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서광스님의 치유적 불교읽기] 8. 멸성제 ①

장백산-1 2011. 3. 14. 13:19

[서광스님의 치유적 불교읽기] 8. 멸성제 ①

집착 놓으면 괴로움서 해방된다는 생각은 오해
알아차린 괴로움의 실체를 깨닫는 것이 멸성제


집성제에서 괴로움의 가장 밑바탕에는 반드시 “나, self/ego”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나”는 상대와 우열을 비교하는 생각(아만), 자기중심적인 사랑(아애), 자기가 영원히 살고, 의존된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착각하는 그릇된 견해(아견), 그리고 자기가 진정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무지(아치)의 네 가지 형태로 작용한다고 했다. 유식 심리학에서 말하는 이 네 가지 근본 번뇌는 갖가지 질투, 미움, 화 등으로 마음을 들끓게 만들고 인간관계의 갈등, 사회범죄, 환경파괴 등을 불러오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보통 괴로움의 뿌리인 집착을 놓으면 괴로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오해다. 놓아질 수 있는 집착은 어떤 의미에서 진짜 집착이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단 집착이 되고 나면 그것은 괴로움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에너지, 원천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밀한 의미에서 집착의 소멸은 집착의 전 단계에서 자각이 이루어지던가, 아니면 집착이 고통을 이미 발생시킨 단계라면 집착을 놓겠다고 씨름하기 보다는 고통의 의미를 명상해야 한다. 고통 속에 기쁨을, 움직임 속에 멈춤을, 집착 속에 자유를 보는 것이다. 번뇌가 곧 보리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 불행과 행복, 자유와 구속이 어떻게 연기되어 있는지 관계를 살펴 이해하는 것이 멸성제다.

가끔 고통의 크기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면, 괴로움의 원인이 “나”니까 그 나를 멸한다고 자살 또는 자학하는 이들이 있다. 또 그 ‘나’가 진짜 ‘나’가 아니라는 진정한 의미를 오해하거나 아만의 뜻을 그릇되게 해석한 나머지 막 출가한 초심자들을 절집 고양이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모욕하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멸성제의 올바른 뜻은 집성제에서 알아차린 괴로움의 실체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즉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그 ‘나’는 분명히 있지만 그 ‘나’는 ‘형이상학적인 자아’,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상의 삶의 연속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경험적 자아’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다.

‘나’가 괴로움의 근본 뿌리라고 해서 무조건 그 ‘나’를 부정하고 ‘무아’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마음의 치유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실체가 물질적 형태, 느낌, 지각, 성향, 앎에 의해서 구성된 일종의 연속적인 정신-신체적(psycho-physical) 흐름, 시리즈로 구성된 경험적 자아라는 사실을 통찰하는 것.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는 거룩한 길에서 훈련해야 하는 것들이다. 즉 우리의 눈, 귀, 코, 혀, 몸을 통해서 접촉되는 모양, 소리, 맛, 냄새, 촉감들에 의해서 얼마나 자주 우리의 감정, 느낌, 기억, 생각들이 생멸하는지 그 흐름을 통찰하는 것이다. 또 그에 따라서 우리의 환경, 사회, 세계가 어떻게 함께 출렁거리며 변화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내면만을 살피는 것으로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나라고 하는 경험적 자아, 즉 우리의 감정, 느낌, 생각의 흐름/시리즈들과 맞물려서 세상의 가치, 모양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알아차려야 한다. 아주 쉬운 예로 우리가 어떤 정치적, 사회적, 교육적 일에 관심을 두고 어떤 연예인, 정치인에 주의를 기울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정치, 교육, 문화, 가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인터넷 검색어, 드라마, 스포츠, 음식, 사람에 따라서 국가정책이 바뀌고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의 돈의 흐름이 바뀐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각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멸성제는 ‘나’가 개인, 사회, 자연과의 연기적 흐름 속에서 어떻게 체험되고 드러나는 지, 또 그 ‘나’에 대한 집착이 어떻게 연기적 흐름과 소통을 방해하는지를 자각하고 깨닫는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서광 스님(동국대 겸임교수)은 미국 보스턴 서운사 주지로 이화여대 대학원 교육심리학 석사과정을 졸업한 후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보스턴대에서 종교심리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마음의 치료’, ‘현대심리학으로 풀어본 유식 30송’, ‘불교상담심리학’, ‘알몸이 부처 되다’ 등이 있다.

출처 : 옥련암
글쓴이 : 갠지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