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내 몸뚱이가 내 것이라는 생각조차 착각(錯覺)"

장백산-1 2011. 11. 29. 23:10

 

 

“내 몸뚱이는 내 것이라는 생각조차 착각”  
 
         
臨終(임종)을 앞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現在에 대한 愛着과 未來에 대한 不安 및 過去에 대한 悔恨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 애착과 회한은 어디에서 생겨날까?
무엇보다도 자신의 몸뚱이에 대한 愛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몸뚱이인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한다.
한 마디로 ‘나의 몸’이라는 所有意識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몸은 본래 내 것이 아니다.
진정 내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늙거나 병들고 죽어가는 이것이 어찌 내 所有란 말인가?
이 몸뚱이가 내 所有라는 생각은 한 마디로 錯覺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 몸뚱이의 管理者였을 이다.
임시로 관리를 맡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가꾸어 주느라 바쁜 세월을 지내왔다.

한 마디로 몸뚱이 시봉하기에 바빠 를 돌아볼 겨를 조차 없었다.
그토록 애써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좋은 모습 보여주고 좋은 소리 들려주느라 최선을 다해왔건만
늙거나 병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제 관리시효가 다해가는 것뿐이다. 얼마나 개운한가?
내가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무척 서운할 것이다.
당연히 미련이 남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管理하고 있다가 그것을 놓아두고 떠나라 한다면
그다지 서운할 까닭이 없다.
미련 없이 떠날 수가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所有者에게는 愛着이 있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다.
하지만 管理者에게는 愛着이 없으므로 미련이 없다.
떠날 때는 그냥 떠날 뿐! 오히려 홀가분한 心情으로 떠날 수 있는 것이다.

집과 재물 마음 또한 管理對相

因果法則 無視한 所有는 執着

이러한 마음가짐은 몸뚱이 뿐 아니라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다.
가족과 집, 재물,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조차 소유했던 것이 아니라 관리했을 뿐이다.
내 가족도 今生에 가족일 뿐이다.
前生에는 원수지간이거나 은인사이였을 것이며
來生에는 또 다시 어떤 因緣이 되어서 만나게 될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今生에 못 다한 因緣이나 한스러운 事緣에 대해서도
너무 애달파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실 못 다한 因緣이란 없다.
이른 바 억울한 죽음이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宇宙는 한 치의 誤差도 없이 돌아가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因緣果의 法則에 誤謬는 없다.
이른 바 今生과의 緣이 다 했으니 갔을 뿐이다.
緣이 다 하지 않았는데 가는 경우는 없다.
今生에 이 몸뚱이를 가지고 할 일을 다 했으니 가는 것이다.


다만 지어놓은 業에 따라 또 다른 몸뚱이 받으러 떠난 것뿐이다.
靈駕(靈魂)를 위한 시식문(侍食文)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

진실한 모습은 이름을 떠났으며
본마음  는 자취가 없지만 연(緣) 따라 사라지거나 나타나는 것이
마치 거울에 비춰진 형상이 나타나고 사람짐과 같으며
업(業)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이 마치 우물속 두레박이 오르고 내림과 같아서
그 오묘한 변화는 헤아릴 수가 없다.”

 
(實相離名 法身無跡 從緣隱現 若鏡像之有無 隨業昇沈 如井輪之高下 妙變莫測)

는 이름이 아니다.
今生에서의 이름일 뿐, 前生에서는 다른 이름이었고
來生에는 또 다른 이름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나의 이름이란 말인가?
는 자취도 없다.
今生에서의 몸뚱이였을 뿐, 前生에서는 다른 몸뚱이였고
來生에는 또 다른 몸뚱이를 받을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의 몸뚱이란 말인가? 

- 월호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