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그냥 사는거지
그냥 그냥 사는 것이지요.
아무런 理由도 붙지 않고 條件도 붙지 않고 억지로 살려고 살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그냥 살려지는 것이 우리네 人生입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그냥 그렇게 말입니다.
산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있건만 아무런 分別도 하지 않고,
물은 늘 내맡겨 흐르지만 아무런 是非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시냇물은 흐르다가 강으로 또 바다로 흘러갑니다.
그렇게 因緣 따라 흐르다가
따가운 햇살의 緣을 만나면 水蒸氣가 되고 구름이 되고
그러다가 因緣 따라 빗방울로 혹은 우박이며 눈으로 내립니다.
언제부터 그랬냐 할 것도 없고, 왜 그러느냐 할 것도 없고,
어느 모습을 딱히 고집하여 물 로만 있지도 않고, 구름으로만 있지도 않고
빗방울이 되건 눈송이가 되건 탓하는 법이 없습니다.
두 갈래 길 나와도 어디로 갈까 分別하지 않고 턱 놓고 가며,
어떤 모양의 그릇에 담기더라도 마땅히 모든 모양과 하나가 되어 줍니다.
지난 일에 얽매임도 없으며 未來의 일을 計劃 할 일도 없지만
지난 삶이 평온하고 앞으로의 삶도 내맡기고 自由로이 삽니다.
진흙을 만나 흙탕물이 되어도 괴로워하지 않고,
사람 몸 만나 피가 되고 땀이 된다고 좋아할 것도 없습니다.
어떻게 될까, 무엇이 될까, 어디로 갈까, 왜 살아야 할까,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分別하지 않아도 잘 살아 갑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고, 저렇게 살아도 괜찮고,
무엇이 되어도 괜찮고, 어디로 가도 괜찮은 참 허허로운 녀석입니다.
그렇게 그냥 그냥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順理에 내맡기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一切를 놓음 없이 놓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함이 없이 무엇이든 다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事實은 우리의 삶도 우리의 모습도 이와 같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렇기에 애써 놓으려고 放下着, 방하착 하지 않아도
이미 다 놓고 가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크게 보았을 때 우리의 삶은 놓고 가는 삶입니다.
다만 사사로이 잡고 있는 것이 많으니 온갖 善惡, 是比, 分別, 幸과 不幸을
제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만든 틀 속에 빠지니 그것이 問題라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우리에게 문제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지
마음자리에서 보면 그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 또한 크게 놓고 가는 모습일 뿐입니다.
生死가 없는 자리에서는 生死의 겉모습을 보고 괴로워하지 않는 법입니다.
마치 觀客들이 演劇 속 主人公이 죽더라도 잠시는 눈물이 나지만
한 生覺 돌이켜 演劇이라는 實狀을 깨닫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演劇 속의 主人公 入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스스로 이것이 演劇임을, 現實의 實狀이 演劇처럼 거짓된 幻影임을
바로 알 수 있다면 괴로움에 빠져 허덕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實體가 아닌 演劇임을 깨달은 이의 입장에서는 괴로움도 괴로움이 아니고
즐거움도 즐거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演劇은 어디까지나
주인공과 온갖 등장인물을 가진 嚴然한 現實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괴로움의 모습, 즐거움의 모습들이 엄연히 등장합니다.
그러니 가만히 生覺해 보세요.
全體의 立場이 되어, 마음자리의 입장이 되어 가만히 觀해 본다면,
우리의 人生이 꼭 이런 모습 그대로입니다.
主人公이 괴로움을 演劇하지만 괴로움에 빠지지 않듯,
답답함에 빠져있지만 답답함을 잡지 않고 놓고 있듯,
그렇게 우리의 삶도 참나의 입장에서는 놓고 가는 것입니다.
問題는 그 事實을 믿느냐 믿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生覺 돌이켜 굳게 믿고 나면 이미 놓고 自由롭게 가고 있는 것이 됩니다.
'놓는다' 한 生覺 돌이킨 그 자리가 바로 본래자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이 虛虛로운 世上 아옹다옹 하며 複雜하게 살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냥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이미 놓고 가고 있으니 놓는다는 말도 필요 없이 그저 턱 믿고 가면 그만입니다.
놓고 가는 그 큰 마음자리의 흐름에 一切를 내던지고 나면
그냥 그냥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잠시 우리 마음속에서 괴롭고, 아프다, 우울하다, 질투난다 하고는 있지만
그게 다 입니다. 그러고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잠시 마음 일었다가 사라지면 없는 것입니다.
10년 전 배고팠던 일(事)이 지금까지 배고픔으로 남아 있지 않듯,
10년 전 오늘 있었던 일(事)들을 지금 낱낱이 다 記憶하여 남기고 있지 않듯,
그렇게 그렇게 놓고 가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어리석어 잡고 있었던 것 또한 業識으로 남는다고는 하지만
언젠가 因緣 따라 흘러나오면 튀어나오는 대로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렇듯 잠시 잡았다 놓는 것을 어찌 잡음이라 하겠습니까.
生覺의 差異일 뿐입니다.
잡는다고 하면 잡는 것이 되고 괴로운 것이 되겠지만
놓는다고 하면 그것 또한 놓고 가는 것입니다.
修行者라는 自己 確信만 있으면 됩니다. 修行자는 늘 넉넉합니다.
지음 없이 짓고 받음 없이 받고 사니 말입니다.
이미 다 놓고 사는 것을 굳게 믿고 가시길 바랍니다.
이미 다 놓았는데 무엇이 붙을 게 있겠습니까.
生死도 다 놓았는데 살아가며 느끼는 괴로움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그냥 그냥 물 흐르듯 虛虛로이 살아가는 修行者 됩시다.
- 작자 미상-
-무진장/ 행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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