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신 국가비전연구소 이사장 및 의원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회 정문 앞에 걸린 오늘 모임에 관한 플랭카드를 보니 “이장에서 청와대까지?”였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주최측에서 정해준 것입니다. 끝에 물음표가 있네요. 그걸 느낌표로 만들어볼까 합니다. 곧 출판될 제 책의 제목도 “아래에서부터”이고, 오늘 제가 말씀드릴 주제도 이와 연관이 있는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공평사회’에 대해서입니다.
우리 옛 속담에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근대화가 되면서 개천도 많아졌고 용도 많이 났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어찌보면 한국 국민들, 특히 지금의 60-70대 이상 어르신들은 전부다 계층이동을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1980년대까지는 기회의 문이 비교적 넓게 열려 있었습니다. 이러한 계층상승의 희망이 있었기에 현실의 고단함도 잠시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대 대부분 그러했듯이 저 역시 어렸을 때는 가난한 환경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남해종고를 졸업한 후 국민대학교에 합격하였지만 등록금이 모자라서 진학을 포기하고 고향에서 2년 동안 마늘 농사를 지었습니다. 제대로 시험공부할 여건이 안되어서 경북 영주전문대에 진학을 했고 동아대학교에 편입을 하여 학업을 마쳤습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좋고 선출직이 좋은 것은 학력제한이 없고 자격증도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을 위해서 일 잘할 것 같으면 유권자들이 한번 열심히 일 해보라고 뽑아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최초의 선거였던 마을 이장선거부터 시작해서 330만 경남 도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도지사의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직장의 경우 지방대 출신들은 이력서를 낼 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서울의 좋은 대학들이 지방출신 학생들을 많이 뽑을까요? 일단 대표적 국립대학인 서울대의 사례를 보겠습니다.
1985년까지만 해도 서울대에 입학한 서울 출신 학교 학생들의 비율은 29.7%였습니다. 2012학년도의 경우를 보면 37.4%로 높아졌으며 경기도출신 학생을 합치면 50%를 넘었습니다. 게다가 이들 서울 출신 합격생 중의 42.6%가 소위 ‘강남3구’ 출신입니다. 특목고 출신 합격생은 2007년도에는 19.4%였는데 2012년도에는 26.8%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국립 서울대는 이제 강남3구를 위한 대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난 20년간 개천에서 용이 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용은 주로 한강 하류 ‘강남특구’에서만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학력과 부와 권력이 대물림되는 “현대판 신분사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위원장이 오늘날 누리고 있는 권력과 부와 신분도 결국 대물림 받은 측면이 매우 강하지 않습니가? 이러한 사회에서는 서민들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삶은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계층이동의 희망이 사라진 사회는 곧 죽은 사회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중 1등이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 희망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위안과 위로가 아니라 누구나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저 김두관이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는 公定과 公平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공정사회’를 주창하였지만 불공정행위는 오히려 더 횡행하고 있습니다. 재벌기업들이 골목상권에 진출하고 납품업체의 단가를 후려치는 일들은 비일비재합니다. 서민들에게는 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특권층에게는 느슨하게 적용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공정이란 누구나 평등한 조건하에서 경쟁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경쟁과정에서 똑같은 룰을 가지고 경쟁하는가 하는 형식상의 공정뿐만이 아니라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는가 하는 실질적인 공정이 필요합니다.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유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보다 오히려 출발선을 앞쪽으로 옮겨주어야 공정한 경쟁이 됩니다.
公定이 근대 자유주의 혁명 즉 기회의 평등을 대표하는 개념이라면, 公平은 전후 복지국가 즉 경제적 차별의 완화를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공정한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고 공평이야말로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공평의 핵심은 결과에 있어서 합리적인 불평등입니다. 노력과 상관없이
결과가 평등다면 누구도 힘써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의 실패가 그것을 잘 말해줍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가에 따라서 결과는 각자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정하게 출발해서 공정하게 경쟁하였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 자기 탓이니까 무엇이든 다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승리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결과를 차지하는 경쟁은 그 과정에서 치른 다른 사람의 노력과 기여를 무시하는 것이고 공평하지 못한 제도입니다. 회사가 망하든 흥하든 대기업 CEO의 보너스는 천문학적입니다. 만약 1등에게 주어지는 상품이 그가 기여한 것보다 지나치게 과다하면 그 과정에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듭니다.
공평한 사회가 되려면 패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승자는 있어도 패자는 없어야 합니다. 노력을 했다면 덜 이룬 사람은 있어도 패자는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즉 백성은 가난함을 걱정하기보다 불공평함에 분노한다는 논어의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은 이유입니다.
이러한 불공정과 불공평을 개선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대안이 필요합니다. 수도권과 지방간의 불공평한 재정지출을 시정하기 위해서 지방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도 필요하고, 공정거래위원회를 국세청보다 더 힘있는 기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각종 복지정책을 통한 부의 재분배도 더욱 강화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히 국립대학의 개혁을 통한 불공평 개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공립대학교는 국가공동체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사회에서 국립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지대하였습니다. 아직 사립대학들이 별로 없던 시절에 국가발전을 위한 엘리트를 양성하는 것이 국립대학교의 역사적 책무였습니다.국립대학들은 자신의 역사적 책무를 훌륭히 완수하여 대한민국의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또다른 역사적 책무가 국립대학에 주어져 있습니다. 바로 사회균형발전을 통한 공평의 추구입니다. 저는 일전에 지역균형발전, 사회균형발전, 남북평화균형발전이라는 ‘신삼균주의’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이라는 공동체가 발전하기 위해서 꼭 실현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현재 국공립대학은 공동체의 균형발전을 위한 사회통합에 제대로 봉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많은 사립대학들이 소위 ‘교육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민간이 잘 하고 있는데 굳이 국가까지 나서서 똑같은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민간이 잘 하지 못하는 분야를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합니다.
국립대학의 학부는 다른 사립대학들과 어떻게 차별화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학부만 나와도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쳤지만, 지금은 어느 대학이든 학부 나오면 사실 과거에 고등학교 나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굳이 국립대학이 엘리트 교육 정책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국립대학 학부의 공적인 역할이 엘리트 교육에서 사회균형발전을 위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많은 관심을 끈 마이클 센델 교수가 얼마전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을 하였습니다. 그 때 마이클 센델 교수는 고등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교육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책임을 공유해야 합니다.”
2005년도부터 서울대에서는 지역균형선발, 기회균형선발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2009학년도 지역균형선발 합격자는 전체의 23%인 765명입니다. 그런데 그중 44.6%가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출신입니다. 서울 출신 지역균형선발 합격자 중에서는 24.8%가 ‘사교육 특구’라고 불리는 강남3구와 양천, 노원구 출신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지역균형선발의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기회균형선발은 그 양이 더 적어서 2012학년도에 불과 6.7%인 불과 208명을 선발했다고 합니다.
저는 계층이동의 자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공립대학이 근본적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공립대학은 중하위 저소득 계층에 속하는 학생들을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사회균형선발로 신입생의 50%를 뽑아야 합니다. 미국 주립대학에서 학생선발시에 주로 유색인종을 대상으로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 즉 ‘소수 계층 우대정책’을 펼쳤다면, 인종이 단일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어퍼머티브 액션”을 국공립대 학생선발에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고교졸업후 일정기간 동안 직업에 종사한 사람들이 국립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사회경력자 선발에 일정비율을 할당해 주고 재정적 지원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지원해야 합니다.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가 공평한 사회입니다.
또한 사회균형선발로 합격한 학생들에게는 차등적인 등록금이 부과되어야 합니다. 즉 몇 명을 골라서 선별적으로 장학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저소득층 출신 합격자 전원에게 일반 등록금의 절반 이하에 해당하는 등록금을 부과해야 합니다. 미국에서도 주립대는 자기 주 학생과 타 지역 학생에게서 받는 등록금이 다릅니다. 이는 역차별이 아니라 불공평을 시정하는 것입니다.
共同體에서는 평등한 것보다 公平한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비록 처지는 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정당한 댓가를 받으며 살아간다고 느끼는 한,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모두 서로를 용인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노력해도 승자가 결과를 獨食하는 구조에서는 공동체가 붕괴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이러한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사회구조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번 연말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권이 합심단결하여 정권교체를 이룩하여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준비는 미흡합니다. 겸손한 자세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지금은 정권교체가 굉장히 힘들어 보입니다. 야권은 철저한 자기쇄신을 통해 대동단결해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가장 알맞은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 서민들이 간절히 바라는 시대정신을 담대하게 추구해 나간다면 연말 대선에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콱 막힌 우리 사회의 개천을 잘 뚫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용들이 생겨나는, 계층이동이 자유로운 공평한 대한민국을 여러분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바라며 저의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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