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마음의 법칙/제2화;;일체유심조(콩팥의 법칙)입니다

장백산-1 2011. 10. 31. 14:04

 


마음의 법칙 -  제 2 화는 : 일체유심조(콩팥의 법칙)입니다


눈이 내리면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나요?
내리는 눈을 보면서 생각하는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린이는 눈썰매와 눈사람을,

 청춘의 남녀는 데이트의 설레임을,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는 출근길의 걱정이 앞설 것입니다.
같은 눈을 보면서 마음에 그리는 그림이 다 다릅니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제 각각 다른  이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마음의 법칙 제 2 화 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얘기하고자 합니다.


일체유심조라니 무슨 말입니까?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다 오직 마음으로 지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다 지었다면, ;;

산도 마음이 만들었고 바다와 하늘 비행기 애완강아지등등 우리가 보고 만지고 사용하는 일체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서 나왔다는 얘기입니다.
심지어 히말라야 험한 설산도 아마존의 방대한 밀림도  북극의 거대한 빙하도
아니 지구밖의 끝없는 우주도 다 마음이 만들었다니,


황당하게 들리지 않습니까?


형체도 없고 빛깔도 없는 마음이!!

 어떻게 이런 거대한 산하대지를 만들었다는 말입니까?
법화경에 보면,부처님이 중생과 이 세계의 수효를 말씀하시면서,
황하강의 모래수보다 더 많은 황하강이 있고 그 하나하나의 황하강 모래보다
더 많은 우주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하시자 2,000명의 아라한들이 일시에

퇴전해버립니다.


눈으로 볼 수없는 세계라고 함부로 말한다는 이유에서지요.
여러분은 정말 그렇게 많은 세계가 오직 마음이 만든 것이라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꿈 얘기를 한 번 하고자 합니다.
꿈을 꿔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개꿈부터 시작해서 물 불 바람 동물 등 온갖 것이 꿈에 나옵니다.
꿈속에서도 칼에 베이면 아프고,

불에 데이면 뜨겁고,

홍수에 휘말려 발버둥치고,
강도에게 쫓기고,

 술을 마시면 취하고,

글을 쓰고 노래하고 울고 웃고
정말 현실과 꿈은 하나도 다르지 않는 모습입니다


꿈꾸는 시간의 그 세계는  꿈을 깨고 보는 지금의 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꾸는 꿈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이 현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꿈속에도 산과 바다와 강과 도시와 자동차와 컴퓨터 등 다 있습니다.
마음이 다 지은 바라고 하니 꿈속에서 만들어진 그 세계도
마음이 창조한 세계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일체유심조라 하셨으니 그냥 믿어야 합니까?
아니면 내 스스로 확신이 설 때까지  믿는 것을 유보해야 하나요?
어쨌든 꿈속의 세계 역시 누군가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세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애시당초 꿈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꿈속의 창조주는 과연 누구일까요?
마음입니다.
각자가 꾸는 꿈은 각자의  마음이 만들어 펼쳐 놓은 능력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펼쳐 놓은 꿈을 한 순간에 접을 수 있는 것입니다.
꿈을 펼치고 접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꿈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장자의 나비의 꿈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가  꿈을 꾸는데 꿈속의 장자가 또 꿈을 꾸더니
한 마리 어여쁜 나비가 되어서 날아 갔습니다.

그래서 꿈꾸는 장자도 장자고
다시 꿈속에서 날아 가는 나비도 장자다는 얘기입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장자가 자신의 마음의 능력으로
한 번 펼쳐 만든 나비였기에 그 나비는 바로 장자 자신인 것입니다.
이것을 꿈속의 일체유심조라고 합니다.
그러면 꿈을 깨고 보는 이 세계도 다 내 마음이 만든 것인가? 란
물음이 있습니다.

성철 스님의 신년송에
"내 마음이 다 만든 것이니 저 부산 오륙도를 나는 갈매기가 나고
내가 곧 갈매기다."는  시 구절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오륙도 위를 나는 저 갈매기가 나고 내가 저 갈매기다는 말이
맞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대목이 일체유심조를 옳게 보느냐 잘못 보느냐의 갈림길입니다.


다 마음이 지었다 는 말과,

내 마음이 다 지었다 는 말은
하늘땅으로 다른 소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꿈속에서 지은 것은 내 마음이 창조한 세계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고있는 이 세계는 내 마음이 다 만든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개개의 불성들이 각자의 능력과 인연으로 지은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니 갈매기는 스스로의 능력과 인연에 의해서 창조된 생명이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이 일체유심조를 잘못 보고있다는 뜻입니다
장자의 꿈 나비와 오륙도의 갈매기가 이제 이해가 됩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은 진리(眞理)입니다.

참된 이치라는 뜻입니다.


일사 만사에 한 터럭이라도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마음의 능력을 얘기했습니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은 '코끼리 다리만지기'식으로 말하고 배우는 것에
까닭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지금 일체유심조를 말씀하신다면 
이렇게 하시지 않을까요?


"모든 일이 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우리 속담에 일체유심조의 도리가 다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민족의 삶에 얼마나 진하게 녹아 들어 갔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와 같은 말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업을 지으면 복을 받고,
악한 마음으로 업을 지으면 재앙을 받는다

.
선과 악을 떠나서 짓는 과보는 공덕(功德)을 이룬다.'


사람의 몸은 14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세포 하나하나가 다 생명이니 곧 140조개의 불성(佛性)이 모여서
이루어진 작은 우주인 셈이지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목표는 다 행복입니다.
풀끝을 기어가는 애벌레도 더 나은 행복을 찾아서 가는 것이고,
풀 숲의 너구리도 행복해지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추위속을 걷는 것입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목표가 행복인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에 따라 내 몸과 한 몸이 된
세포들의 행복지수가 달라지겠지요.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습니다.
나도 행복하고 내 세포들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해지는 삶이
불자의 삶 아닐까요?

 일체유심조의 이치를 알고나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동국대 선학과 교수 혜원스님>

출처 : 다이아몬드
글쓴이 : 娘生寶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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