다.내가 산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는 아상을 가지고 내 것을 늘려가려는 '아집'에 얽매여 살면 안 됩니다.
'나'라는 상, 내가 살고 있다는 상.그것이 모든 괴로움의 시작이 됩니다.
제행무상을 받아들이고, 제법무아를 받아들이고, 인연과보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다만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을 때, 우리는 조금씩 부처님으로 살 수 있게 되고
부처님의 반야지혜를 체득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혜롭기만 하고 자비롭지 않다면 그 지혜는 잘못된 쪽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고, 놓아버리고, 알아차리고, '부처님 일'로 돌려놓고,
늘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 모든 수행자의 일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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