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하나'되는 걷기 명상] <광주명상도량/자비선원>
“여러분, 명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명상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걷기 명상은 걸으면서 명상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4월 첫째 주 일요일(2일) 오후 2시. 동국대 정각원 법당 뒷마당에 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비명상을 가르치는 마가 스님이 국내에서는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걷기 명상에 참가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마가 스님이 걷기 명상을 하겠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이나 미디어붓다를 통해 전해들은 분들이기에 서로 얼굴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마가 스님 특유의 잔잔하고 정감 나는 설명에 시나브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마가스님으로부터 걷기명상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가자들. 마음의 사진기로 자신의 마음을 촬옇하고 있다.
명상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왜 마가 스님, 마가 스님 하는지를 알게 하는 광경이었다.
“오늘 우리는 역사적인 첫 걷기 명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명상에 대해서 의외로 잘 알지 못하지요.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주변을 둘러보던 마가 스님은 문득 법당 뒤에 있는 조경수 중 한 그루의 나무에 다가가더니, 그 나무의 한 줄기를 잡아 아랫방향으로 휘어지게 고정하고는 물었다.
“여러분, 이 휘어진 나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무가 불쌍하니 제자리로 다시 돌려놔줘야겠다, 저 나무 참 아프겠다, 등의 생각이 들겠지요. 사실 이 세상의 여러 동물 중에 이렇게 강제로 휘어진 나무를 보고 이런 생각을 내는 동물은 사람이 유일합니다. 다른 동물들은 그런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보고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칩니다. 이것이 다른 동물과 사람의 차이지요.”
마가스님이 치는 종 소리를 들으며 명상에 들어 있는 참가자들.
사람들은 차츰 마가 스님의 설명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자, 명상이란 바로 이런 마음을 그대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불편한 마음, 아픈 마음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명상이지요.”
안이비설신의의 육근을 통해 대상, 즉 색성향미촉법의 육경이 비쳐질 때 일어나는 안이비설신의의 마음(識)을 그대로 놔두고, 즉 아래로 휘어진 나무 가지를 보며 일어난 생각을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 명상의 방법이라고 설명한 마가 스님은 “휘어진 나무 가지를 바로 하거나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마음을 그대로 관조하면서, 아하-, 하라”고 강조했다.
“여러분, 지금 여러 분의 가슴에 손을 넣고 여러분의 마음을 꺼내 사진기에 담아 꺼내보십시오.”
양 손의 엄지와 검지를 서로 엇갈려 맞대어 사각형 모양을 만든 마가 스님은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 네모 모양이 사진기라고 합시다. 그러니까 ‘마음의 사진기’인 셈이지요. 이 마음의 사진기로 사진을 한 장 찍어볼까요. 찰칵! 다 찍었지요. 그러면 이번엔 마음의 사진기를 조금 더 크게 만들어서 찍어보지요. 다 찍었나요? 그러면 이번엔 마음의 사진기를 더 크게 만들어 찍어보겠습니다.”
맞닿은 엄지와 검지를 조금씩 벌려가며 설명을 한 마가 스님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의 사진기는 어떤 사이즈에 해당하느냐’고 묻는다. 작은 사진기로 찍은 사람은 마음이 좁은 사람, 큰 사진기를 만들어 찍은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며, 세상을 보다 넉넉하고 넓게 찍는 마음의 사진기를 앞으로는 간직하라고 당부했다.
“작은 사이즈의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졸장부, 큰 사이즈의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겠지요. 그러면 아예 네모 틀까지 사라진 사진기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부처님, 그리스도 이런 사람들이겠지요.”
2인1조로 서로의 검지손가락을 맞대고 정각원 법당을 돌며 걷기명상의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이들은 손을 감고 파트너의 인도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마음을 관찰했다. 처음이지만 어느새 그럴듯한 명상수행자의 포스가 엿보인다.
‘세상에 어떤 일을 당해도 그려, 그려 하다보면 그리스도가 된다’는 조크에 30여 명의 명상길벗들은 까르르 폭소를 터뜨린다. 어느 순간 모두가 마가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며 말 그대로 도반(道伴)이 된 것이다.
“여러분, 명상은 일어나는 마음에 따라서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는 마음의 노예가 아니라, 그 마음을 그대로 지켜봄으로써 마음의 주인이 되는 수행법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약 3시간 동안 남산의 산책길을 함께 걸어가게 될 텐데요.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발바닥에서 전해오는 느낌을 ‘아하, 아하’하고 느끼면 됩니다. 모든 신경을 마음에 두고 눈에는 1%만 두고 걸으십시오. 오늘은 처음이니 그냥 걷습니다. 어떤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거부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되며 그냥 걸어갑니다. 오늘은 우리 모두가 사람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걷기 명상에 들어가기 전 파트너를 정해 눈을 감은 채 서로의 검지를 맞대고 서로 밀고 당기며 정각원 법당을 두 바퀴 돈 다음 마가 스님은 걷기 명상에 들 마지막 다짐을 도반들에게 전한다.
“남산 길을 걷다보면 여러분의 명상을 방해할 수 없이 많은 요인들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길가에 서 있는 나무와 풀 등 모든 것이 명상에 방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것을 이겨내야 합니다. 모든 장애를 딛고 걷기 명상을 할 때 마음의 참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 장애를 이기고 저와 함께 훌륭하게 걷기 명상을 할 마음의 준비가 다 되셨나요?”
“네.”
떼엥∼, 마가 스님이 손 위에 얹은 그릇 모양의 종을 힘차게 치는 것을 시작으로, 이윽고 일행은 줄 지어 마가 스님을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남산 걷기 명상 참가자들이 마가스님의 인도에 따라 걷기 명상을 하고 있다.
저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걷기 명상을 하는 틱낫한 스님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 한국의 동국대학교와 뒷산 남산 길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것이라 아직 참가자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광경은 플럼빌리지의 그것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 감동 그 자체였다.
남산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표정은 점차 밝아졌다. 남산 길을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는 걷기 명상에 차츰 익숙해질 무렵, 이들은 처음 떠났던 정각원 뒷마당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도착했다. 어느 순간 훌쩍 3시간이 흘러간 것이다.
첫 걷기 명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마가 스님이 회향에 앞서 도반들에게 마지막 법문을 들려줬다.
“걷기 명상을 하면서 많은 생각, 망상이 흘러갔을 것입니다. 그렇지요? 그 망상이 꽤 많았을 것입니다. 한 108가지는 됐겠지요. 그것을 우리는 108번뇌라고 하지요. 그러나 걷기 명상을 훌륭히 마친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그 108번뇌를 108행복으로 생각하십시오. 한 마음 돌리면 번뇌는 행복이 됩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납시다.”
마가 스님은 첫날 걷기 명상에 30명의 도반이 함께 한 것은 예상 밖 호응이라고 즐거워한다. 아마도 머지않아 수백 명, 수천 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며 행복한 표정이다.
첫 걷기 명상을 마치고 삼삼오오 동국대를 나서는 명상도반들의 발길도 가볍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가볍고, 한결 맑아진 느낌이기에 표정은 밝게 빛났다. 첫 걷기 명상에서 108번뇌를 108행복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이들, 그 가운데에는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그런 차이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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