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영혼(靈魂)의 파장(波長)

장백산-1 2011. 7. 23. 17:40

 

 

작성일 : 08-09-11 15:20
성우스님 법문 정리

 글쓴이 : 이종기
조회 : 507  

오늘 아침에는 여러분이 어느 법회에서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하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 귀하고 귀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연코 사람입니다. 사람이 귀하지만 사람이라고 다 귀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다운 사람, 사람의 냄새가 나는 사람, 사람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귀하다는 뜻입니다. 왜 사람다운 사람이 귀하다고 할까요? 그것은 사람이란 누구나 살면서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인데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고 돈이 많다 해도 그러한 사람이 사람다우지 못하면 행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고 능력이 모자라도 그 사람이 사람다우면 그 사람은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이란 달리 표현하면 그 영혼이 맑고 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헛된 욕심이 없어 그런 사람은 행복할 수가 있습니다.

스모그 현상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해입니다. 허나 지금 더 무서운 것은 7천만의 마음의 조각들이 스모그처럼 거무튀튀하게 보이는 이 현실입니다. 나에게는 이 거무튀튀한 이 현실이 더 무섭게 보입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 우리는 시청 앞 광장을 메웠던 소위 그 ‘붉은 악마’의 열기를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때 우리의 시대가 웅비할 것이라는 크나큰 열망과 흥분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 5년을 우리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그것은 헛된 열기였습니다. 그것은 거품이었습니다. 그것은 들뜬 마음의 상태였습니다. 우리는 이 거품을 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힘든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성공했다고 합니다. 5000년 역사이래 이처럼 우리가 물질적으로 풍족한 적이 없었으니 물질적으로는 성공했다고 할만 하겠습니다. 허나 정신적으로는 어떠한가요? 그 들뜬 열기는 아직까지 지속되어 우리는 정신적으로 헛되게 살고 있습니다. 맑은 영혼의 상태에서 삶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참된 행복의 상태에 우리는 있지 아니합니다. 정신적인 삶의 가치 정립이 없이 물량만이 행복의 가치기준으로 오도되는 현재의 세계는 참된 행복의 세계가 아닙니다.

오늘 이 시점에 불교가 살아야 할 당위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가 살아야 우리 인간의 정신이 삽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사람의

마음을 가르치고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불교는 바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허지만 유감스럽게도 1600여 년의 세월을 지낸 오늘의 불교는 지는 태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00여 년 된 불교가 썩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를 살리기 위한 나만의 역사적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 어진 사람, 영혼이 맑은 사람이 아주 많이 태어나야 합니다.
이러한 태어남의 현상은 업보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태어남의 업보에는 4가지 현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은혜를 받고 태어나는 경우, 2. 원한을 갚기 위해 태어나는 경우, 3. 빚을 갚기 위해 태어나는 경우, 4. 자식의 덕을 받아 빚을 지고 태어나는 경우 등이 그것입니다.

부모 자식간의 인연은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맺어지는 인연 하에 태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롭게 태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부모 자식간의 현 세계에서의 인연은 악연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또한 자식이 안 생기는 부부는 전생부터 인연이 없기 때문에 그러 합니다.
우리는 부모가 자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전생의 인연에 의해서 저기 저 부모를 선택해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부모 자식의 인연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나쁜 인연으로 태어난 한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함으로써 왜 좋은 인연으로, 은혜를 받고 태어나야 하는가를 반증하고자 합니다.

대구에서 2군 사령관을 지낸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들이 방학 때 친구 2명과 함께 포항의 어느 바다에 해수욕을 하러 갔습니다. 3명이 한꺼번에 불 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는데 다른 2명의 친구들은 물속에서 나왔지만 그 사령관의 아들만 물속에서 나오지 못해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영혼을 위로하게 위해 팔공산 동화사에서 49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들이 옆에서 염불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사령관이 “요놈의 자식, 목을 비틀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 하고 냅다 고함을 지르더니 법당을 뛰쳐 나갔습니다.

그날 밤, 사령관이 염불 드리던 스님을 만나자고 해서 그 스님이 찾아갔습니다. “스님, 여태껏 제가 불교를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스님을 의지해서 착실히 불교를 믿겠습니다.” 하면서 지난 과거의 한 사건을 말해주더랍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가 49제를 올리는 도중 홀연히 자기 아들의 위패 옆에 나타난 자신의 옛날 부관의 모습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부관은 바로 다름아닌 자기가 6.25때 총으로 쏘아 죽였던 바로 그 부관의 모습이더라는 말이지요.
그 사령관은 6.25때 30여단장으로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령관이 경무대에서 열리는 이승만 대통령의 작전회의에 부름을 받아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없는 동안 그 부관에게 지휘권을 맡기고는 내가 없는 동안 북진을 할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헌데 공교롭게도 사령관이 서울에 가 있는 동안 인민군의 습격을 받아 그 여단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되었다고 합니다.

절망감으로 서울에서 돌아온 그 사령관은 물론 그 지휘권을 맡긴 부관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너는 습격을 받은 날 어디에 있었느냐?” 하고 물었더니 “저는 온천에 가 있었습니다.” 하고 부관이 대답합니다.  “누구랑 갔었느냐?” 하고 사령관이 물었더니

“기생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는 대답을 부관으로부터 듣는 순간 그 사령관은 너무 격분한 나머지 그 부관을 그 자리에서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의 아들의 위패 옆에서 그 부관의 모습을 보니 그 부관의 영혼이 나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나를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최종적으로 사령관이 스님께 고백하더랍니다.

이러한 현상을 불교에서는 카르마 법칙이라고 합니다. 업과 업의 연속선 상의 우리의 삶과 죽음의 이어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업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없습니다. 자기 업은 스스로 삭히고 승화시켜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반항하고 못되게 구는 것은 부모 자식간의 인연이 좋지 않은 인연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상 좋은 인연을 기르도록 힘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논을 맑게 키워 놓으면 학이 올 수 있듯이 내 영혼을 맑게 하면 좋은 인연으로 좋은 자식의 인연, 좋은 영혼의 인연이 시작됩니다.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려면 ‘원력(願力)’에 의해 태어나야 합니다. 원력에는 자기원력타인원력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대표적인 자기원력에 의해 태어난 분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50세 되던 해 달라이 라마는 ‘링’이라는 린포체의 모습으로 22번째 다시 태어납니다.

그 린포체는 달라이라마의 스승이 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달라이라마는 자기육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기영혼을 갖고 태어난 자기원력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타인원력의 대표적인 현상으로는 고려시대의 자장스님(자장율사)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무학거사라고 부르는 이 자장스님은 역사적으로 참 중요한 분이십니다. 고려18년 몽고병란 시, 박서 장군은 몽고군과의 전투에서 무참히 참패합니다. 이 때문에 박서 장군은 패잔병의 처절한 심정으로 가야산 해인사에서 단식기도에 들어갑니다.

기도한지 20일이 지났을 때, 부처님이 광명으로 나타나셔서 ‘나라 일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화해로서 잘 될 것이다.

그대의 5대손 아래에 한 나라를 세울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시고 사라지셨습니다.

박서장군의 후손인 부록의 아들이 백년거사로부터 가르침을 수련 받던 중, 백년거사가 그 부록의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의 할아버지다. 이제는 하산해라. 하산한 후 마을에 있는 벙어리 처녀와 결혼하라.’ 이 말을 들은 부록의 아들은 하산해서

결국 그 벙어리 처녀와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벙어리 처녀가 결혼 후 20일이 지나니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참, 놀라운 일이지요. 하지만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결혼 이전에 이 벙어리 처녀는 사실 벙어리가 아니었습니다.

말 잘하는 지혜로운 처녀였는데 어느 날 탁발승이 찾아와 공양미 보시를 원해 쌀로 공양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탁발승이 ‘앞으로 무엇을 보아도 보았다 말하지 말고 들어도 들었다 말하지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마시오.

다만, 항상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시오. 그리하면 결혼 후 아이를 가지게 될 것이고 그 아이는 큰 인물이 될 것이요.’라고 하더랍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인물이 바로 무학거사(자장스님)입니다. 이는 한 인물이 태어날 때,

5대에 걸친 인연의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타인원력의 한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빌 게이츠나 이건희 씨 같은 큰 인물들은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선업에 의한 복을 지녔기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복을 지니고 태어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불자의 경우는 염불을 하는 방법이 있고 불자가 아닌 경우는 감사명상을 들 수 있습니다. 감사명상을 한 사람들 중에는 다음에 태어날 아이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왜 태어나기 몇 년 전의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가? 이것은 영혼의 파장이 맞아 떨어져서 그렇습니다. 즉, 은혜를 받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업, 선연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절대로 속을 썩이지 않습니다.

이건희/김용철(변호사)은 악연으로 맺어진 전형적인 예입니다. 부모/자식간의 사이도 악연으로 만나면 부모가 속을 썩이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연을 만들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임신 전에 좋은 연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임신한 후 좋은 연을 쌓으려고 하면 이미 늦었다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28일 이내에 지극정성을 다하여 좋은 연을 위한 노력을 하면 그 임신을 가능케 한 기존의 업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좋은 업과 좋은 연에 의해 아이가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임산부의 마음을 편하고 맑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는 우리 불자들이 하는 염불이 가장 좋습니다. 염불을 하면 임산부의 마음이 맑고 밝게 되고 또한 태아의 마음을 맑게 해줍니다.

태아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은 즉각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겠습니다. 갓 태어난 어느 아기가 통 엄마 젖을 먹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이하여 그 산모를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게 했더니 “나는 이 아이를 정말 낳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이 아이를 낳게 되었다.”라는 산모의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아기가 엄마의 마음을 이미 읽고 그 젖을 안 먹으려 한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 한 예를 들겠습니다. 4살 되는 꼬마가 엄마를 따라 산 속에 암자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 꼬마가 통 엄마 곁을 떠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엄마가 화장실을 가더라도 그 화장실까지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를 보고 암자의 주지스님이 그 엄마에게 “연애를 해도 대충해야지 어찌 그리 둘러붙게 했느냐?”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스님께서는 이미 그 엄마의 업을 파악하신 것이지요.

 

그 엄마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학생시절에 한 남자가 자기의 가정교사로 있었는데 그 남자가 10년간을 자기를 따라 다녔다는 것입니다. 그 가정교사라는 남자가 10년을 따라 다녀서 그 정성이 가엾어서 자기는 그냥 결혼을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자가 10년을 졸졸 따라다녀서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그 자식이 그 업에 의해서 엄마 곁을 졸졸 따라 다니게 되는 업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아이는 잘 때도 엄마가 만져 주어야 잠을 자곤 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원력으로 태어나면 제일 좋습니다. 그러나 업으로 태어나게 되면 염불을 해서 인연을 맑게 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녀가 선연과 선업으로 만나서 아이를 낳도록 하면 좋은 인물이 태어납니다.
여기에 우리 불교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는 것입니다.

남녀가 선업과 선연으로 만나서 부모자식간에 좋은 인연으로 관계를 맺도록 하는 일, 바로 그 일입니다.

성우스님께 한 질문과 답변:
질문: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는 그 어떤 생물도 없었습니다. 30억년 전부터 미생물이 생기기 시작하여 그 미생물로부터 발전이 되어 여러 형태의 동물이 생겨나고 결국엔 200만년 전부터 침팬지로부터 인간의 진화가 되어 왔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미생물 시대에 어떻게 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인연, 또는 윤회 같은 것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달라이라마는 윤회란 에너지와 같은 미세한 마음이 이전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러한 것이 잘 납득이 안됩니다.

답변: 지식과 논리는 유한한 것입니다. 지혜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부처님도 한 때는 코끼리로 태어나신 적이 있습니다. 코끼리 시절, 한 발로 개미를 밟을 뻔한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인간으로 태어나서는 깨달음의 세계를 갖게 되신 것입니다. 이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지혜를 가져야 만이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질문한 불자도 언젠가 지혜를 갖게 되면 이해할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