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天竺(천축)은 印度(인도)가 아니다.

장백산-1 2011. 10. 29. 17:26

임희경 지음 | 한국세종한림원출판부 | 2008.11.19

 

출판사 서평
天竺(천축)은 印度(인도)가 아니다.
法顯(법현)의 一代記(일대기)에 관하여 宋高僧傳(송고승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하고 잇다. 法顯(법현)의 姓(셩)은 龔(공)씨이며, 平陽武陽人(평양무양인)이다. 집에서 살 때에는 병이 심히 위독하여 죽을 고비에 이르자, 절(寺)로 보내게 되엿다. 세살 때에 沙彌(사미. sramna)가 되엿다. 열 살때에 父母喪(부모상)을 당하게 되엿다. 장사지내고 즉시 절(寺刹)로 돌아오게 된다. 性品(성품)이 매우 剛直(강직)하고 信心(신심)이 비범한 面貌(면모)를 보여주고 잇다.
평소에 慨歎(개탄)하기를 經律舛(경률천), 즉 經(경)과 戒律(계률)이 서로 相馳(상치)된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法顯(법현)은 律藏(률장)을 求(구)하기 위하여 동학배 慧景(혜경), 道整(도정), 慧應(혜응), 慧嵬(혜외)등과 함께 晉(진)나라 隆安(륭안) 三年(삼년)에 長安(장안)을 떠나게 된다.
첫째, 譯者(역자)가 금반 역유천축기전을 번역히여 새롭게 慧超 (혜초)스님 보다 오래전에 天竺(천축)을 旅行(여행)한 記錄(기록)을 접하게 되어 중요한 의미를 느끼게 된다. 단순히 歷程(역정)의 상황을 읽을 수 잇는데 그치지 않고, 旅行記(여행기)에 나타난 불교의 用語(용어)에 담긴 의미를 상세하게 考證(고증)하여 註釋(주석)한 부분은 학술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天竺(천축)을 단순히 印度(인도)로 잘못 認識(인식)하게 되어 불교의 발상지가 印度(인도)라고 알앗던 사실을 중국고금지명대사전과 률장의 출처에서 中天竺(중천축), 北天竺國(북천축국)에서 律藏(률장)을 얻엇다는 기록은 매우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이다. 또한 중천축국과 북천축국이 東夷族(동이족)의 中央朝廷(중앙조정)의 疆域(강역)임을 記錄(기록)하고 잇다는 사실이다. 이는 동이족의 강역인 지금의 감숙성 燉煌(돈황)을 중심으로 한 天山(천사), 즉 雪山(설산)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修行(수행)하여 得道(득도)하엿고, 須彌山(수미산), 亦曰 (역왈) 雪山(설산)은 지금의 甘肅固原顯北九十里(감숙고원현구십리)에 위치하며, 修迷樓(수미루)에서 佛經(불경)을 結集(결집)하엿다고 中國古今地名大辭典(p. 974)에서 밝히고 잇다. 이 記錄(기록)역시 佛敎(불교)가 印度(인도)에서 발생되지 않앗다는 사실을 立證(입증)하고 잇다.
둘째로, Dipanka, 즉 漢譯(한역)하여 燃燈佛(연등불)에 관한 註釋(주석)이다. 상고역사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일만년전 桓因(*桓仁.환인) 천황이 우리 祖上(조상)이며, 桓仁(환인)의 五代孫(오대손) 王子(왕자)인 연등부처이며, 一名 金蟬子(금선자)라 한다. 法華經(법화경)方便品(방편품)大9:7과 金剛般若經(금강반야경大8:748下)에서 “我念過去無量阿僧祗劫於燃燈佛前(아념과거무량아승지겁어연등불전)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득치팔백사천만억나유타제불),” 석가모니 부처가 이 세상에 出現(출현) 一大事(일대사) 因緣(인연)은 그의 前生(전생)에 연등불밑에서(*석가 出現보다 8500여년전) 難行苦行(난행고행)한 因緣功德(인연공덕)으로 부처가 되리라는 授記(수기)를 받게된다. 이 記錄(기록)에 의하면, 불교의 歷史(역사)는 우리 東夷族(동이족)의 상고 만년의 歷史(역사)가 되며, 불교는 석가모니가 창건한 종교가 아니라, 불교의 中興祖(중흥조)임을 反證(반증)하고 잇다. 이 역사적 사실은 佛敎의 印度(인도) 發生說(발생설)을 顚覆(전복)시키는 확실한 證據(증거)가 되기에 충분하다.
상기와 같이 法顯(법현)의 歷遊天竺記傳(역유천축기전)을 飜譯(번역) 중요성과 精密(정밀)한 學術的(학술적)이요 語源的(어원적)인 註釋(주석)의 價値(가치)는 佛敎(불교)의 유규한 역사의 根源(근원)을 밝히는데 잇서서 새로운 地坪(지평)을 여는 충분한 契機(계기)가 된다고 確信(확신) 한다.

출처 :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글쓴이 : 농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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