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길없는 길입니다 - 크리슈나무르
크리슈나무르티는 그 교단의 교주 자리에 앉혀졌다.
1929년 8월 2일, 네덜란드의 옴멘에서 있었던 연례 캠프모임 개막일에, 크리슈나무르티는 3000명의 신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단을 해산했다.
다음은 당시 그가 행한 연설의 전문이다. 많은 분들이 기뻐하시리라 봅니다. 물론 다소 슬퍼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로써 결코 즐거워하거나 슬퍼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느날 악마와 그의 친구가 길을 걸어가다, 그들 앞에서 한 남자가 허리를 굽혀 땅에서 무언가를 주워, 바라보더니, 호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친구가 악마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이 뭘 주웠지?” 그러자“한 조각의 진리를 주웠다네”라고 악마가 말했습니다. “자네에겐 안된 일이군”라고 친구가 말했지만, 악마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 전혀 그렇지 않아. 난 저 사람이 그걸 조직화하도록 할 거야”.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어느 종교, 어느 종파를 통해서도 진리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견해이며, 이에 대한 저의 신념은 확고하고 절대적입니다.
진리란 무한하고 무조건적이며 그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다가갈 수 없는 것이기에, 이를 위해 단체를 조직할 수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단체를 설립해 사람들로 하여금 특정한 방법을 따르도록 인도하거나 강요하는 일을 해서도 안 됩니다.
우선 이것을 이해하신다면, 그러면 단체를 통해 믿음을 구현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순전히 개인의 문제이기에, 단체를 통해 구현할 수도,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진리는 죽어, 결정체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교리, 종파, 종교가 되어버리고, 그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시도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왜소해져, 심약한 사람들, 그저 일시적인 불만에 사로잡혔을 뿐인 사람들의 노리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각자 그곳에 오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산 꼭대기를 계곡 아래로 끌어내릴 수는 없습니다. 산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계곡을 넘고 절벽도 타오르고 위험한 낭떠러지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 여러분들은 다른 교단을 만들지도 모르며, 진리를 찾는 다른 단체에 계속 가입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그 어떤 단체에도 속하고 싶지 않습니다.
부디 이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도 어떤 단체를 활용하기는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런던에 갈 경우 런던까지 저를 데려다 줄 그러한 단체 말이죠.
하지만 이는 편지를 부치고 전보를 치는 일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다른 성질의, 그저 기능적인 역할만을 수행하는 단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행할 때는 자동차나 배도 이용할 것인데, 이런 것들은 영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저 물리적인 구조물일 뿐입니다.
하여 저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어떤 단체도 인간을 영성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결함 덩어리, 족쇄가 되어, 틀림없이 개개인을 불구로 만들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성장하는 걸, 각자 지니고 있는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고 구현하는 걸 방해할 것입니다.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는 자기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발견하는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단의 교주 자리에 앉게 된 제가, 이를 해산하기로 마음먹은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도록 설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 추종자를 원치 않습니다.
이것 뿐입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추종하는 바로 그 순간 진리 따르는 일은 멈추고 맙니다.
제 말씀에 여러분이 귀 기울이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그 어떤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을 하는 데 흔들림 없이 매진할 것입니다.
전 오로지 한 가지 근원적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종교나 종파를 만드는 게 아닌, 새 이론이나 새 철학을 세우는 게 아닌, 인간들을 모든 속박,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열망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연스레 물을 것입니다.
어째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계속해서 연설을 하느냐고요.
제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말씀드리도록 하죠.
추종자를 원해서도 아니고,특별한 제자들로 이루어진 특수한 단체를 원해서도 아닙니다.
(사람들은 어찌 그토록 다른 동료들과는 달라 보이고자 하는지. 그 구분이란 게 지극히 사소하고, 보잘 것 없고, 허튼 것이라고 할지라도요. 전 그 같은 엉터리 짓을 부추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상이든 영적인 세계이든 제겐 제자가 없습니다.
사도도 없습니다.
돈의 현혹이나 편안한 삶을 살고자하는 갈망이 저를 유혹해서도 아닙니다.
편안한 삶을 살고자 했더라면, 이 캠프모임에 오지도, 이처럼 습기 찬 나라에 와 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이를 완전히 결말 짓고자 이처럼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해를 거듭해가며 이 같은 유치한 논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대단한 조치였겠죠.
다음과 같이 말했으니까요.
“앞으로 뭘 하실 것인가요, 어떻게 사실 것인지요?
추종자도 없을 테고, 사람들도 더 이상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을 텐데요.”
그러나 저는 영원에 귀 기울이고, 영원을 살며, 고개를 그리로 향한 분이 단 다섯 분만이라도 계신다면 족합니다.
이해하지도 못 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어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그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새로운 것을 원치도 않고, 아니 오히려 새로운 것을 그들 자신의 메마르고, 고리타분한 자아에 억지로 맞추려 들 것입니다.
제 말씀이 좀 심하더라고, 오해를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외과의사에게 수술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입장에서는 통증이 좀 있다 하더라도 수술을 하는 게 친절 아닐까요?
이와 마찬가지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린다 하더라도, 이는 참된 애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 자유를 향해 나아가도록 촉구하는 것, 그를 도와 온갖 속박을 깨뜨리는 것.
이것만이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자아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유롭고, 온전 무결하기에, 부분에 치우치거나, 상대적이지도 않으며, 영원하고 온전한 진리이기에, 저를 이해하고자 하는 분들이 자유로와지기를, 저를 추종하지 말기를 소망합니다.
저를 통하여 종교, 종파가 되어버리고 마는 감옥을 만들지 마시길 소망합니다.
반면 종교에 대한 두려움, 구원에 대한 두려움, 영성에 대한 두려움, 사랑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 이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데서 희열을 느끼기에, 그게 자기 표현이고, 영광이자 행복이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도 그처럼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로부터 무엇을 원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가 초능력 -- 기적의 힘으로 행복이라고 하는 영원한 자유의 왕국으로 여러분을 이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을 바라보는 전체 시각은 그 권위라고 하는 것 위에 기초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3 년 동안 제 얘기를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젠 제가 하는 얘기를 분석하고, 비평하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온전하고 본질적인 이해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을 영성으로 이끌어줄 권위자를 찾을 때, 여러분은 자동적으로 그 권위자 주변에 단체를 설립하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단체를 설립함으로써, 이 분 권위자를 도와 여러분을 영성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여러분은 감옥에 갇히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하는 얘기를 이해하시길 원하기 때문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여러분이 여기에 계신 이유이며, 만일 제 견해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단지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단체를 만들어, 여러분 가슴과 마음에 새로운 희열을 가져다 줄 누군가를 18년간 기다려왔습니다.
여러분을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끌어 올려줄 이, 여러분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줄 이, 여러분을 해방시켜줄 이를 말이죠.
하지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보십시오.
찬찬히 살펴보시고 꼼꼼히 따져 보십시오.
그러한 믿음이 어떤 점에서 여러분을 바꿔놓았는지 찾아보십시오.
뱃지를 차는 것과 같은 피상적인 차이, 그런 엉터리 짓 말고요.
어떤 점에서 그러한 믿음이 인생의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쓸어내버렸는지요?
그것만이 판단의 유일한 잣대입니다.
어떤 점에서 여러분은 보다 자유로와지고, 보다 위대해지고, 거짓과 본질적이지 않은 것에 기초한 모든 사회에 더 위험해졌나요?
어떤 점에서 교단의 회원들은 달라졌나요?
제가 인류의 스승이라고 믿든 그렇지 않든,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별의 교단이라고 하는 단체에 가입해 있기에, 크리슈나무르티가 인류의 스승이라는 점을 부분적으로 혹은 전적으로 인정하며 그에 공감하고,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진정으로 찾아나선 이들은 전적으로 인정하고, 자기 자신의 반쪽짜리 진리에 만족한 이들은 그저 부분적으로만 인정하며 말이죠.
“여러분은 18년 동안 준비해왔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장애물들이, 얽히고 섥힌 사소한 일들이 이해를 가로막고 있는지.
편견, 두려움, 권위자, 교회, 단언컨데, 새로운 것이든 낡은 것이든 간에 이 모두가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게 동의하기를 바라지 않고, 저를 추종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얘기를 이해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들만의 신을 갖고자 합니다.
낡은 신 대신 새로운 신을, 낡은 종교 대신에 새로운 종교를, 낡은 유형 대신에 새로운 유형을 원합니다.
모두 다같이 가치없고, 모두 다 장애물일 뿐이며, 모두 다 여러분을 제한하고, 모두 다 여러분께 목발이 될 뿐입니다.
낡은 영적 구분대신 새로운 영적 구분을 하게 되었고, 낡은 우상 대신 새로운 우상을 섬기게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의 영성을 다른 누군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행복을 다른 누군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깨달음을 다른 누군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비록 저를 맞이하기 위해 18년 동안 준비해왔지만, 이것들 모두 필요없으니, 이들 모두를 치워버려야만한다고 했을 때, 깨달음, 영광, 영혼의 정화를 위해서는 여러분 자신 내면을 바라보아야만 한다고 했을 때, 여러분 중 어느 분도 그렇게 하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몇 분 계실지도 모르지만, 아주 아주 극소수이죠.
잔인하고 냉혹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면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주시하십시오.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년에 얘기했었습니다.
당시 극소수의 분만이 귀기울이더군요.
올해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전세계에 걸쳐 얼마나 많은 회원분들이 18년간 저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왔는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제 그분들은 제가 하는 얘기를 제대로 귀담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울러 영적 숭고함은 자아의 부패하지 않는 순결성에 있으며, 이는 영원한 것이고, 이는 곧 이성과 사랑의 조화라고 단언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절대적이고 온전한 진리이며, 삶 그 자체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로 하여금 가벼운 몸짓으로 거리낌없이 창공을 나는 새들처럼 자유를 만끽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18년간 맞이하고자 준비해온 그 사람인 저는 이제 말씀드립니다.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여러분을 옭아매고, 얽어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이를 위해 영적 믿음에 기초한 단체는 필요치 않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하찮은 것들에 맞서, 그것들 모두를 제껴버린 다섯명 혹은 열명을 위해서라면 뭐하러 단체를 만드나요?
그리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진리를 찾을 수 있도록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단체는 없습니다.
진리는 모든 이들 안에 있으며, 멀리 있지도 않고, 가까이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원히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외부의 그 어느 누구도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지 못합니다.
단체에서 받들어 모시는 걸 숭배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그 단체의 대의에 몸바친다해도 그게 자신을 해방시켜주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끼리 단체를 만들어보아도, 그 단체의 일에 매진한다 하여도, 그게 여러분을 해방시켜주지는 않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타자기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 타자기를 제단에다 모셔놓고 숭배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의 주된 관심사가 단체일 때, 여러분은 바로 그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원이 얼마나 되죠?” 이 질문은 모든 신문기자들이 제게 제일 먼저 하는 질문입니다.
“추종자가 몇이나 되죠? 그 숫자를 보면 당신이 하는 말씀이 옳은지 그른지는 판단할 수 있습니다”
회원이 몇 명인지 모릅니다.
그런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스스로를 해방시킨 이가 단 한 분만이라도 계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그 열쇠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그 열쇠는 바로 여러분 자신이며, 자기 자신을 승화, 정화하여 영원히 부패하지 않는 상태에 이를 때, 거기에 영원의 왕국이 있습니다.
외부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으며, 다른 사람에 기대 자신의 안락, 행복, 삶의 동력을 찾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지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 자신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단계까지 나아갔고, 현재 어떤 영적 상태에 있는지, 누군가로부터 가르침 받는 데 여러분은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 얼마나 유치한 짓입니까! 자기 내면이 아름다운지 추한지에 대해 여러분 자신 말고 어느 누가 가르쳐줄 수 있나요?
자신이 영원히 부패하지 않을지, 여러분 자신 말고 누가 말해줄 수 있나요?
하지만 여러분은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분들은 다 함께 열정적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그림자와 같이 비실재적인 모든 것들에 위험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그분들이 결집하여, 불꽃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구심체를 우리는 만들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이해가 있기에, 참된 우정이 싹틀 것입니다.
그러한 참된 우정이 있기에,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 모르지만, 각자 역할을 통한 진정한 협력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권위 때문이 아니고, 구원 때문도 아니며, 대의를 위한 희생 때문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럼으로써 영원 속에서 살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어떤 즐거움보다 값지며, 그 어떤 희생보다도 위대한 일입니다.
일시적 충동으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 설득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일을 함에 있어서는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2년여 동안 저는 이 문제를 천천히, 신중하게, 인내심을 가지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저는 제가 교주로 있게된 그 교단을 해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한 일에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새로운 새장을 만드는 일에도, 그 새장을 새롭게 장식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저의 유일한 관심사는 인간을 완전히, 절대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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