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근원은 진아다.
이를 영혼이라고도 한다.
진아는 자기의 대행자로 마음을 갖는다.
마음은 진아에서 그 근거를 갖는것이다.
마음은 자기의 대행자로 에고를 갖는다.
인간의 사고는 머리에서 발생하는데
그 매카니즘은 나라는 중심점으로부터 생각은 전개되어간다.
이렇게 하여 전개되는 모든 사건은 마음을 통하여 원인체의 체험으로 축척되어가는 것이다.
수행에서 볼때
우리가 접근할수 있는 가장 근원에 가까운것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수행의 방편을 마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가 진아 일지라도
수행에서 수행의 대상을 바로 진아로 삼을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인간의 의식으로 직접 진아와 접촉이 안되기에 그러한 것이다.
진아가 대통령이라면 마음은 진아에게 보고하는 진아의 측근의 비서실장 같은 존재인것이다.
우리는 견성하기전에는 이 비서실장을 통하는것이지 진아를 직접 독대할수는 없는 것이다.
마음이 청정해지기전에는
진아는 마음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볼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에서 마음을 갈고 닦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마음을 갈고 닦는것은 이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써의 행이 되는데 그 이유는
갈고 닦여진 마음을 통하여 진여자성인 진아를 볼수가 있기 때문이다.
5조의 두 제자인 혜능선사와 신수의 시에서
헤능은 마음을 갈고 닦을 필요도 없이 이미 청정한데 무엇을 더 할것이 있으리요라고 일갈을 헀고
신수는 마음을 갈고 닦을것을 주장을 하다가
결국은 혜능의 승리로 돌아가서 조계종법통을 혜능이 물려받아 6조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정확히 할 부분이 있는것을 알게 된다.
긍극적인 존재로써의 마음(포괄적존재의 명칭)은 진아를 의미하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당연히 혜능이 맞는것이고 혜능이 진아를 본것으로 판단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범위를 좁혀 수행의 방편만을 이야기한다면 신숭의 글이 맞는 것이다.
중생의 마음으로는 갈고 닦지 아니하면 본래부터의 진여자성인 진아가 들어나지를 않는 것이다.
수행의 방편으로만 말한다면 신수의 글이 지금의 수행자들에게는 더 맞는것이 된다.
진아는 혜능의 글처럼 더 닦을수도 없고 닦여지지도 않는것이며
이 진아를 볼려면 신수의 글처럼 마음을 갈고 닦아야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혜능의 글이 맞고 신수의 글은 본성을 보지못한것으로 배워왔다.
일견 분명 그러한 면도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수행자는 혜능이 말한 본성을 보려면 혜능보다는 신수의 글이 더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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