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인생이란 무엇인가!!!

장백산-1 2012. 3. 24. 23:28

 

 

 

人生이란 무엇인가???|어두운세상에길은있는가 책 나눔방

 

진리의 빛 | 조회 41 |추천 0 |2011.03.15. 13:37  http://cafe.daum.net/sks1001/8pH7/14 

 

人生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疑問은 人間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深覺하게 生覺하는 問題이다.

그러나 有史以來 宇宙의 秘密을 直接  볼 수 있었던 少數의 聖者를 除外하고는

이 問題에 대한 明快한 答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유행가 가사처럼 人生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이 問題는 人類의 永遠한 宿題인 듯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平生 겪는 過程이 人生이지만

아무리 유명한 석학이라도 人生이 뭐냐고 물으면 선뜻 對答하지 못한다.

그만큼 人生이란 單語에는 宇宙를 貫通하는 깊은 意味가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人生을 방황하지 않고 올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人生의 意味와 目的을 分明히 알아야 한다.

人生의 뜻을 모르면 삶의 行爲와 結果가 애매해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世上이 어두운 理由는 사람들이 人生의 意味를 正確히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人間의 삶에 있어서 人生의 意味를 아는 것보다 더 重要한 일은 없다.

人生을 알면 삶의 意味와 方向을 알게 되고 昏沌에서 벗어나

運命의 主人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人生이란 사람이 나서 經驗하게 되는 한 生涯(생애)를 말한다.

이러한 생애 동안 우리는 이라고 하는 旅程을 겪는다

따라서 사람이 人生을 모른다는 것은 을 살 줄 모른다는 말과 같다

을 모르므로 이 나에게 어떤 意味가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生에서 行한 일(事)들이 어떠한 結果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이다.

 

은 自己를 짓는 過程으로써 온갖 일을 自己 속에 일어나게 한다.

따라서 삶 속에 있는 일(事)을 通하여 우리는 끝없는 自身의 未來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人生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自身이 바라는 最高의 人間이 될 수도 있고

願하지 않는 不幸한 自身을 보기도 한다.

 

人生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이 世上이 무엇인가를 理解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두운 現實을 보고 世上이 온통 昏沌과 無秩序이며

人生은 던져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고 生覺한다.

 

그러나 인류의 빛이 된 聖者들은 이 世上은 神性한 뜻에 依해 나타난 完全한 調和體이며

人間은 神性으로부터 나타나 完成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高貴한 存在라 했다.

 

이러한 完全한 調和 속에

宇宙의 모든 것이 끝없이 波動하는 에너지로 循環하면서 自身을 維持하고 있으며

(存在樣式의 法則),

지은대로 받는 完全한 理致(因果法則)이  世上을 지키고 있다.

이런한 眞實이 存在한다는 것은 生命의 完成에 이르러 神性과 하나되신 聖者들이

이미 이천년 前에 智慧의 눈으로 분명히 밝힌 事實이지만 지금은 眞理가 흐려지고

人間의 마음이 어두워져 이것을 느끼는 者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런한 眞實을 받아들이는 것은 人生에 있어서 가장 重要한 일(事)이며

世上을 바로 보는 智慧의 基礎가 된다.

 

世上이 原因과 結果를 주고 받으며 끝없이 循環하는 過程

造物主가 만든 가장 完璧한 存在方式이다.

따라서 宇宙의 모든 存在는 例外없이 循環過程을 通하여

衰한 氣運을 補充하고  더 나은 自身을 만들어 나간다.

 

人間의 靈魂도 여기서 例外일 수가 없다.

人間의 靈魂도 한 生을 마치고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後生의 씨앗(種子)이 되어 끝없이 自身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끝없이 繼續되는 循環 속에서 모든 生命은 自己가 지은 바를

自身의 靈魂 속에 담고 새로운 自己를 만들어 간다.

그래서 世上은 各者가 지은 것을 自身 속에 담고 끝없이 自身을 變化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世上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運命과 性品이 다 다른 理由도

各己 다른 을 산 結果를 自身의 靈魂 속에 담아 태어났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은 飮食을 通해서 그 氣運을 섭취하여 成長 하지만,

사람의 意識은 自己가 지은 일(事)에 依해서 만들어진다.

 

意識이 變化하는 現狀을 살펴보면 各者 보고, 듣고, 겪었던 일(事)이

그  마음(心) 속으로 들어가 그것(事)이 쌓여 意識의 變化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過程에서 어둡고 잘못된 것(事)이 들어가면 그만큼 잘못된 意識의 根源이 만들어지고

밝고 좋은 것(事)이 들어가면 그만큼 맑고 좋은 意識의 根源이 만들어져

未來의 運命이 結定되는 것이다.

 

이러한 因果의 理致는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聖經에서도 "善한 사람은 그 쌓은 善에서 善한 것을 내고

惡한 사람은 그 쌓은 惡에서 惡한 것을 내느니라" (마태복음 12장 35절)

라고 分明히 因果에 關한 理致를 적어놓고 있다

 

우리가 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며 극복해야 하는 理由는

나의 未來와 後生이 지금 人生의 旅程에서 結定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힘들더라도 中道에 포기해서는 안 되며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한 瞬間 살기 어렵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그 사람은 그로 因해서 앞으로 다가올 모든 좋은 因緣을 포기하게 된다.

그런 사람은 다음에 태어나면 더 虛弱한 意志와 氣運을 가진 사람이 되어

不幸한 運命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는 데까지 살면서 어떻게든 좋은 原因을 짓고

더 나은 나(自己)를 얻으려고 努力해야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自身을 버리는 일(事)은 人生을 알지 못하는 無知에서 나타난

어리석음의 極致라 할 것이다.

 

人生의 道는 바로 이처럼 더 나은 나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法이다.

따라서 人生의 道를 안다면 삶의 意味를 알고 모든 混亂에서 解放되어

人生의 主人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따라서 삶에서 人生의 뜻과 人生의 理致를 아는 것보다 더 重要한 일(事實)은 없다.

아무리 學歷이 없더라도 人生을 알게되면 그 사람은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으며

아무리 學歷이 높더라도 人生의 뜻과 길(道)을 모른다면

그 知識은 오히려 自身을 亡치는데 使用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重要한 事實은 世上의 主人은 人間이며

人間인 우리가 지은 모든 일(事)이 世上의 原因이 되어 世上을 變化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造物主가 宇宙의 主體이듯, 그 分身인 人間도 自律性과 創造性을 가지고

世上의 主人으로 作用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未來를 만들 것인가는 살아있는 生命主體가 짓는 原因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며 어떠한 人生을 만들 것인지도 各者에게 달려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러한 眞實을 忘覺하고 自身은 努力하지 않고

神에게 依持하여 요행수를 바란다.

그러나 하늘(宇宙/神)은 自身이 지은 完全한 法則에 따라 世上 일(事)을 處理하는 것이지,

그 法則을 바꾸어가면서까지 人間을 편들지 않는다.

 

만약 人間의 欲望에 따라 人類歷史를 左右하는 神이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어둡고 불행한 世上이 오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世上이 이토록 어둡고 불행한 것은 完壁한 秩序에 依해

사람들이 그동안 함부로 지은 나쁜 惡의 結果를 스스로 받고 있다는 證據인 것이다.

 

神은 完全한 自由와 因果의 法則을 提示해놓고

各各의 自己가 지은 대로 結果를 받는 完全한 世上을 열어놓았다.

그래서 各者가 自己行動에 따른 幸과 不幸, 祝福과 저주의 體驗을 通하여

人間이 가야 할 길을 스스로 選擇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運命은 人間 스스로가 짓는 것이며 결코 하늘이 代身 살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主여, 主여! 하며 나를 찾지 말고 神의 뜻을 行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自己의 求世主는 바로 自己 自身인 것이며 결코 神이 구세주가 될 수 없다.

天國에 이르기 위해서는 自己 스스로 天國의 門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自身의 靈魂을 맑고 가볍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 神을 섬긴다고 해서 濁한 者를

天國으로 떠밀어 넣어 줄만큼 神이 어리석은 存在는 아닌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人生을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解答을 얻을 수 있다.

人生은 神性하고 完全한 法則 속에서 끝없이 繼續되는 生命의 循環 過程을 通해

世上을 祝福하고 自己를 完成시키는 길(道)이다

 

사람은 人間으로서 基本的인 性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삶의 理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면, 결코 自身에게 損害가 되는 일(事)을 하지 않는다.

自己가 하는 일(事)이 모두 自己 속에 남으며,잘못 심어진 原因은 自身의 未來를 不幸하게 하는

原因이 된다는 理致를 理解하게 되면 다시는 어둠을 범하지 않을 것이며

한 瞬間이라도 自身을 放置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서구문명의 빛이었던 소크라테스는 '바로 아는 것이 德' 이라고 했으며

부처는 '모든 어둠의 根源은 無明(바로 알지 못함)' 이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삶의 實體에 對하여 바른 視覺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所重한 일(事)이며

世上의 問題를 푸는 核心이다

 

이 世上은 完全한 秩序로 짜여진 法界이며 世上과 나는 하나로 이어져 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과 世上을 管掌하는 永遠不變하고 完全한 因果의 法則이 자라잡고 있어서

바르고 좋은 뜻은 人間完成과 地上天國을 가져다주고,

그르고 나쁜 뜻은 人間을 不幸하게 하며 世上을 破滅시킨다.

 

우리는 이러한 完全한 宇宙의 法則을 두려워하고 良心에 어긋남 없이

世上에 좋은 뜻을 지으려고 努力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진 世上에서, 좋은 原因은 좋은 環境을 만들며,

또 다시 좋아진 環境의 사람은 그 周圍에 있는 環境을 더 좋게 만드는 善循環을 繼續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者가 이런 宇宙의 鐵則을 無視하고 짧은 慾心에 나쁜 일(事)로 財物을 모았다면

그 財物은 恨과 怨望과 是非와 갈등을 불러와 世上을 어둡게 만들 것이며

自身 속에 어둠과 慾望을 두텁게 하여 自身의 未來와 後生을 不幸하게 한다.

 

그러므로 惡을 저지르는 것은 完全하게 世上을 지키는 眞理를 알지 못한 채

짧은 眼目에서 一時的인 慾望에 굴복하여 自身과 周邊을 모두 亡치는 어리석은 짓인 것이다

 

사람이 人生의 뜻을 알면 삶을 다 아는 것이며 사는 方法까지 알면 모두 다 이룬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 境遇  眞理 속에서 眞理와 하나되어

흔들림 없는 삶을 계속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人生의 意味를 바로 알고 살아가야 하는 理由는 그 속에

自身과 世上을 祝福하는 사랑과 완성의 길(道)이 있기 때문이다.

人間은 타고난 根本을 밝혀 바른 理致에 따라 世上을 祝福하면

그 마음(心)이 맑아지고 眞氣가 쌓여 完成에 이르게 된다.

 

人間完成의 境地인 깨달음이란?

人間의 마음(心)속에 內在된 業을 모두 지워버리고 完全히 純粹한 神性을 이룬 것을 말한다.

따라서 人生의 目標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올바른 삶으로 自身의 마음(心)을 깨끗이 淸消해야 한다.

왜냐하면 삶에서 일어나는 일(事)이 마음(心) 속으로 들어가 自身을 形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自身을 닦는 修行이란 現實의 삶을 通해서만 可能하다.

삶의 試練을 克復하고 眞理를 實賤하며 業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過程을 通하여

人間은 맑고 完全한 마음(心)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眞理를 배우고 사랑을 行하여 世上을 祝福하는 것이다.

 

人生에서 가장 큰 工夫는 眞理이고 가장 큰 寶物은 사랑이다.

따라서 眞理를 배우기 前이나 배우고 난 後나 해야 할 일(事)은 사랑 밖에 없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거나 求援을 얻는다는 名目으로 世上을 등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들은 世上을 사랑하고 祝福하기 위하여 眞理를 배우고 人生을 깨달아 나가는 것이기에,

道를 얻거나 求援을 위하여 世上과 因緣을 끊고 떠나는 길은 外道에 불과하다.

 

바른 理致와 밝은 마음(心)을 지니고 世上을 祝福하기 위하여 살아나갈 때

人間의 無限한 可能性이 나타나며 神性과 合一하는 生命의 神秘가 이루어진다.

 

(책)어두운세상에길은있는가...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