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메일

[스크랩] 젖통 / 임보

장백산-1 2011. 9. 9. 19:05

 

 

 

 

 

젖통 / 임보

 

 

1 

한 반세기 전만 해도

젊은 여인들의 가슴에 매달린 젖통은

하나의 그릇에 불과했다

갓난아이의 먹이가 담긴 천연의 밥통이었다

우리가 밥그릇을 부끄러워하지 않듯

물동이를 이고 간 여인들의 젖통은

짧은 적삼의 섶 밑을 비집고 나와

동아호박처럼 넌출대며 세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선지

그것이 옷깃 속에 감추어지면서

아이들은 플라스틱 젖병을 빨기 시작하고

세상은 이상하게 부끄러워졌다

이제 젖통은 밥통의 기능을 잃었지만

은밀히 숨어서

세상을 지배하는 법통으로 군림한다

보라, 도시의 거리를 흔드는 저 법통들을

요즈음 젊은 여성들은

법통으로 말하고

법통으로 뭉갠다.

 

2 

남성들의 가슴에도 젖이 있다

두 개의 젖꼭지가 건포도처럼 매달려 있다

그것이 왜 거기에 있는가?

태초엔 남성들도 임신을 했거나

부양의 권능을 몸소 실천했다는 증거인가?

폐가의 허물어진 주춧돌을 보는 것처럼

남성의 가슴은 황량하다

가난한 집의 주저앉은 쌀자루처럼

남성의 가슴은 허전하다

패망의 상징― 쭈그러진 두 개의 무덤

젖과 함께 남성들은 망했다. 

 

 

 

 

 

출처 : 淸韻詩堂, 시인을 찾아서
글쓴이 : 동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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