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의 목적(고통의 이유 )
罪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죗값을 치러야 할까?
부처님이나 하느님은, 혹은 眞理는
罪를 지은 사람을
容恕하실까
아니면 罰을 주실까?
事實 眞理는, 부처님과 하느님은
罪 지은 사람을
斷罪하는 法則을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큰 罪를 지었다 할지라
오로지 大慈大悲한 사랑으로 容恕할 뿐이다.
그렇다면
因果應報는 뭐고,
잘못한 사람이 받는 果報는 뭐고,
天罰은 무엇이며,
地獄은 또 무엇일까?
그리고,
나쁜 짓 한 사람도 다 容恕 받는다면,
왜 애써 착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부처님이 오히려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善因善果 惡因惡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진리와 가깝게 느껴진다.
물론 그 또한 眞理이고 眞實이다.
인과응보도 진실이고,
잘못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죗값을 치르는 것도 진실이다.
뭐라고?
왜 이렇게 이랬다 저랬다지?
그 모두가 다 眞實이다.
因果應報의 目的은 무엇일까?
보통 사람들은 인과응보의 목적을
단죄 혹은 죄 지은 사람을 벌할 目的이라고 生覺한다
죄 지은 사람은 벌을 받고,
선을 행한 사람은 상을 받는 것이야말로
이 우주적인 인과응보의 아름다운 균형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맞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看過하고 있는 것이 있다.
因果應報를 받는 것은 分明하지만,
그 目的은
斷罪에 있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 있다는 事實을 우리는 看過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이 뜻을 음미해 보자.
因果應報의 目的은
단죄가 아닌 깨달음에 있다.
因果應報가 일어나는 理由는
그 사람에게 ‘잘못했으니 당해도 싸다’거나,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거나 하는 理由가 아니라,
罪를 지은 사람에게
自身의 罪를 깨닫고 참회할 수 있도록,
自身의 잘못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한 目的으로
因果應報가 일어나는 것이다.
卽, 因果應報가 일어나는 理由는
단죄라거나, 벌 받는다는 등의 분별, 판단, 평가가 개입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사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無限한 자비와 사랑의 理由로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것이 宇宙法界의 特性이며,
眞理의 根源的 本性인 까닭이다.
眞理의 性品은
判斷, 評價, 生覺, 分別이 아니라,
언제나 無限한 慈悲와 사랑이다.
이처럼 이 宇宙는
無限한 慈悲와 사랑으로 計劃되었다.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罪人이라 할지라도
宇宙法界는 그를 容恕하고 사랑한다.
그에게 죗값을 치르게 할 目的이거나,
단죄하고 벌 받게 할 目的으로 벌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깨닫게 해 주고 싶기 때문에
그가 깨달을 때까지 그에 合當한 果報를 받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同體大悲의 사랑이며,
부모님의 자식 사랑의 매와도 흡사한 방식이다.
부모님은 자식이 죄를 지었더라도 미워서 罰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식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깨닫게 해 주기 위해
罰을 주는 것이다.
結果的으로 罰을 받는 것은 똑같은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이것을 깨닫는 것은
삶의 方式에 큰 變化를 가져온다.
이 말을 달리 表現한다면
斷罪가 먼저가 아니라
깨달음이 먼저라는 것을 意味한다.
卽 罪業을 지었을지라도
罰을 받기 前에
먼저 그 罪業에 대해 懺悔하고 깨닫게 된다면
그 罪의 果報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意味한다.
그래서 불교에서의 因果應報는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기계적으로 무조건 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깨달았느냐에 따라,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받게도 되고,
다른 방식으로 받음으로써,
받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소금물의 비유도 이 원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릇에 소금(罪業)이 가득 담겨 있으면
어떻게든 그 소금물을 다 自身이 먹어야 한다.
그러나 그릇을 크게 키우게 되면
소금물을 계속 마시더라도 크게 짜지 않게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릇을 키운다는 것이 바로
깨닫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닫게 되면 智慧가 盛熟되고,
그것은 곧 慈悲와 사랑이 깊어짐을 의미한다.
깨닫는다는 것은 곧 慈悲로와 진다는 것을 意味하는 것이다.
내가 相對方을 괴롭혔고,
果報를 받기 前에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고
깨닫게 된다면,
상대방을 괴롭힌 것에 대해 反省하면서
상대방을 향한 자비와 사랑이 여물게 될 것이다.
卽 그릇을 키운다는 것은
곧 깨달음과 사랑, 지혜와 자비가 깊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因果應報가 일어나는 理由,
끌어당김의 법칙, 황금률의 법칙,
作用 反作用의 법칙이 일어나는 理由가
바로 깨달음과 사랑, 지혜와 자비를
당신에게 배우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어떤 잘못인지 잘 알지 못할지라도,
만약 당신의 삶에 어떤 逆境, 苦難, 괴로움, 病이 찾아왔다고 해 보자.
그런 괴로움이라는 果報가 온 理由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당신을 깨닫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 宇宙法界가 드디어 感謝하게도
당신에게 깨달음과 사랑이라는 祝福을 傳해 주고 싶어진 것이다!
다만 당신이 경전으로는, 말로는, 책으로는,
지금까지의 삶에서는
여전히 아직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實質的이고, 體驗的인 事件을 通해서만
당신이 깨닫게 되리란 것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苦痛스러운 事件을 보내준 것이다!
당신을 自己 몸처럼 同體大悲로써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라도 깨닫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경전으로부터,
선생님이나 책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智慧롭고 慈悲롭게 살아야 하고,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야 하고,
執착과 欲望을 내려 놓고 살아야 하고,
말과 生覺과 行動을 善하게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들어 왔지만,
여전히 體驗으로 깨닫지는 못하고 있다.
이제 그런 方式으로는
더 이상 당신을 깨닫게 할 수 없음을
宇宙法界는 直視하게 된 것이다.
眞理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다소 잔인하거나, 힘들거나, 고통스러울지라도
體驗的이고, 直接的이며, 스스로 直接 부딪쳐 깨달을 수 있는
狀況과 條件을 만들어 줌으로써
당신을 깨닫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다.
인기 많고, 돈 잘 벌고,
무엇하나 不足한 것 없이
世上 사람의 부러움과 사랑을 한 몸에 받던 演藝人이,
자칫 거만해지고, 我執에 사로잡히고,
더 이상 그런 삶에서 배울 것이 없어졌을 때,
그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逆境을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한참 잘 나갈 때는
아무리 좋은 助言을 해 주고,
錦句聖言의 말씀을 들려 주더라도
그것이 좋은 줄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말로 해서 안 되는 것’이다.
바로 그 瞬間,
宇宙法界는 眼下無人으로 저만 잘난 줄 아는 그를
慈悲心으로 도와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問題와 逆境을 던져 줌으로써
잠시 괴로울지라도 그것을 通해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몸 관리도 안 하고, 운동도 안 하고,
매일 술 담배에 찌들어 살면서,
일에만 매달려 있거나,
앞만 보고 成功만 向해 달려가던 사람에게
적당한 ‘初期 癌’ 정도의 病을 診斷해 줌으로써
그의 速度戰 같던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는 것이다.
잠시 삶의 速度를 멈추고,
나와 남을 돌아보고,
執着과 欲望을 비우면서
삶이 보내주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그 작고 소박한 즐거움들을 좀 누려보길 권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괴로움은
언제나 깨달음의 可能性을 內包하고 찾아온다.
남편이 아내를 괴롭힌다,
하는 일마다 잘 안 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돈이 잘 안 벌린다,
진급도 안 되고, 성공도 요원해 보인다,
삶이 힘겹고 되는 게 하나도 없다,
큰 病이 찾아 왔다!
그런 苦痛은 도대체 왜 온 것일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찾아 온 것일까?
걱정하지 말라.
당신에게 ‘한 번 당해봐라’ 하고
이 宇宙가 당신을 미워해서 죗값을 치르게 하려고
그런 苦痛을 보내 준 것이 아니다.
業이 많아서 나에게만 이런 苦痛이 온 것이 아니다.
부처님께서, 이 眞理의 法界에서
당신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과 眞理는 둘이 아닌 한 몸이기 때문에,
眞理가 眞理 自身을 내 몸처럼 돌봐주고
깨닫게 해 주기 위해서
그 苦痛을 가장한 깨달음의 可能性을 보내 준 것이다.
당신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괴로운 일들이 당신에게 온 것이다.
그러니 그 어떤 苦痛 앞에서도
괴로워하거나,
나약해지거나,
自己 自身을 미워하거나,
이 世上을 怨望하지 말라.
그것은 苦痛의 탈을 쓴
慈悲요 사랑이 나타난 것이다.
모든 事件이나 問題는
그것 自體로써는
宇宙法界의 大慈大悲한 사랑이 投映된,
당신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한 目的으로 計劃된
感事한 일 이지만,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것은 좌절로도
희망의 씨앗으로도 바뀔 수 있다.
모두 하나같이 苦痛과 逆境을 通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심지어 흔한 TV 토크쇼 主人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힘들었고, 苦痛스러웠던 때를 回想하며
오히려 그 때의 苦痛이 現在의 自身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 逆境들에게 感謝하고,
나를 무너뜨린 그 사람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心情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삶에서 成功하는 사람의 共通的인 特徵이다.
괴로움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智慧로운 이는 그것의 目的을 바로 알아 깨닫고,
어리석은 이는 그 苦痛에 빠져 좌절하고 무너진다.
만약 당신이 過去에 지은 罪業으로 因해
罪意識 속에 빠져 있거나,
容恕 받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져 있거나,
懺悔해야 할 어떤 것이 있다면,
혹은 지난 날의 惡業을 털어 내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이제 이러한 眞理와 理致를 아는 이라면,
더 이상 罪意識에 시달리며
두려움 속에 빠져들어야 할 아무 理由가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 罪業의 果報를 받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하면 될까?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할 때'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경전의 말씀을 듣고,
설법을 듣고,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고,
그럼으로써 삶을 變化시키면 된다.
가르침을 듣고,
참회하며,
修行이 必要한 理由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공부를 通해
삶의 理致를 깨닫고,
因果應報의 理致를 깨닫게 되면
더 以上 果報를 받지 않아도 된다.
아랫사람을 혹사시키고 괴롭혀 오던 사람이
어느 瞬間 眞理의 말씀을 듣고
自身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닫고,
괴롭힘을 당하던 이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깨닫고,
그들에게 容恕를 求하고,
苦痛을 준 自己 自身을 容恕 해 주고,
懺悔함으로써,
이제 더 以上 그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사랑과 자비와 나눔의 삶을 살기 始作한다면,
그는 더 以上 罪業의 果報를 받을 理由가 없어진 것이다.
事實 그는 1년 뒤부터
職場 상사에게 自身이 行한 것과 同一한 方式으로
괴롭힘을 당해야 할 일이 果報로써 豫定되어 있었지만,
이제 깨달았기 때문에
더 以上 그 果報를 받을 理由가 없어진 것이다.
이 世上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말 그대로 '苦痛의 바다'다.
그러나 그 苦痛에는 다 理由가 있다.
당신이 苦海라는 人間界를 選擇해 태어난 데는
그만한 理由가 있는 것이다.
天上世界에만 있으면
너무 좋은 條件, 完壁한 條件만 있기 때문에
삶의 성숙과 깨달음이 더딘 것이다.
우린 本來부터 人間이 아니라,
天使이며 神이고
天上世界의 豊饒와 完全함을 누리며 살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의 幸福을 박차고
苦海인 人間界를 選擇해 태어난 데에는 理由가 있는 것이다.
苦痛의 바다인 人間界에서
苦痛을 通해 크게 성숙하고 깨닫겠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人間들의 共通된 生의 目的인 것이다.
그 生의 目的을 生覺한다면,
우리 앞에 놓인 苦痛 앞에서
더 以上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怨望할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고맙고도 감사한 괴로움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감사해 하고’
‘사랑해 주자’
그것이야말로
이 苦海의 人間界에서 태어난
生의 目的을 完遂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온갖 분별심에서 벗어나라, 깨달음도 일상사와 다르지 않느니라 (0) | 2012.08.04 |
---|---|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 (0) | 2012.08.04 |
인연법 (0) | 2012.08.03 |
후쿠자와 유키치의 7 훈 (0) | 2012.08.03 |
마음 밭 가꾸기 (0) | 2012.08.02 |