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시작과 끝 : 12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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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에서 벗어나고자 하니 인연의 시작을 찾아야 했는데, 마침내 그 시작을 깨달은 석가세존이 이를 일컬어 무명(無明)이라 했다. 무명이란 말은 불교에서는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십이연기법을 살펴보면 무명의 뜻은 최초의 인연, 즉 인연의 시작을 말한다. 석가세존이 십이연기에 대해 설법한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십이연기(十二緣起)의 순관(順觀)
某靈靈駕 至心啼受(모령영가 지심제수) 六入緣觸 觸緣受(육입연촉 촉연수)
모령의 영가들이여, 지극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라.
無明滅卽 行滅(무명멸즉 행멸)
무명을 없애면, 행이 사라지고
수가 부질없음에, 사랑에 붙들리지 아니하고
여기에 나오는 열 두가지 연기에 대해서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인 ‘마음의 귀향-반야’에서 자세히 설명될 것이다. 여기서는 일단 십이연기의 전체적인 의미, 그리고 연기론을 통한 윤회의 시작과 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생명이 육도 윤회하는 고해 속에서 고뇌 번민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니, 까마득한 옛날에 인연(無明)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인연이 생기니 그것에 반응하는 본능(行; 부처님은 짐승들의 본능을 행으로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선 마지막 장에서 상세히 해설한다)이 생겼다. 본능이 생기니 이어서 나와 너를 구별하는 분별(識)이 생겼다. 이 분별심이 업이 되어 육체(名色)를 받게 되고, 몸을 받고 나니,
자연히 감각(六入 : 육경(六境)이라고도 한다. 여섯 가지 감각 또는 감각 기관을 말하는 것으로 눈, 코, 귀, 입, 신체, 의식의 여섯 가지를 가리킨다)이 생긴다. 감각을 갖추게 되니 나와 남으로 나누어져 만남(觸)이 있게 되고, 남과의 만남에서 내 것이라는 집착(受)을 하게 된다. 집착을 하게 되니 집착의 대상에 대한 사랑(愛)이 생기고, 사랑을 하게 되니 욕망(取)에 사로잡히며, 욕망의 불길은 소유(有)하게 만들어
마침내 소유(有)의 업이 뿌리가 되어 다시 태어나게(生) 되었다. 태어나고 나니 고뇌 번민을 떨칠 수가 없도다.” 십이연기의 순관(順觀)으로 육도 윤회의 이유를 알았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십이연기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십이연기의 역관(逆觀)으로 윤회의 짐을 벗고 해탈로 가는 길을 알아보자.
"옛날에 이 몸을 있게 만든 그 인연(無明)을 없애면 인연을 따라 일어났던 본능(行)이 사라지고, 본능(行)이 사라지면 나와 너를 구별하는 분별(識)이 없어진다. 분별심이 업이 되어 받았던 몸(名色)을 벗게 되니 몸을 벗으면 육체의 작용인 여섯 가지 감각(六入)이 사라지고, 감각이 사라지니 나와 남의 나뉨이 없어 만남(觸)이 없어진다. 남과 만나지 아니하게 되니 내 것이라는 집착(受)을 버리게 되고, 집착을 버리니 집착
의 대상에 대한 사랑(愛)을 가질 이유가 없다. 사랑을 하지 아니하니 욕망(取)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욕망의 불길을 잠재우니 소유(有)할 필요가 없다. 아무 것도 소유(有)하지 아니하니 태어나야 할 업을 짓지 않게 되고, 태어날 업이 없으니 태어남(生)이 없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는데 무슨 고뇌 번민이 있겠는가? 십이연기는 무명에서 출발하여 무명으로 돌아와 끝난다. 여기서 부처님이 무명을 모든 인연의 시작인
무엇으로 말씀하셨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무명을 없앤다는 것은 인연의 원인을 없애겠다는 말이며, 소급해서 최초의 원인을 멸하겠다는 이야기다. 이 무명이라 이름지은 인연의 시작은 무엇일까? 과연 최초의 인연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이유가 있다면 이것은 논리적으로 인과론에 배치된다. 왜냐하면 최초의 이유는 아무런 선행되는 이유도 없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라져버릴지를 예측할 수 없다면 이건 인과론의 세계가 아니다. 분자 이상의 세계는 물리적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고 예측한 대로의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원자 이하의 세계에 들어가면 갑자기 모든 것은 예측 불가능해지고 인과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원자핵을 싸고도는 전자의 움직임은 전혀 비인과적이다.
특정 지점에 있는 것을 관찰하는 순간엔 거기에 있지만 다음엔 어디에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미립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이건 완전히 요술의 세계다. 미립자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다. 물리적인 존재란 특정 순간의 위치와 속도이다. 그러나 미립자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이 그 유명한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다. 물질의 기본 단위인 미립자들이 전혀 선행하는 원인 없이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져서 소멸하기도 한다.
연의 끝인 해탈 역시 무(無)다. 이 세계는 비인과론적인 세계인 무(無)에서 출발해서 인연의 세계를 거쳐서 결국 비인연의 세계인 공(空)으로 돌아가는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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